[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각본과 연출을 오가며 몇 년 새 작품을 쏟아냈던 것이 독이 된 걸까. 이제 연상호 감독이 작품 수가 아니라 완성도가 중요하다는 걸 깨달아야 할 텐데, ‘연니버스’의 한계를 또 드러낸 ‘계시록’이다.

21일 공개되는 넷플릭스 영화 ‘계시록’(감독 연상호)은 실종 사건의 범인을 단죄하는 것이 신의 계시라 믿는 목사와, 죽은 동생의 환영에 시달리는 실종 사건 담당 형사가 각자의 믿음을 좇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연상호 감독과 최규석 작가가 집필한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다.

먼저 영화는 그동안 연상호 감독이 선보인 ‘연니버스(연상호+유니버스)’ 작품 중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를 그린다. 판타지적인 요소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현실에 발을 딱 붙인 이야기지만, 글쎄 몰입하고 공감하기엔 이야기의 설계가 매우 허술하고, 깊이가 부족하다.

그 이유로는, 먼저 각 인물들이 품고 있는 이야기들의 아귀가 맞지 않는 느낌이 강하다. 모든 것이 신의 계시라며 믿는 성민찬의 어리석은 선택과 과거 학대의 트라우마로 끔찍한 범죄를 일으키는 권양래의 서사, 그리고 그 범죄로 인해 죄책감 속에 사는 이연희의 삶이 좀처럼 하나의 결로 뭉쳐지지가 않는다.

특히 성민찬이 계시라고 믿는 것과 권양래의 서사가 전혀 다른 결의 메시지로 얽혀 있어 끊임없이 몰입도를 깨뜨린다. 작품은 여중생 실종 사건을 마주한 성민찬이 계시라는 이름 하에 하는 선택들을 차근차근 풀어내다가 중후반부에 이르러서 진범을 공개하며 클라이맥스로 향한다.

이 과정에서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는 행위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는 주제 의식이 흐려진다. 성민찬의 행위들을 아전인수라고 하기에는 권양래가 또다시 범죄를 저지른 것이 맞기 때문이다. 메시지와 서사에 대한 깊은 사유 없이 그럴듯한 이야기들을 갖다 붙인 걸로밖에 보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허술한 이야기 설계로 얕은 깊이감만 탄로 난 모양새다.

또한 이연희가 여중생 실종 사건의 퍼즐을 맞춰나가는 과정도 지나치게 설명조다. 극 초반부 뭔가 거대한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의미심장하게 시작한 것과는 다르게 대충 마무리만 지으려는 듯한 느낌이 강하다. 그간 연상호 감독의 고질병으로 지적받았던 ‘용두사미’의 반복이다.

배우들의 연기는 인상적이다. 특히 류준열은 ‘더 에이트쇼’에 이어 제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은 듯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성민찬의 복잡다단한 면모들을 흡인력 있게 그려냈다. 권양래 역의 신민재도 보고만 있어도 불쾌한 캐릭터의 아우라를 훌륭히 소화해 냈다.

다만 신현빈의 도전은 아쉽다. 맞지 않은 옷을 꾸역꾸역 입은 듯한 느낌이 강하다. 짧게 자른 헤어에 화장기 없는 얼굴, 심지어 주근깨까지 그려 넣었지만 캐릭터의 결과 맞지 않는 연기가 두고두고 아쉽다.

이처럼 ‘계시록’은 용두사미로 아쉬움만 가득 남겼다. 이번에도 연상호 감독은 뒷심은 부족했다. 이번엔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역시나였다. ‘연니버스’라는 수식어까지 붙이며 연상호 감독의 작품들을 기대했던 지난날이 무색할 정도다. 이제 연상호 감독이 ‘용두사미’를 고치지 않는 한 더 이상 기대할 일은 없을 터다.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제공=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