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SA' 이기섭 "필요한 곳에 늘 있는 배우이고 싶다" [인터뷰]
2014. 03.24(월)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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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박진영 기자] 상대를 기분 좋게 만드는 수더분한 웃음. 뮤지컬 ‘공동경비구역 JSA’가 공연되고 있는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인근에서 만난 이기섭은 “참 좋은 사람”이라는 말이 자연적으로 나올 정도로 편안하고 따뜻한 기운이 물씬 풍기는 배우였다. 작품뿐만 아니라 연기 호흡을 맞추고 있는 배우들을 향한 따스하기만 한 시선은 오히려 그를 환하게 비추고 있는 듯 했다.

박상연 작가의 소설 ‘DMZ’(1997)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공동경비구역 JSA’(이하 JSA)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발생한 총격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미스터리 휴먼 드라마로, 2000년 개봉된 이병헌 이영애 송강호 주연의 동명 영화로도 유명하다.

소설의 배경과 주제, 영화의 휴머니즘적 정서를 적절하게 섞어 뮤지컬만의 매력으로 재탄생된 ‘JSA’는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분단’과 ‘형제애’라는 소재를 아프지만 따뜻하게 풀어낸다.

2013 공연예술 창작산실 지원 사업(구 창작팩토리) 뮤지컬 우수작품제작지원 선정작이기도 한 ‘JSA’는 지난 7월 독해 공연을 통해 탄탄한 스토리와 높은 몰입도를 지닌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또 지난 12월 대학로 뮤지컬센터 공간피꼴로에서 진행된 14회의 쇼케이스 공연에서는 소설의 배경과 주제, 영화의 휴머니즘적 정서를 적절하게 섞어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1994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 돌아오지 않는 다리, 북측 초소에서 격렬한 총성이 울려 퍼지고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어린 북한 초소병 정우진(임철수) 전사가 15발을 맞아 사망하고, 남한군 김수혁(정상윤 강정우 오종혁)과 북한군 오경필(최명경 이석준)은 총상을 입은 채 발견된다.

하지만 북한과 남한은 각각 엇갈린 주장을 하며 사건은 미궁으로 빠진다. 그러던 중 스위스인 지그 베르사미(이정열 임현수) 소령이 수사 착수를 위해 파견된다. 베르사미는 인민군 장교출신인 아버지와 스위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인물. 이에 김수혁은 베르사미에게 숨겨진 진실을 밝히기로 결심하고, 베르사미는 조금씩 금기를 넘어선 네 군인의 애틋한 우정 속으로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이기섭은 김수혁과 함께 북한 초소에서의 밀회에 동참하는 남성식 일병과 투스타로 1인 2역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다.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리고 있기는 하지만 전혀 다른 성격과 말투의 남성식과 투스타를 한 배우가 연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파악하기 힘들 정도다. 인터뷰를 위해 만나자마자 “놀랐다”라고 감탄하자 이기섭은 쑥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저 그 배역이 가지고 있을 법한 행동이나 생각, 입장을 주로 생각했다. 다른 목소리를 내고 인위적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라고 말했다. 또 “남성식도 투스타도 본 공연으로 오면서 라인이 명확해져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 아닌가 싶다”라고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힘든 부분이요? 호흡 가다듬을 시간이 부족해서 힘들기는 해요. 죽어라 뛰어나가서 바로 나와야 해서 시간적으로 빠듯하거든요. 또 눈물 콧물이 많이 나서 투스타 선글라스를 벗기면 판다가 되어 있을 거예요.(웃음) 눈물은 어떻게 하겠는데 흐르는 콧물은 어쩔 수가 없더라고요. 언젠가는 툭툭 떨어질 것 같아서. 그것 외에는 딱히 힘든 건 없어요.”

그러면서 이기섭은 “사실 가장 힘든 건 공연을 보고 싶은데 못 본다는 거죠. 철수와 저의 소원은 이 공연을 보는 것이거든요. 명경 형님은 5개월만에 연습실에서 석준 형 런 돌 때 보고 우셨어요. 저희 또한 명경 형이 앞에 앉아 있으시니 어색했고요. 그러고 얼마 전에 공연 보셨는데 옆에서 ‘자기 공연 보면서 왜 저렇게 우냐’며 창피해했을 정도로 엄청 우셨어요.(웃음) 명경 형님이 감수성이 예민해서 잘 우세요. 참 따뜻한 분이죠”라고 전해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2년 전 쯤 성경 모임을 통해 ‘JSA’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작업에 참여하게 되었다던 이기섭은 “물론 남성식이 키를 가진 숨겨진 인물이긴 하지만 처음엔 이렇게 비중이 크지 않았어요. 쇼케이스 때 까지만 해도 명확치가 않아서 배우로서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 힘들었어요. 뜬구름까지는 아니지만 워낙 텍스트에 나와 있는 정보가 없어서 제가 어떤 걸 선택해도 상관없을 정도였어요. 그래서 고민이 좀 많았는데 본공연 오면서 연출님께 제의를 많이 드렸고 그걸 또 수용해주셨어요. 그러다 보니 표현이 명확해지고 매력 있게 정리가 됐어요”라고 쇼케이스와 달라진 점을 설명했다.

