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 허남준의 중심 잡기 [인터뷰]
2026. 06.22(월) 08:00
멋진 신세계 허남준
멋진 신세계 허남준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중심을 잡기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다. 어제는 괜찮다고 했으면서, 오늘은 별로라고 손가락질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어렵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가장 필요한 것은 타인의 시선에 휩쓸리지 않는 자신만의 명확한 기준이다. 그런 의미에서 배우 허남준은 타인의 시선에 연연하기보다 스스로를 온전히 믿고 일상의 소박한 행복을 지키는 것으로 내면의 닻을 내렸다. 허남준의 어제 보다, 오늘이, 그리고 오늘 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이유다.

지난 20일 14회 방송을 끝으로 종영된 SBS 금토드라마 ‘멋진 신세계’(극본 강현주·연출 한태섭)는 희대의 조선 악녀 영혼이 씌어 ‘악질’해진 무명배우 신서리(임지연)와 자본주의의 괴물이라 불리는 악질재벌 차세계(허남준)의 일촉즉발 전쟁 같은 로맨스를 그린 작품으로, 허남준은 극 중 차세계와 이현 역을 맡아 연기했다.

수많은 조단역을 거쳐, 넷플릭스 ‘스위트홈’ 시리즈로 얼굴을 제대로 알리고, ENA ‘유어아너’로 허남준이라는 이름 석자를 완전히 각인시켰다. 그 일련의 과정을 거쳐 허남준에게 기회가 왔다. 분량도 앞선 작품들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았고, 거기다가 대중적인 장르인 로맨틱 코미디라니. 물론 그 기회에는 부담감이 자연스레 따라왔다. 로맨틱 코미디에서 가장 중요한 비주얼에 있어서 허남준은 자신이 시청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기엔 조금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허남준은 그 부담감 속에서 연기라는 정답을 믿고 가기로 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허남준은 덤덤하게 연기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로 ‘멋진 신세계’에 불시착했다. 그 시작은 캐릭터에 대한 연구였다. 차세계와 이현, 얼굴은 같지만 다른 시간대에서 사는 두 인물을 표현해야 했다. 이에 대해 허남준은 “차세계는 갑옷으로 무장하고 살아온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어렸을 때부터 못 받아온 사랑에 목마른 사람이다”라고 했다.

외롭게 살아온 차세계가 신서리를 만나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아가면서 보이는 모습들을 표현하는데 집중했다는 허남준이다. 그는 “신서리에게만 보이는 귀엽고 바보 같은 모습에 엄청 신경 썼다. 물론 일할 때에는 프로페셔널하게 보이려고 했다”고 말했다.

반면 이현은 차세계와는 표현법이 달랐다. 허남준은 “이현은 시대적인 것도 있고, 지위도 있기 때문에 감정 표현에 절제하려고 했다. 불안해하는 게 티가 나면 안 되는 어른스러움을 표현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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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준이 자신이 연구한 캐릭터 그대로, 최선을 다해 극에 녹여낼 수 있었던 건 강현주 작가와 한태석 감독 덕분이었다. 허남준은 “작가님, 감독님과 사전에 연습을 많이 했었다”면서 “작가님이 명확하게 어떤 결로 대본을 쓰셨는지 말씀해 주셨다. 감독님도 구체적으로 어떻게 편집할 건지 말씀을 해주셨다”고 했다.

강현주 작가와 한태석 감독이 어떤 톤으로 작품을 만들어나갈지 알았기 때문에 소위 오글거리는 대사에도 허남준은 망설이지 않았다. 허남준은 “이렇게 유쾌하고 재밌는 톤으로 가시려고 한다는 걸 알고 저도 그 톤에 맞추면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함께 호흡을 맞춘 임지연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허남준은 자신이 아직 카메라 앞에서 어떻게 해야 더 아름답게 나오는지 구조를 잘 모르는 단계라고 털어놓으며 “임지연 선배가 반 장난, 반 진심으로 챙겨주면서 ‘이런 식으로 해보면 더 멋있을 것 같다’고 아이디어를 줬다. 9부 엔딩신에서도 감정이 격해지는 포인트를 짚어주는 등 제가 더 멋있게 나올 수 있게 도와줬다”고 전했다. 피곤한 촬영장에서도 끊임없이 장난을 치며 에너지를 끌어올려 준 덕분에, 결이 잘 맞는 배우를 만났다는 안도감 속에서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다는 허남준이다.

