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작 ‘현실적인 고민’은 없는 ‘달콤한 나의 도시’, ‘씁쓸함’만 남기다 |
| 2014. 09.05(금) 16: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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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스무 살, 우리는 자연스러운 수순처럼 청소년이란 꼬리표를 떼고 어른이란 공식적인 자리에 들어선다. 자고로 어른이란 제 한 몸 책임질 수 있어야 하겠지만, 경제권에 있어서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대부분 부모에게서 완벽한 독립을 이루지 못한 채 스무 살이 된다. 물론, 대학진학 대신 취업전선에 뛰어드는 사람들은 여기서 제외한다. 대학생들도 무작정 받고만 있으려 하진 않는다. 나름의 돈벌이를 해보려 하지만, 워낙 높은 학비 덕에, 금수저 물고 태어나지 않은 이상 자립은커녕 보통의 삶을 영위하기도 힘들다. 그렇다고 졸업하면, 이십대 중후반이 되면 좀 더 나아질까. 어림없는 소리, 졸업하는 것조차 힘들다. 여전히 부모의 한 쪽 어깨에 얹힌 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취업전쟁을 치러야 한다. 대출받은 학비도 같고 효도라는 생색도 내고, 그 사이사이를 보다 밝은 내일을 위한 궁리로 빼곡히 채워보려면, 웬만한 월급 가지곤 안 된다. 하지만 모두 다 같은 마음이니, 필사의 마음을 가지고 좁은 문을 뚫어야만 하는 형국이다. 하늘이 도왔나, 취업이 됐다 치자. 그래, 이전보단 낫다. 사람들을 밀치고 좁은 문에 들어서고 보니, 내 앞가림 정도 할 수 있는 어른이 된 듯해 좀 으쓱하다. 하지만 이젠 결혼이 문제다. 애인이 없어도 문제고 있어도 문제다. 평범한 샐러리맨이 10년 가야 모을 수 있다는 ‘억’ 소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는 게 서울이란 도시의 ‘결혼’이니까. 이왕이면 폼 나게 잘 살아보고 싶어 몸과 마음 상해가며 돈을 벌어들이다 보면 애인 만들 틈이 없고, 다행히 이래저래 정든 애인이 있어 결혼 좀 해볼라치면 갖가지 현실적인 문제들이 무섭게 들이닥친다. 그나마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좀 나은 이들의 것이다. 그 와중에 시린 현실 앞에서도 차마 포기하지 못한 채 여전히 터무니없는(흔히 객관적인 기준에서) 꿈을 이야기하는 청춘들은 보통의 범주에도 속하지 못한다. 어쨌거나, 보통의 우리는 이렇게 스무 살을 지나 ‘서른’이 되어간다. ‘서른’이란 나이는 특별하다.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청춘이 흘러간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지점이기도 하고, 어느새 마무리된 인생의 한 단락에 대한 성적표를 받아 들어야 하는 까닭이다. SBS ‘달콤한 나의 도시’는 서른 즈음에 접어든 네 명의 일반인 여성들이 모여, 그 나이 때 흔히 이루어지는 ‘현실적인 고민’들을 나누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정작 보편적인 어떤 고통에 대한 공감이라기보다 출연한 여자들의 직업, 외모, 이력만이 이슈가 되었지만. 그저 저렇게 좋은 직업, 예쁜 외모, 탄탄한 신랑감을 가진 여자들도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놀라움 정도랄까.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현실적인 고민’들은 지극히 지당하고 마땅한 것이었다. 어릴 적 우리가 매체에서 접한 ‘이십대 후반에서 서른까지’의 이미지는(어디까지나 여성의 입장에서) 미국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그것과 유사했다. 일도 사랑도 똑 부러지게 해내는, 높은 굽을 신고 뛰어도 멋진 자세를 유지할 수 있으며, 일주일에 한 번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즐길 줄도 안다. 고된 일상마저도 낭만적으로 만드는 도시여성의 모습이다. 하지만 실제로 때가 되어 맞닥뜨린 현실은 낭만을 생각하기엔 너무 냉혹하다. 심지어 스무 살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낮은 성적표를 받아들어야 할 때면, 지나간 십년의 시간에 대한 자책감마저 든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열심히 살지 않은 것도 아닌데, 결론은 결국, 상상 속 그들보다 ‘열정’이 부족했고 ‘성실’하지 않았던 탓이란다. 역시, 우리가 현재 겪는 ‘현실적인 고민’은 지극히 지당하고 마땅한 것이 되어 버린다. ‘달콤한 나의 도시’를 보며 느낀 씁쓸함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단순히, 그들이 보편적인 사람들보다 좋은 위치에 있어서가 아니다. 보통의 ‘서른 즈음’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진짜 현실적인 고민을, 그 속내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채, 그저 사람들의 구미를 당길 만한 어떤 하나의 현상을 그려냈기 때문이다. ‘서른 즈음’을 지나가는 일반인들의 ‘현실적인 고민’이 갖는 진짜 속내는, 열심히 살아왔는데도, 나름 발을 동동 구르며 바삐 움직여왔는데도 불구하고 왜 나아진 건 전혀 없냐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냐는 궁극적인 질문이다. 정말 나의 ‘노력’에만 해당하는 문제일까. 뚜렷한 답을 내어주길 원했던 건 아니다. 쉽게 나올 리도 없다. 어려운 문제이지 않은가. 적어도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모든 이들에게 한 번쯤 진지하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볼, 그 답을 찾아 볼 기회를 제공해주길 원했다면 너무 큰 바람이었을까. 흔히 변화는 무게감 있는 작은 질문에서부터 시작되니까. 이게 바로, 단지 수익구조를 가진 방송 프로그램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일부 시청자들이 일말의 기대감을 가지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었던 이유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니스트 news@tvdaily.co.kr / 사진=해당 드라마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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