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안84’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터 [윤지혜의 대중탐구영역]
2020. 08.31(월)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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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어느 유명 디자이너브랜드는 새로 발표한 컨셉에서 여성을 성적으로 표현한 느낌을 담아내며 많은 이들의 빈축을 샀다. 당시 꽤나 그 여파가 컸던 것이 해당 브랜드의 성장 과정 자체가 소비자들과 오랜 시간 이어온 진정성 어린 교류에 기반을 두고 있었던 데다가 소비자의 대부분이 여성이었다. 서로간의 신뢰를 일방적으로 망가뜨린 거나 다름없는 행위에 비난의 목소리는 거세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냐면, 나름의 공을 들여 준비했을 컨셉은 깔끔하게 폐기되었고 해당 브랜드의 대표는 ‘성인지 감수성(성별 간의 불균형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갖춰 일상생활 속에서의 성차별적 요소를 감지해 내는 민감성)’의 부족을 인정하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물러나서도, 실망한 지지자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끊임없는 사과와 함께, 개선의 방향와 의지 또한 명료하게 약속해야 함은 물론이었다.

성인지 감수성을 갖추는 것, 아니 무엇인지에 대해 아주 호되게 겪었다 하겠다. 사실 이런 상황은 비일비재하고 앞으로도 비일비재할 예정이다. 왜냐면 아직 이전 시대의 사고방식을 지닌 이들, 으레 기성세대라 분류되지만 생각보다 젊은 세대에도 많이 분포되어 있는 이들이 변화하는 오늘의 사고방식을, 감수성을 제대로 따라가질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감도 잡지 못하고 있다 할까.

남성과 여성을 보는 시각과 사회의 왜곡된 현실을 해석하는 방식 등이 회오리가 치듯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 게 오늘의 이야기인데, 그러한 오늘을 여전히 이전의 틀, 그러니까 이미 습득하고 취득하여 너무도 자연스러운, 그래서 오류가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하는 이전의 사고방식 안에 끼워넣으려 하니, 곳곳에서 반격의 소리들이 일어날 수밖에. 논란이 되고 있는 ‘기안84’의 경우가 대표적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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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그의 웹툰 ‘복학왕’에 담긴 한 여성 캐릭터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비판을 받았는데, 이유인즉슨 작품 속에서 그녀가 보인 입사 전 회식자리에서의 모습이나 회사 상사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통해 입사할 기회를 얻었다는 암시 등이 다분히 여성비하적이란 것이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웹툰 연재를 중단시켜달라는 요청이 올라왔고 그가 고정으로 출연해온 ‘나 혼자 산다’ 에는 그의 하차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빗발쳤으니 말 다한 셈이다.

혹자는 창작의 자유를 언급하며 현재 기안84에게 부어지는 비난이 합당하지 않음을 주장하나, 이는 창작자에게 자유와 함께 주어지는 책임을 외면하는 이야기다. 기안84가 취업이란 문제 앞에 선 여성의 현실을 보여준 방식은, 여성에 대해 갖는 남성의 편견을 더욱 확고히 하고 확장하게 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며, 평소에도 아슬아슬한 발언이나 태도를 일삼던 그였음을 떠올려 볼때, 그저 본인이 지닌 성인지 감수성이 오늘의 기준을 따라오지 못한 결과로 판단될 뿐인 것이다.

비단 기안84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터. 어쩌면 이제 이전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창작자라면 더더욱 오늘,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세계는 위기다. 오래 전에 시작되어 지속된 지각변동이 드디어 판을 뒤집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물론 극심한 변동이 일어나는 시기일수록 기존의 세계와 사고방식은 더욱 완고해지기 마련이라 겉보기엔 그렇지 않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에 속지 않고 더 이상 이전의 방법으로 세계와 사람과 삶을 대할 수 없음을, 견고하다 여기던 그 틀이 이미 무너졌고 무너지고 있음을, 인지하는 자들만이 새로이 등장하고 있고, 등장할 유연한 세계에 자유로운 첫 발을 내딛을 수 있다는 진실을 알아차리는 것이 오늘 우리의 급선무다. 그러니 기안84 또한 현재 처한 논란의 상황을 단순히 작품을 수정하고 자숙하는 것으로만 넘어갈 게 아니라, 자신의 성인지 감수성을 재점검하고 바로잡을, 새로운 사고방식과 세계관을 갖출 기회로 삼는다면 더없이 좋은 전개이겠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니스트 news@tvdaily.co.kr, 사진 = DB, '기안84'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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