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극의 해체, 전통의 재구성…K-콘텐츠의 영리한 생존 전략 [TD취재기획] |
| 2026. 05.19(화) 14: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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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멋진 신세계, tvN 폭군의 셰프 |
[티브이데일리 황서연 한서율 기자] 한국 드라마 시장에서 사극은 더 이상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최근 tvN '폭군의 셰프', SBS '멋진 신세계' 등 역사적 사료에 상상력을 덧입힌 작품들이 잇따라 흥행에 성공하며 미디어 시장의 판도를 흔들고 있다. 또한 최근 수년 간 SBS '옥씨부인전', '귀궁', KBS2 '남주의 첫날밤을 가져버렸다' 등 여러 퓨전 사극들이 전파를 타면서, 전통 소재 콘텐츠는 일시적인 유행을 넘어 하나의 필승 흥행 코드로 자리 잡았다. 엄격한 고증과 장엄한 서사를 강조하던 전통적인 사극의 틀은 깨졌고, 그 빈자리를 현대적 감각과 장르적 변주가 채우고 있다. 티브이데일리는 주요 방송사와 제작사, 그리고 글로벌 OTT 플랫폼의 목소리를 통해 변화하는 한국 콘텐츠의 전략을 짚어봤다. ◆ 정통 사극의 해체와 현대적 변주 과거 사극의 가치가 '역사적 사실의 재현'에 있었다면, 지금의 사극은 역사를 하나의 '모티브'로 소비한다. 전문가들은 이 현상을 장르의 확장을 넘어선 '개념의 해체'로 규정했다. 윤석진 대중문화평론가는 "현재 미디어 시장에서 이른바 정통 사극이라 일컫던 기존 개념은 완전히 해체됐다고 봐야 한다"라며 "역사적 사료를 그대로 복제하기보다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극적 재미를 극대화하는 경향이 뚜렷하다"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관련 흥행작들은 전통의 외피를 입었을 뿐, 본질은 현대극에 가깝거나 완전한 판타지를 지향한다. '멋진 신세계'나 '폭군의 셰프'처럼 역사 속 인물을 소환하되 빙의나 환생 같은 상상력을 더해 가공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윤 평론가는 이를 "한국 문화에 대한 세계적 관심을 활용한 스토리텔링 전략"으로 분석했다. 한복이나 한식과 같은 한국적 요소를 현대적 서사 안에 배치해 콘텐츠의 정체성을 확보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 작품들은 역사적 고증과는 무관한 '완전한 상상'의 결과물"이라며 "인물들이 한복을 입었다고 해서 사극으로 분류하기보다는, 전통적 요소가 가미된 현대극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현재 작품들은 과거의 고증에 매달리기보다 대중이 흥미를 느낄 수 있는 가상의 설정을 입혀 극적 재미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전략을 취하고 있다"라고 짚었다. 제작 현장의 시각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멋진 신세계'의 제작을 총괄한 SBS 조영광 CP는 "최근 사극은 고증의 영역을 넘어 독자적인 세계관으로 소비된다"라며 "타임슬립처럼 과거와 현대를 잇는 방식은 시청자에게 익숙함과 새로움을 동시에 선사하며 서사에 깊게 몰입하게 만든다"라고 밝혔다.
◆ 높은 제작비에도 '사극'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 사극은 현대극에 비해 의상, 세트, 미술 등 기본 제작비가 월등히 높다. 그럼에도 방송사와 제작사가 꾸준히 사극을 선보이는 명확하다. 바로 안정성과 확장성 때문이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충성도 높은 고정 시청층이 담보된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KBS 대하드라마 '문무' 이호 CP는 "사극은 소재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시청률 하한선이 높은 장르"라며 "최근의 퓨전 사극은 젊은 층까지 유입시키며 높은 제작비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다"라고 전했다. “여기에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한 서사가 주는 특유의 몰입감은 시청자들이 작품의 메시지를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만드는 동력이 된다”라고도 덧붙였다.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하는 OTT 플랫폼도 사극의 매력에 주목하고 있다. 넷플릭스 관계자는 "K-콘텐츠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해외 팬들의 관심이 현대 한국을 넘어 한국의 역사와 전통문화로 확장되고 있다"라며 "궁궐이나 한복 등 한국 고유의 시각적 요소에 대한 글로벌 팬들의 성원이 창작자들에게 사극을 제작하게 만드는 중요한 동력이 된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단순히 장르적 유행에 편승하는 방식은 경계한다고 덧붙였다. 넷플릭스 관계자는 "특정 장르의 흥행에 매몰되기보다 연간 라인업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사극 역시 라인업을 풍성하게 만드는 중요한 축 중 하나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기준은 시나리오의 완성도"라고 덧붙였다. 그는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의도적인 장치보다는 한국 시청자들이 공감하고 사랑할 수 있는 서사적 매력이 우선"이라며 콘텐츠 본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틀을 깬 사극, 계속되는 변주 사극의 진화는 올해 하반기 공개 예정인 작품들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난다. 특히 장르적 실험을 극대화한 작품과 정통 사극의 묵직함을 내세운 작품이 공존하며 다양성을 꾀하고 있다. 올해 공개를 앞둔 넷플릭스 '동궁'은 전통적인 사극과는 궤를 달리한다. 여러 세계관을 넘나들며 악귀와 맞서 싸우는 판타지 액션의 성격이 강하다. 윤 평론가는 "실존 역사에 바탕을 두기보다 사극적 배경을 장르적 코드로 활용한 사례"라며 전통 요소를 흥행 코드로 활용하는 흐름이 계속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사극을 재해석하는 흐름 속에서 KBS는 정통 대하사극 '문무'를 통해 장르의 본령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문무'는 삼국 통일기 신라의 역사를 통해 현재의 대한민국에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이 CP는 "정통 사극은 실제 역사에 기반하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갈등과 고민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 된다"라며 제작 취지를 밝혔다. 특히 강대국들 사이에서 생존 전략을 치열하게 고민했던 신라의 모습이 현재의 동북아 정세와 맞닿아 있다는 점이 시청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극은 이제 고증의 족쇄에서 벗어나 가장 유연하고 확장성 높은 장르로 자리 잡았다. 단순한 역사 재현물이 아니라, 한식과 한복, 궁궐, 왕조 서사 등 한국적 색채를 직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전통 자산들을 현대적 문법 안에 재배치하며 K-콘텐츠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하나의 '전략'에 가까워지고 있다. 윤 평론가는 "'킹덤'이 사극 형태의 좀비물이었다면, 최근의 흐름은 한국적 요소를 활용해 K-드라마만의 정체성을 채워가는 과정"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의 전통은 더 이상 박제된 과거가 아니다. 현재의 시청자와 소통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K-콘텐츠만의 색을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됐다. 장르의 경계가 무너진 자리에서 탄생한 새로운 사극들이 앞으로 K-콘텐츠의 영토를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티브이데일리 황서연 한서율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DB, tvN, SB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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