“극 후반 성식이 수혁과 대면을 하고 난 뒤 넋이 나간 상태로 ‘저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라는 말만 계속해요. 이건 텍스트엔 전혀 없는 말이거든요. 또 경필 형이 정세도 안 좋은데 어떻게 왔냐고 화를 낼 때 경필 형에게 다가가는 이가 성식이었으면 좋겠다고 연출님께 말씀 드렸어요. 성식도 경필 형에 대한 마음이 있을 텐데 설명이 부족한 것 같았거든요. 성식과 우진, 수혁과 경필 형이 붙는 것은 많지만 성식과 경필 형은 그런 것이 없어서, 그런 관계성을 부각시키려 노력했어요. 그래서 지문에 없는 행동들이 많아졌죠.”

이기섭이 말했듯 남성식은 후반 반전의 키를 쥐고 있는 중요한 인물이다. 현장에 함께 있었지만 꽁꽁 숨겨져 있었던 남성식은 한 발의 총알이 발견되면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다. 베르사미를 만날 때 다리를 떨며 극도의 불안 증세를 보이던 남성식은 결국 김수혁을 마주하며 비극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이 과정에서 남성식은 김수혁을 향해 총을 겨누고, 김수혁은 떠오르는 충격적인 기억에 절망한다.

이기섭은 이 장면에 대해 “일부 관객 중에서 성식이 수혁의 난사 장면을 봤다고 잘못 알고 계시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수혁이 우진을 죽이는 장면을 바로 앞에서 목격을 했고, 그 무서움으로 총을 뽑아들었다고 생각하시는데 그건 아니거든요. 성식은 도망쳤고, 그 장면을 보지 못했죠. 만약 난사하는 것을 봤다면 성식인 더 제정신이 아니었을 거예요”라고 설명했다.

“성식은 도망쳤다는 죄책감이 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사랑했던 사람들을 두고 도망쳤고, 그러던 중 총소리를 들었겠죠. 그 좁은 공간에서 총소리가 그렇게 많이 났으니 다 죽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했을 테고, 그러다 보니 죄책감이 너무나 커졌겠죠. 철수 아버지께서 군인이셔서 국군기무사령부에 계셨었는데 심문이 굉장히 심했다더라고요. 그런 것을 거치는 과정에서 죄책감뿐만 아니라 이 사실이 밝혀지면 안 된다는 심리적인 공포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겠죠. 취조를 당할 때도 우진과 경필 형이 눈앞에 아른거렸을 텐데 말이죠. 그리고 수혁을 만났을 때는 그 공포가 한 번에 터져버린 거죠. 수혁의 눈을 보고 ‘아무 말도 안 했다’고 하는 순간 제 눈앞에는 우진이랑 경필이 형이 들어와요. 환영 때문에 총을 뽑는 거죠. 취조실이지만 그 순간 총을 겨누고 있던 그 당시로 돌아가요. 관객들이 보기엔 수혁과 베르사미에게 총을 겨누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눈앞에 보이는 환영에 겨누면서 자신을 보호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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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기섭은 자신이 연기하고 있는 남성식이 이 작품 속 유일하게 수동적일 수밖에 없는 인물이라 무척이나 불쌍하다고 말했다. 그 어떤 선택도 할 수 없어서 마음이 아프다는 것. 일반인이라면 분명 성식처럼 행동을 했을 거고, 그런 점에서 인간미가 크다는 것이 매력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투스타는 굉장히 능동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또 다른 매력이 있다고 전했다.

‘JSA’는 가슴 묵직한 주제를 담고 있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시종일관 무겁지만은 않다. 극 초반 수혁과 경필 우진의 만남이나 수혁의 성격을 설명하는 장면은 유쾌한 웃음을 동반한다. 특히 야간수색을 나서는 장면에서 수혁과 성식은 늘 애드리브를 하며 관객들에게 쫄깃한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야간수색을 할 때 두 명의 수혁이 다 다른 얘기를 해요. 처음에는 정우가 뜬금없이 ‘너 DMZ가 몇 km인지 아냐’라고 묻기도 했고 멧돼지 얘기를 하기도 했어요. 저희는 전혀 안 맞춰보고 공연을 하거든요. 두 명의 수혁이 무슨 얘기를 할지 모르기 때문에 그냥 마음 편히 먹고 있어요. 그런 식으로 맞추지 않았는데 고정화 된 것이 좀 많아요. 정교한 텍스트임에도 그 안에서 저희끼리 자유롭게 얘기를 할 수 있는 여지가 참 많았어요.”

원작을 읽었을 때 베르사미 역할에 많이 공감하고 많은 눈물을 흘렸다던 이기섭은 훗날 나이가 조금 더 들었을 때 베르사미를 연기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리고 그는 연습 때부터 지금까지 자주 모여 술을 마시며 단합을 할 정도로 엄청난 팀워크를 자랑하는 ‘JSA’ 멤버들에 대한 애정을 한껏 드러냈다.

