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준수 "기적 같은 10년, 칼 한 자루로 편견 부쉈죠" [인터뷰] |
| 2020. 08.23(일) 17: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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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모차르트!, 김준수 인터뷰 |
[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가수 김준수가 뮤지컬 배우 데뷔 10주년을 맞았다. 김준수를 만나 "기적과도 같았다"는 지난 10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모차르트!'(연출 아드리안 오스몬드)는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어린아이의 모습인 아마데로 의인화해 '인간 볼프강'의 고뇌를 그려낸 작품이다. 극작가 미하엘 쿤체의 극본,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의 넘버가 만나 1999년 초연 이후 전 세계의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2010년 세종문화회관 초연을 시작으로 총 5번의 공연을 거쳐 올해로 6번째 시즌을 맞았다. 초연 무대를 통해 뮤지컬 배우로 데뷔한 김준수는 '모차르트!'와 함께 데뷔 10주년을 맞았다. 당초 23일 마지막 공연을 가질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지난 20일 갑작스레 마지막 무대에 서게 됐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요즘 같은 시기에 공연을 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를 느끼고 있다. 쉽지 않은 방역 절차를 거치고 한 분도 빠짐없이 마스크를 잘 쓰고 계신 관객분들을 보며 감동한다. 매 회 마지막 무대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한다"던 그에게 10주년 무대에 선 그간의 소회를 들었다. 김준수는 "데뷔작 무대, 그것도 똑같은 장소에 서있는 것만큼 배우로서 영광스럽고 기쁜 일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에게 '모차르트!'는 고맙고도 두려운 작품이었다. 2010년 당시를 회상한 김준수는 "힘든 시기에 출연 제의를 받았다. 너무나 많은 변화를 겪고 심적으로도 위축돼 있던 시기인데, 해보지 않았던 장르에 나선다는 것이 두렵고 부담스러웠다"고 말했다. "감사한 제안임은 알았지만 감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는 김준수. 정중히 출연을 고사했지만 대본과 앨범을 받게 됐고, 이후 무심코 펼쳐본 대본 속 모차르트가 자신과 너무나 닮아있어 '동병상련'을 느꼈다는 그다. "모차르트는 천재고 저는 아니라는 것만 빼면, 제 상황과 과거 모차르트의 상황이 너무나 비슷해 보였어요. '내가 이러려고 연예인을, 가수를 했나? 나를 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라봐주지 않는 걸까?'라는 생각을 할 때였거든요. 저를 연예인은커녕 하나의 인격체로도 봐주지 않았고, 제가 하지 않은 말들이 떠돌아다니는 것에 답답하고 억울함을 느끼던 시기예요. 그때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었던, 가슴에 응어리졌던 말들이 모차르트의 대사에 담겨 있었어요."
김준수는 "그전에는 모차르트를 그저 천재적인 음악가로만 알았지, 이렇게 힘든 삶을 산 지는 몰랐다. 결정적으로 '황금별'이라는 넘버를 듣고 울컥했다가, 가사를 보고 무너져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자유를 갈망하고, '황금별'이라는 꿈을 찾기 위해서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넘버의 노랫말에 큰 감명을 받았다는 것. 김준수는 "이 이야기를 빌려서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연기하면 정말 행복하겠다는 생각으로 도전을 하게 됐다. 욕을 먹거나 성공을 하지 못 하더라도 상관없었다"고도 말했다. 초연 당시 '모차르트!'는 큰 성공을 거뒀다.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한 장르였던 유럽 뮤지컬을 널리 알렸고, 김준수 개인으로서는 세종문화회관 3000석을 매진시켰다는 놀라운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김준수는 "매 회, 매 작품마다 '이게 내 마지막 작품일 수도 있다'는 자못 비장한 각오로 무대에 임했다는 의외의 심경을 털어놨다. "티켓파워나 인기가 평생 유지되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열심히 활동을 해도 꾸준한 사랑을 받기가 쉽지 않은데, 나는 단 한 번도 방송에 나를 비추거나 나라는 사람을 알릴 기회를 얻지 못했다"며 "매 순 간 이 기적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를 생각하며 살았다. 그래서 더 악착 같이, 절실하게 노래하고 연기했다"고 말했다. 김준수는 "뮤지컬은 내게 마지막으로 남은 칼 한 자루였다. 이것까지도 녹슬어 버리면 나라는 사람은 끝난다는 마음으로 임했기 때문에 10년 뒤인 오늘, 여기까지 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긴장과 설렘 속에서 첫 무대를 준비하고, 배우들과 의견을 나누며 함께 작품을 완성해 나가는 것에 희열을 느낀다는 그다. "10년 전에는 모두들 '준수야'라고 절 불렀는데, 이제는 '오빠', '형'이라고 부르는 친구들이 너무 많아졌다는 것 말고는 달라진 게 없다"며 웃어 보였다.
10년 전, 아이돌 가수가 뮤지컬 무대에 도전하는 일 자체가 낯설던 당시에는 편견 속에서 고통도 겪었단다. "뮤지컬과 어울리지 않는 창법이라며 욕부터 먹고 시작했다"고 말문을 연 김준수는 "당시 분위기, 어쩔 수 없는 장르의 특수성 때문에 욕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도 이해를 한다. 파이가 정해져 있는 치킨 싸움에 끼어든 셈이니, 욕을 먹는다 해서 불만을 가지지는 않았다. 대신 더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이려 했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배우가 실수를 하면 웃고 넘어가겠지만 내가 실수를 하면 큰일이 난다는 마음으로, 나를 향한 잣대가 더 엄격하다는 생각을 강박처럼 하며 매 공연 자기 최면을 걸었다"고 회상했다. 창법에 대한 끊임없는 지적도 있었다. 그는 "사실 창법도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다. 데뷔할 당시는 성악이 뮤지컬에 적합한 발성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일 때였다"며 "이후 힙합 뮤지컬에 랩을 하거나, 알앤비, 록 창법 등이 더욱 필요한 작품들이 많이 등장했고, 사람들의 인식이 계속해 변화해온 것 같다"고 말했다. "마치 UFC라는 종합격투기 무대에서 쿵푸, 무에타이 등 여러 무술을 뽐내듯이, 뮤지컬 안에서도 작품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다양한 장르가 활성화된 것에 안도감을 느끼고, 뿌듯함을 느끼기도 한다"는 그다. 같은 이유로, 김준수는 '모차르트!' 이후 두 번째로 만났던 작품인 '엘리자벳' 속 죽음(토드) 캐릭터를 가장 뿌듯하게 여긴다고. "한국 초연 전까지만 해도 주로 중후한 매력을 지닌 중장년 남자 배우들이 맡아오던 죽음이라는 캐릭터를 내 스타일대로 해석했다"며 "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려고 했고, 걸음걸이나 제스처에 중성적인 느낌을 섞고 춤도 췄다. 당시 여론은 '욕 잔치'였는데, 나중에는 해외 프로덕션에서도 젊은 남자 배우들이 죽음을 연기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10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작품 속 여러 캐릭터를 만나온 김준수. 10년 간 뮤지컬 배우로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무대를 찾아준 관객들이 만들어 준 '기적'이라고 수차례 강조한 그는 "앞으로도 뮤지컬 배우로 열심히 활동할 것"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뮤지컬로 인해 또 다른 꿈을 꿀 수 있게 됐고, 마땅히 받았던 사랑을 되돌려 드려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1년에 한 번, 길게는 2년에 한 번은 창작 뮤지컬에 꼭 참여하고 싶다는 포부를 내비치기도 했다. [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제공=씨제스엔터테인먼트, EMK뮤지컬컴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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