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좋은 리더십, 좋은 선후배, 아니 좋은 관계란 무엇일까. 모든 관계에는 갈등이 존재할 수밖에 없고 이것을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해당 관계는 또 다른 단계로 나아가거나 혹은 멈추거나 끊어진다.

어느 쪽이 좋은 과정이고 또 좋지 않은 과정이라 말할 수 없는 건, 순간 진심을 다해 부딪혔다면 어느 쪽의 모습을 맞이하던 후에 돌아보았을 때 분명 각자에게 좋은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에는 알 수 없다만.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서 펼친 ‘허니제이’와 ‘리헤이’의 배틀은 한 편의 드라마에 가까웠다. 사제지간으로 인연을 시작하여 무려 7년이나 동고동락했으나 관계가 틀어져버린 이들이, 갈라진 이후 서로를 제대로 맞닥뜨린 첫 무대였다는 것, 그게 또 하필 ‘노 리스펙(NO RESPECT) 지목 배틀’이라는 게 참, 심상치 않은 플롯이지 않나.

처음에는 치열한 싸움이 되리라 예상했다. 물론 허니제이와 리헤이가 배틀에서 보여준 무대는 치열했다. 하지만 어느 특정한 구간에서 두 사람이 서로 닮은 춤의 모양새를 보여주며 배틀의 분위기는 급전환되었는데, 배틀의 무대라는 게 정해진 안무 없이 그간 쌓아온 실력을 바탕으로 즉흥으로 이루어지는 터라 있을 수 없는 장면이 나온 것이다.

“‘노 리스펙 지목 배틀’을 했을 때 하고 싶었어요, 언니랑 춤을 서로 보여줄 기회가 한번도 없었어요”
함께 해왔던 지난날의 길고 긴 흔적이, 5년의 시간도 채 지우지 못할 만큼 몸과 마음에 깊게 배여 있었던 게다. 이를 지켜보던 ‘코카엔버터’의 팀원들, 그러니까 리헤이와 함께 허니제이를 떠나온 댄서들은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어떻게 갈라졌던, 소중했던 삶의 한 부분, 열정 가득한 순간을 함께 보낸 기억은 사라질 수가 없으니까, 지나와 돌아보니 다 아득하고 아련한 추억일 뿐이라는 사실이 순간 가슴 먹먹히 다가온게 아닐까. 허니제이와 리헤이 또한 배틀을 끝내고 결과와 상관없이 서로를 끌어안고 깊은 감회를 나누었다.

비로소 갈등이 빚어낸 5년의 간극이 좁혀지는 기점을 맞이한 것이다. 갈등은, 어떤 때는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처럼 굴다가도 이렇게 어느 예기치 못한 순간, 스르르 녹아 들고 말아서 아무리 전투력 충만한 이들이라도 제 힘을 못 쓰게 만든다. 하지만 이러기 위해서 필요로 하는 조건이 있다.

리헤이는 배틀 상대로 허니제이를 지목한 것에 대해, 노 리스펙이 아니라 ‘리스펙’의 의미이며 무엇보다 자신이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했다. 리헤이의 진심이 통했는지, 실제로 허니제이는 배틀을 치른 직후의 인터뷰에서 리헤이가 많이 멋있어졌더라는, 옛스승이 건넬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을 한 바 있다.

즉, 과거의 사건에 휘둘리지 않고 오늘에 놓인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 그리고 지난 날의 자신과 상대를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자세. 여기서 갈등은 꼬리를 잡히기 마련이다. 어쩌면 허니제이와 리헤이는 프로그램 이전부터 풀 준비가 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타이밍만 보고 있었을 따름이지.

“결과적으로는 그 선택으로 인해서 저도 지금의 팀을 만났고 혜인이도 멋있는 리더가 됐으니까 저는 이것도 좋은 결과라고 생각해요.“ 이것이야말로 관계에 생긴 갈등을 성심성의껏 맞닥뜨리고 시간을 들여 풀어나간 이들만이 얻을 수 있는 성과이자 경지로, 허니제이와 리헤이의 관계가 우리의 뇌리에 감동의 서사로 인식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누구에게나 풀지 못한 갈등 혹은 지키지 못한 관계가 하나쯤 있을 테니.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니스트 news@tvdaily.co.kr, 사진 =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