“연습을 성신여대에서 했는데 끝나고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먹었어요. 저는 막걸리 한 잔 하는 정도였기는 하지만 요즘은 상윤이, 변희석 음악감독님과 함께 반성중이죠. ‘우리 이러지 말자. 어디까지 가려고 그러냐. 이러면 안 된다’ 이러면서 말이죠. 근데 말만 이렇게 하고 또 낮술 마시고 그래요. (웃음) 저흰 정말 사이가 좋아요. 지금 정글에 가 있는 종혁이와도 소통을 하거든요. 종혁이가 아마존 들어가기 직전까지도 인증샷을 보내줬어요. 알게 된지 얼마 안 됐음에도 급 친해진 것 같아요. 이 작품의 장점이에요. 이 작품은 유대 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좋게 나올 수 없거든요. 일부러 친해지려 한 건 아닌데 다들 심성 좋은 친구들만 모여서 다행이고 감사해요.”

단국대학교에서 연극영화학을 전공한 이기섭의 어렸을 때 꿈은 의사와 고고학자였다. 학교를 다닐 때도 연기를 하겠다는 생각을 잘 못했었다는 그는 김윤기 연출을 만나면서 조금씩 배우를 향한 뜻을 가슴 속에 품게 됐다고 한다.

“제 스승님이신 김윤기 연출님의 수업 방식이 좀 달랐어요. 이를 테면 연극영화과 학생은 1년에 한 작품 정도 하거든요. 1학년 때는 거의 무대 작업만 하고, 2학년 때 겨우 좀 할 만하면 놀고 3학년 때는 정고공연 한 번, 4학년 때 졸업공연 한 번 하고 졸업을 해요. 그런데 선생님은 ‘그렇게 해서 배우가 된다면 불공평한 거 아니냐’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전국에 연극영화과가 정말 많은데, 그 곳에서 1년에 한 명의 배우만 나와도 많은 거잖아요. 여기서 배우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고 잘하시는 유능한 분들을 뜻해요. 이런 배우는 1년에 한 명도 안 나와요. 그렇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무대에 많이 서보면서 훈련을 해야 한다는 것이 선생님의 지론이었어요. 그래서 쉬지 않고 작품을 했죠. 저 같은 경우엔 학교에서 1년에 13작품을 했었어요. 그 때는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못했기 때문에 싫었거든요. 그런데 지나고 나니 이것이 배우로서, 또 제 인생에서 자산이 많이 된 것 같아요.”

의사와 고고학자라는 직업적인 꿈은 접었지만 이기섭의 가슴 속에는 또 다른 인생의 꿈이 펼쳐져 있다. 그는 “제 진짜 꿈은 누군가를 돕고 사는 것이에요. 그게 뭐가 되었든 내가 아닌 누군가를 위해 살아간다는 것이 의사와 이어져 있는 것 같아요. 또 꿈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세계여행을 가고 싶어요. 지금은 아무 생각 없이 떠날 나이는 아니라 조금 더 생각하고 계획을 짜서 가고 싶어요. 이건 고고학자와 이어져요”라고 말하고는 밝게 웃음 지었다.

분명 ‘내가 이걸 왜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어서 연기를 시작한 것에 대해 후회한 적도 있다. 배우로서 끼와 재능이 별로 없다는 생각에 ‘내가 잘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도 많이 했다. 그럼에도 이기섭을 배우로서 무대에 서게 만들어준 원동력은 연기란 지문처럼 그 어떤 누군가가 대신할 수 없는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그는 “저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 하나밖에 없어요. 물론 다른 배우도 할 수 있지만 이기섭이 하는 것처럼 연기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저는 저를 필요로 하는 곳에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배우로서의 소신을 밝혔다.

그렇기에 이기섭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한마디를 해달라는 요청에 “필요한 곳에 늘 있는 배우”라고 말했다. “예전에는 남성적이거나 지적인 역할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죠. 그런데 언제부턴가 어떤 역할이든 제가 맡았을 때는 그걸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아서가 아니라 제가 그곳에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늘 제가 필요한 곳에 있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이기섭은 아직 ‘JSA’를 보지 않은 예비 관객들에게 “연령층에 상관없이 공감을 할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공연을 계속 봐주시는 마니아 관객뿐만 아니라 공연을 잘 안 보셨던 분들도 봄날 부모님과 함께 나들이 나와서 보셔도 좋을 것”이라고 ‘JSA’를 소개했다.

“저희 공연 전에 외치는 구호가 있어요. ‘관객을 마비시키는 마음의 화분. ‘JSA’ 파이팅’이거든요. 명경 형님이 말씀하시는 그 화분이죠.(웃음) 공연을 보신다면 마음의 선물 하나씩은 가져가실 수 있을 거라 장담합니다.”

뮤지컬 ‘공동경비구역 JSA’는 오는 4월 27일까지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공연된다.

[티브이데일리 박진영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제공=창작컴퍼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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