가까이서 지켜본 임지연은 허남준에게 훌륭한 자극제이자 롤모델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사실 놀라웠다. 현장에 왔을 때부터 선배님이 정말 준비를 많이 하고, 열심히 한다는 걸 느꼈다”고 회상했다. 방대한 대사량에도 불구하고 리허설부터 완벽하게 소화해 내며 NG를 거의 내지 않는 임지연의 모습은 허남준을 각성시켰다. 그는 “그때마다 저도 긴장하게 되고, ‘저렇게 잘하는 사람도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나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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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준은 차세계를 재기발랄하게 그려내고 싶어 초반에는 감독에게 적극적으로 허락을 구하고 다양한 애드리브를 시도했다. “애드리브가 없는 버전으로도 찍어보고 서로 결에 맞게 맞춰나갔다”는 허남준은 “뒤로 갈수록 애드리브를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합격이에요 예뻐요’라는 대사처럼 내가 이걸 애드리브로 했었나 싶을 정도로 캐릭터의 결에 딱 맞아떨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며 “많지는 않았지만 타율이 좋았다”고 미소 지었다.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치열한 고민이 묻어났다. 허남준은 일차원적인 분노 표출보다는 억눌린 감정선을 통해 입체적인 캐릭터를 그려내고자 했다. 그는 “화가 난다고 해서 무조건 소리를 지르기보다는, 보통의 사람들처럼 감정을 숨기고 억누르면서 본질적인 문제를 빨리 해결하려는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잃을 것이 없던 차세계가 사랑하는 이가 위험에 처하면서 겪는 낯선 분노를 애써 짓누르는 과정에 집중한 것이다.

이러한 깊은 해석은 디테일한 연기로 완성됐다. 분노를 참아내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어금니를 꽉 깨물거나 시선을 돌려 감정을 정리하는 디테일이 시청자들의 호평을 이끌어낸 바 있다. 이에 허남준은 “계획하고 정해놓은 것은 아니지만 그 상황에 몰입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온 행동들”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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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이후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으며 대중의 주목을 받고 있는 지금, 허남준은 자신만의 속도와 평정심을 유지하려 노력 중이다. 행여나 자신의 행동 하나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끝없이 예민해지기도 한다고. 이에 허남준은 “나를 억지로 억누르기보다는, 좋은 일이 있을 때는 그 아주 조그만 행복이라도 온전히 느껴보려고 한다”고 털어놨다. 무서워하거나 위축되지 않고, 어느 정도의 선을 지키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그가 찾은, 갑작스레 변화한 환경 속에서 중심을 잡는 방법이었다.

매 작품마다 자신에 대한 의심과 싸운다는 허남준은 결국 연기의 원동력을 자기 믿음에서 찾았다. 허남준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표현하려면 자기 믿음이 확실해야 한다. 책임감이 커지면서 강단을 잃고 본질에 집중할 용기를 잃어버렸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단역을 맡았을 때도 지인들과 파티를 열 만큼 본래 긍정적인 성격인 허남준은 끊임없이 자신을 지켜내기 위한 노력을 거듭하며 내면을 단단하게 다지고 있다.

‘멋진 신세계’를 통해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서의 가능성을 완벽하게 입증한 허남준의 시선은 이미 더 넓은 곳을 향해 있다. 그는 “앞으로는 제 나이대에 할 수 있는 다양한 장르를 다 경험해 보고 싶다”며 “이번에 로맨틱 코미디를 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묻어나는 깊이와 능글맞음이 더해진 또 다른 매력의 로맨틱 코미디도 해보고 싶다”고 눈을 반짝였다. “시간만 허락해 준다면 다 하고 싶다”는 허남준의 멈추지 않는 연기 열정이 앞으로의 행보를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제공=에이치솔리드,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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