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OA가 이겨낸 산전수전
2019. 09.14(토) 16:34
AOA 너나해 퀸덤 마마무 무대 영상
AOA 너나해 퀸덤 마마무 무대 영상
[티브이데일리 이기은 기자] 지난 2012년 걸그룹 AOA를 데뷔시킨 FNC엔터테인먼트는 신장 약 170cm의 설현에게 몸무게 48kg를 제시했다. 이듬해 방송된 모 리얼리티 예능에서 회사 관계자는 입속에 음식을 우겨넣는 설현에게 “네가 지금 치킨이나 먹을 때냐”라고 따끔하게 혼을 냈고 설현은 “죄송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초창기 걸그룹의 흔한 마케팅 전략이었다.

아이돌은 연예기획사가 내놓는 가변적 신상품이다. 영리창출이 목표인 소속사 입장에 따라 트레이닝 과정의 인권 유린도 빈번해졌다. 실제로 국내 걸그룹의 성 상품화는 근 10년 간 가요시장 수익구조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해냈다. 소녀시대와 카라가 ‘오빠’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채 테니스스커트나 탱크톱을 보급했고 3, 4세대 걸그룹들이 이들의 인장을 응용하며 국내외 인기를 견인했다.

EXID 히트곡 ‘위아래’가 하니의 몸매를 클로즈업한 ‘직캠’으로 엉겁결의 역주행에 성공했을 무렵, 통신사 SK는 설현의 등신대를 광고물로 제작했다. 설현의 뒤태를 담은 공산품은 AOA의 높은 인지도로 이어졌으며 설현은 각종 공식석상, 행사, 방송에서 등신대 포즈를 숱하게 재현해왔다.

2019년의 AOA는 네온사인처럼 여전히 형형한 가요계 상업주의의 산 증인으로 살아남았다. 산전수전을 겪은 소녀들은 어느덧 1020대들에겐 친숙한 언니이며 걸그룹들 사이 연차 높은 경력직이 됐다. 이들은 하이힐, 치마, 노출 등 여성 도구성에 관한 후발 열차 승객과도 같다. 무엇보다 여성 인권 신장에 관한 건의사항이 활기를 띠는 현 시점, 트렌드를 비교적 빠르게 흡수하는 방송연예계는 이 같은 페미니즘 기류를 감각적인 퍼포먼스로 규합해내는 추세다.

네이버TV 클립영상 조회수 약 31만, 풀 버전 25만뷰. Mnet 예능프로그램 ‘퀸덤’의 AOA가 만들어낸 ‘너나 해’ 무대는 세상의 이 같은 변화를 상징적으로 증명한다. 지민이 직접 기획하고 랩 가사를 쓴 이 무대에서 AOA는 히트곡 ‘짧은 치마’ 기조와 첫 결별을 고했다. 남성 정장을 입은 AOA는, 반대로 하이힐과 치마를 착장한 남성댄서들과 교란된 안무를 펼치며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한다.

‘솜털이 떨어질 때(=나이가 들면) 벚꽃도 지겠지(=걸그룹 시절도 끝난다)’에 이어 ‘나는 져버릴 꽃이 되긴 싫어 I'm the tree’라며 자신의 뿌리를 또렷이 명시하는 걸그룹. 이를테면 AOA는 자아(ego)란 모든 사람의 자연스러운 당위임을 적시한다. 더불어 ‘퀸덤’의 카메라는 AOA의 선전포고와 그들을 동경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후배 걸그룹 멤버들의 눈빛을 파워풀하게 교차 편집했다. 차세대들에게도 이어질 공통 과제라는 전언이다.

[티브이데일리 이기은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조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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