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산어보' 이준익, 비주류의 미학 [인터뷰] |
| 2021. 03.27(토) 17: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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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익 |
[티브이데일리 박상후 기자] 이준익 감독이 그린 비주류들의 삶은 짙은 여운을 안겼다. 그의 넓은 시야는 또 한 명의 역사 위인을 재조명, 현재까지 관통하는 가치와 메시지를 담아내며 시대극 명작 계보를 잇는 작품 탄생을 알렸다. '시대극의 대가'라는 수식어를 입증한 셈이다. 영화 '자산어보'(감독 이준익·제작 씨네월드)는 흑산으로 유배된 후, 책 보다 바다가 궁금해진 학자 정약전(설경구)과 바다를 벗어나 출셋길에 오르고 싶은 청년 어부 창대(변요한)가 '자산어보'를 집필하며 벗이 되어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이준익 감독은 조선시대의 학자 정약전을 조명하고, 그가 지은 어류 학서 '자산어보' 서문에 등장하는 창대와의 관계를 진정성 있게 담아내며 현시대의 관객들에게 깊은 공감과 울림을 선사할 예정이다. 이준익은 그동안 영화 '사도', '동주', '박열' 등의 작품에서 역사 속 인물을 새롭게 조명해왔다. 이번에도 그는 유명한 인물 정약용 대신 그의 형 정약전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이에 대해 이준익은 "보통 사극은 거대한 사건에서 파생되는 인물로 꾸민다. 하지만 '자산어보'는 변방의 작은 이야기다. 가공된 것이 아닌 그 시대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라고 밝혔다. 이어 "사실 의식의 흐름 안에서 정약전에 꽂혔다. 한 시대의 위대한 인물이 있다면 그는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그 시대를 헤쳐나간 사람들에 주목했다"라며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에게 들어가면 고구마 줄기처럼 많은 가지가 뻗어있다. 사건보다 인물의 사연으로 들어가는 방식으로 촬영했다. 종전에 찍던 사극과는 약간 다르다"라고 덧붙였다. 특히 이준익은 매번 덜 주목받아온 비주류의 인물들을 주목하는 이유로 흥미를 꼽았다. 그는 "난 반복적으로 다루어지는 인물이 아닌 사람을 찾아다닌다. 영화로서 유리함과 불리함을 따지지 않으려고 한다. 동시대에 뜨거운 인물들이 많은데, 반복적으로 재소비되는 게 아쉬웠다. 주목받지 못하는 인물 안에 내가 보이더라"라고 말했다. '자산어보'는 고증과 허구가 적절하게 짜인 이야기다. 이준익은 정약전의 이야기는 실제 역사를 토대로 제작했으며, '자산어보' 서문에 짧게 언급된 창대의 경우 허구로 만들었다. 이에 대해 이준익은 "실존 인물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시나리오를 쓸 때나 현장에서 영화를 찍을 때나 함부로 찍어나갈 수 없었다"라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정약전, 정약용은 기록이 있어서 표현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창대는 기록에 몇몇 구절만 있었다. 창작의 여지가 있어 가족 관계와 배경 등을 새롭게 만들었다"라며 "정약전이라는 인물의 선명성을 드러내기 위한 기능을 창대에게 부여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준익은 '동주'에 이어 두 번째로 흑백 영화에 도전했다. 그는 "컬러는 우리의 일상이다. 200년 전 과거를 흑백으로 본다는 건 새로운 경험일 것 같았다. 다양한 세계를 만나고 싶어 일부러 흑백을 고집했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컬러 버전으로는 선보이기 힘들 것 같다. 찍을 때 흑백 연출에 맞춰 모든 부분이 세팅됐다. 전체적으로 보이는 미장센이 흑백 효과로 비치게끔 진행됐다. 컬러로 바꾸면 이상할 것 같다"라며 흑백 영화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자산어보'는 배우 설경구와 변요한의 케미스트리가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다. 두 사람은 캐릭터에 완벽히 녹아들어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이준익은 이들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설경구는 영화 '소원'에서 만났다. 배우 이전에 사람으로서 감동했다. 관객은 연기한 외면을 보지만 현장에서는 내면을 본다. 정말 진실된 사람이다"라고 전했다. 이어 "설경구 얼굴에서 조선의 선비 상이 보이더라. 그 자체를 만났을 때 감탄스러웠다"라며 "변요한은 이렇게 잘할지 몰랐다. 이런 역할을 본 적이 없다. 창대의 여정을 차갑고 뜨겁게 해내더라. 가짜 같은 연기가 없었다. 그냥 창대로 보였다"라고 극찬했다. 이준익은 극 중 가거댁 역의 이정은에 대해서도 "실례일 수도 있는데 어머니 같은 분이다. 정약전과 창대가 이정은의 집에서 별별 것 다 하는데, 하나도 어색하지 않더라. 원래 살던 사람 같았던 이유가 이정은 덕분이다. 다 품어주는 어머니 같은 배우다. 이는 모두 이정은이 가진 아우라의 힘이라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자산어보'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블루로 지친 관객에게 온기와 위로를 전하는 작품이다. 이준익은 영화 산업이 큰 어려움 겪을 때 개봉하는 것에 대해 "극장들 적자 폭이 상당하다. 철저한 방역 수칙 하에 조심스럽게 개봉해서 관객들을 만나지 않으면 올해 내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라고 털어놨다. 이준익의 신념은 확고했다. '영화는 만든 사람이 아닌 보는 사람의 몫'이라는 그의 철학은 '자산어보'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였다. 이준익은 "감독은 지식을 다른 결정체로 만들어내기 위해 지혜를 발휘할 뿐이다. 메시지를 말로 전하면 제 스스로가 불손해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만드는 사람의 의도보다 보는 사람에게 다가가는 의미가 그 영화의 값이다. 입장료와 시간을 내고 영화에 관심을 가진 자신의 호기심을 책임지는 거라고 생각한다"라며 "사람들이 다른 의도로 봤으면 그게 맞는 거다. 작품은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다. 영화와 관객은 1대1로 만단다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또한 이준익은 영화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극장이 비어있기 때문에 간격을 띄워서라도 뚜벅뚜벅 가려고 했다"라며 "100년 이상 지탱해온 영화라는 플랫폼은 앞으로도 지속될 거다. 비민주적일 수도 있지만, 새로운 문명을 뚫고 나가는 최전선에 있는 매체다. 영화는 장르를 뛰어넘는 도전의 장인데, 지금은 잠시 머물러있더라도 그 반작용이 아주 클 거라고 자신한다"라고 전했다.
[티브이데일리 박상후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제공=씨네월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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