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끊임없는 논란의 세계에서 대중이 취해야 할 노력 [윤지혜의 대중탐구영역] |
| 2020. 10.30(금) 10:05 |
| ||||
![]() |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논란이 쉽게 생성되는 세계에서 산다는 건, 그만큼 우리 스스로의 통찰을 필요로 한다. 보이는 대로만 판단하지 않는 신중함, 이면의 것을 바라볼 수 있는 안목, 과도한 정의로움이 가지는 폭력성에 대한 경계, 그리고 역지사지(易地思之)할 만한 마음의 여력 등. 주변의 광풍에 휘둘리는 게 일상이 되어버린 우리가 보일 수 있는, 상처를 입히지 않기 위한, 혹은 입지 않기 위한 최선의 노력이다. 어느 아이돌 여가수가 에디터이자 스타일리스트에게 보인 행동이, 일명 ‘인성 논란’이란 자극적인 단어와 함께 세간의 화제가 된 바 있다. 인기의 최정상에서 많은 사랑을 받던 인물이라 대중은 충격에 휩싸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럴 줄 알았다’는 분위기가 논란 전체를 휘감기 시작했다. 해당 스타의 뉘우침과 사죄의 움직임에도 질타의 시선과 말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관련 이야기들이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표현들과 함께 인터넷 지면을 휩쓸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잘잘못이나 진실의 여부는 더이상 중요치 않게 여겨진다. 누구나 선망하는 자리에 올라 있던 인물을 끌어내리는 즐거움이 정의를 압도하고 왜곡하며 부풀리니 시끌벅적한 소란과 던져진 계란의 잔해들만 남을 뿐이다. 폭로는 올바랐으나 그것이 사용된 통로들은 현대사회의 특성상 불순물이 섞여 있을 수밖에 없어 벌어진 결과라 하겠다. 이 가운데 대중인 우리가 지녀야 할 태도는 균형 잡힌 통찰이 찾아올 때까지 상황을 혹은 현장을 차분하게, 자세히 들여다 보는 일이다. 이면의 것들이 수면 위로 어느 정도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 판단하는 말들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는 자세다. 방향 없이 논란이 건넨 과열로 부풀어 오르기만 한 정의로움은 누군가를 상해할 무기가 되어 버리니까. 그리고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는 노력이다. 사람은 누구나 어리석인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게 이 세계의 자명한 진실이기 때문에 논란이 일으킨 바람으로 코앞도 분간이 안 되는 그 자리에 나를 대입해보는 것이다. 발생된 잘못을 이해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별개로 실체가 없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폭력과 그로 인해 일어날 지 모를 2차, 3차의 피해를 막는 노력인 동시에, 현 시대의 대중으로서 손쉽게 우롱당하는 것을 거부하는 강한 의사 표현이다.
연이어 또 다른 유명한 아이돌 스타의 사생활에 관한 뉴스가 포털사이트를 뒤덮고 있다. 관심이 가다가도 문득 이러한 생각이 드는 것이다. 만들어진 이미지더라도 그로 인해 돋아난 대중과의 신의를 지키는 게 스타의 의무가 맞고 그렇지 않았을 때 비판을 받는 게 당연한데, 우리의 관심이 정말 이러한 연유에서만 비롯되었는가 하는가다. 진실의 여부를 알고 싶다기보다 실은 그렇고 그런 인물이었다며 누군가의 허물을 들추는 것에서 오는 쾌락적 반응은 아닌가. 아마도 매체라는 강렬한 소식통을 삶의 인근에 둔 우리에게 이러한 상황은 끊임없이 발생하고 또 찾아오리라. 그럴 때마다 우리는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기에 앞서 스스로를 먼저 통찰하며 우리 내면의 의도를 되물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 없이 휩쓸리다 보면 어느 순간, 상처를 입히고 입는, 폭력이 당연한 세계가 되어 버릴 테니까. 마지막으로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한 대목을 공유해 본다.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을 때는 이 점을 기억해두는 게 좋을 거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서 있지는 않다는 것을.”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니스트 news@tvdaily.co.kr, 사진 = DB] |
| 기사제보 news@tvdaily.co.kr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