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이유 설명하는데만 15분, '호프' 나홍진 감독이 지독해서 좋다 [인터뷰]
2026. 07.09(목) 08:00
호프 나홍진 감독
호프 나홍진 감독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이렇게 지독해도 되나 싶다. 남들은 허투루 넘길 자그마한 부분까지 온전히 자신의 성에 차야 직성이 풀린다. 혀를 내두를 정도로 완벽을 향한 집착이 지독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렇기에 관객인 우리는 즐겁다. 나홍진 감독이 타협할 줄 모르고, 또 지독해서 참 좋다.

15일 개봉되는 영화 ‘호프’(감독 나홍진)는 비무장지대에 위치한 호포항 출장소장 범석(황정민)이 동네 청년들로부터 호랑이가 출현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온 마을이 비상이 걸린 가운데 믿기 어려운 현실을 만나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제79회 칸 영화제 초청작이다.

이번 영화는 ‘곡성’ 이후 나홍진 감독이 꼬박 10년 만에 내놓는 신작이다. 영화 ‘추격자’, ‘황해’, ‘곡성’까지 나홍진 감독은 매번 상상을 뛰어넘는 스토리텔링과 집착에 가까운 완성도로 관객들을 열광케 했다.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로 시작해 점차 비유와 상징의 영역으로 옮겨왔던 나홍진 감독의 세계가 ‘호프’에서는 SF 영역에 들어섰다. 나홍진 감독의 시선은 우주로 향했을까.

나홍진 감독은 매번 어두운 이야기에 끌리는 이유에 대해 솔직한 속내를 털어놨다. 그는 “저도 평범하게 살아가면서 뉴스를 보기도 하고, 돌아다니면서 어떤 현상을 맞닥뜨리기도 한다. 저 또한 밝고 아름답고 선한 상황에 이끌리는 건 당연하다”면서도 “하지만 어떤 이야기를 할지 선택할 때 굳이 저까지 밝은 이야기를 재조명해야 하나 싶다. 늘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것 같고, 네거티브한 쪽에 시선이 간다”고 설명했다.

나홍진의 세계는 늘 인간과 악의 본질을 탐구하는 데서 출발했다. 나홍진 감독은 “처음엔 사이코패스가 무엇이고 도대체 왜 이러며, 이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서 시작했다. 최근작에서는 초자연적인 곳에서까지 이 현상을 바라보려 했다”며 “이번에는 ‘더 심화시키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우선이었고, 결국 초자연적인 현상을 넘어 우주적인 관점으로까지 나아가게 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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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 없는 스케일의 SF 장르인 만큼, 더군다나 디테일에 대해 광기에 가까운 지독함을 보이기로 유명한 나홍진 감독이니 제작 공정은 평소보다 더 험난했다. 촬영 자체는 이전 작품들보다 일찍 끝났지만, 프리 프로덕션과 포스트 프로덕션에 엄청난 시간이 소요됐다. 나홍진 감독은 “2018년부터 스태프들과 여러 공정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다. 다들 이런 걸 해본 적이 없으니 학습과 시행착오의 시간이 필요했다”며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영화판에 장비도 없어서 다 구비해야 했다. 비용과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린 작업이었다”고 회상했다.

이토록 거대한 도전을 감행한 배경에는 한국 영화계의 위기감도 작용했다. 영화 기획 당시 시장에 드리운 먹구름을 감지했다는 나홍진 감독은 “국내 시장에서만 해봐야 미래가 없겠구나, 해외를 함께 겨냥해야 살아남겠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세상의 모든 장르를 다 집어넣는 것을 좋아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요소를 걷어내고 특정 색감을 강화시켰다. 예측 확률이 높은 선택이 장르 영화, 그중에서도 크리처물이라고 판단해 스타일의 축을 그쪽으로 옮겨갔다”고 덧붙였다.

비주얼 측면에서도 독창성을 놓치지 않았다. 나홍진 감독은 “매우 한국적이면서도 한국적이지 않을 수 있는,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절묘한 이미지들을 만들어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하나의 요소가 아닌 수천 개의 장르적 디테일들을 치밀하게 조율하며 ‘호프’만의 독보적이고 이질적인 분위기를 구축하는 데 집중했다.

전체 러닝타임 중 초반 1시간은 범석이 괴물을 쫓는다는 전형적인 플롯을 밀고 나간다. 숏폼 시대에 여간 과감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조금이라도 지루하게 느껴지면 영화 전체를 매도하거나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요즘 시대에 나홍진 감독의 그 선택은 보통의 자신감이 아니면 하기 힘든 선택이다. 나홍진 감독은 “장르 영화에 무조건 등장하는 전형적인 상황을 대놓고 가져와 확장시키고 도전장을 내민 것”이라며 “단순히 텍스트화하면 ‘범석이 괴물을 쫓아 동네를 헤매는 이야기’로 끝나지만, 비주얼과 사운드를 통해 영화적 시퀀스의 목표치를 극대화했다. ‘전형적인 상황으로 시작하지만 죽여주게 만들어주겠다’는 생각이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작품의 핵심인 미지의 존재의 디자인에도 다 이유가 있었다. 단순히 징그럽고 낯선 생명체가 아니라, 다양한 사연의 구성원들로 설정했다. 그는 “신분상 절대 마주칠 일 없던 이들부터 출신과 역할이 모두 다른 존재들이 섞여 있다”며 “원래는 더 흉측하고 썩은 모습으로 디자인했다가, 이들이 이 행성에서 엄청난 고난을 겪고 있다는 서사에 맞춰 조금 순화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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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나홍진 감독이 가진 특유의 지독함에 감탄했다가도 이내 혀를 내두르게 됐다. 영화의 시작점부터 명확한 의도를 품고, 그것이 맞다고 판단되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뚝심과 지독함은 경외심마저 불러일으켰다. 개봉 직전의 막판 단계까지도 단 하나의 디테일을 놓치지 않기 위해 편집 중이라는 나홍진 감독에게서 완벽을 향한 집요함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특히 왜 영화의 제목을 ‘호프’로 지었는지에 대한 질문이 나왔을 때, 나홍진 감독은 자신의 의도를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기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해 대답했다. 나홍진 감독의 대답은 무려 15분 간(인터뷰 시간은 총 50분이었다) 이어졌다. 심지어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어서 여기에 쓸 수도 없다. 그렇지만 나홍진 감독의 설명을 듣고 나니 다소 의아했던 부분들에 대해 단번에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영화의 결말과 해석은 온전히 관객의 몫으로 남겨뒀다. 나홍진 감독은 “’곡성’ 때도 그랬듯 영화관 객석을 채우는 관객분들은 정말 다 다르다. 관객을 하나의 덩어리로 보고 플롯을 결정하는 선택은 하지 않는다”며 “명확하게 답을 내려 오해를 만들거나 부정받기보다는, 관객 한 분 한 분의 입장에서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정성스럽게 고민했다”고 강조했다.

결국 ‘호프’의 서사를 완성하는 마지막 조각은 스크린 밖의 관객들이다. 하나하나 깊이 고민하며 작품을 빚어낸 나홍진 감독은 “이 영화를 종결짓게 되는 권한은 온전히 관객분들에게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10년의 치열한 고군분투 끝에 완성된 나홍진 감독의 새로운 세계가 관객들과 만나 어떻게 확장할지 기대가 된다.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영화 '호프',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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