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괴짜 나홍진의 심연”…‘호프’·‘곡성’·‘황해’ 연결 고리 [무비노트] |
| 2026. 07.23(목) 08: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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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 내용 요약 ‘호프’ 둘러싼 관객들의 ‘설왕설래’ 나홍진 전작에 도사린 ‘어떤 답’ ** 영화 세 편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티브이데일리 이기은 기자] 당초 ‘추격자(2008)’ 나홍진 감독의 비범한 면모는 현장에서도 악명이 높았다. 나 감독은 “연쇄살인마 지영민(하정우)이 여성의 머리통을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서 둘러메고 다니는 모습을 찍겠다”고 주장했고, 아연실색한 스태프들은 그것만은 안 된다며 한사코 만류했다. 그럼에도 불안을 떨치지 못한 관계자는 나 감독이 이 같은 장면을 남몰래 찍을까 봐 이튿날까지 퇴근도 할 수 없었다는 후문. 그로부터 18년이 흐른 현재, 그의 시선이나 심경에도 변화가 있었을 테다. 곳간에서 인심도 여유도 나는가. 젠지 세대들의 천재 감독으로 떠오른 그는 “‘호프’는 병맛”이라는 시중의 아우성에도 허허실실 웃음으로 “그저 즐거이 봐주시길 바란다”고 눙쳤다.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LA 팀과 협업하는 등 뼈대를 잡는 데만도 5년이 걸렸다. ‘곡성’ 이후 10년 만에 돌아온 나홍진 신작 ‘호프(HOPE)’를 둘러싼 노이즈는 당연해 보인다. 전통의 서사 중심주의 시네마를 용감무쌍하게 탈주해 버린 기괴함, 독특함, 아름다움은 이를테면 상기 포토 한 장으로도 축약할 수 있다.
나홍진의 집요한 편집 테크닉, 명장 홍경표 촬영 감독의 근사한 미감과 700억 제작 기반 미술은 창작물의 서사를 배제하고라도, 다만 영화가 스타일링(Styling)으로만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역설한다. 중후반부를 견인한 도로·숲속 체이싱 액션은 편당 2~3조 단위의 제작비를 들이는 정통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이상의 미학적 가치를 충분히 증명한다. 상기 글은 ‘호프’ 관객을 어안이벙벙하게 한, ‘분절된 탓에 길을 잃은 것처럼 보이는 내러티브’를 작게나마 메꾸려는 헌정 의도다. ‘추격자’의 연쇄살인마 지영민, 전직 형사 엄중호(김윤석)의 뫼비우스 동네 추격전도 그렇거니와 내 안의 작은 의구심으로부터 출발해 소란을 겪거나 파국을 맞는 ‘황해’(2010), ‘곡성’(2016), ‘호프’(2026)까지, 여기엔 ‘스스로조차 영영 확인할 길 없는 인간의 웅숭깊은 심연’이 똬리를 틀었다.
◇ ‘황해’, 의심의 물줄기를 타고 ◇ 사람의 사소한 불안과 의심은 가까운 주변으로부터 출발한다. 연변에서 택시를 운행하는 김구남(하정우)은 한국에 돈을 벌러 간 아내마저 감감무소식인 가운데, 도박 빚에 시달리다 청부살인까지 의뢰 받는다. 감자를 우적우적 흡입하는 구남의 겉모습은 범박해 보이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그는 한국 어딘가에 상주할 아내가 다른 남자와 몸을 섞는 악몽을 꾼다. 꼬리에 꼬리를 문 의심이야말로 희망 없이 살아온 그가 매서운 황해를 건너가는 동력이다. 영화의 본질은 안개 같은 모호함이다. 구남은 아내를 향한 의심을 떨치기 위해 텅 빈 눈빛으로 기계적인 추적을 벌이고 칼을 휘두르며 이윽고 아내로 추정되는 시신과 마주한다. ‘내 아내는 (외도를 저지른 게 아니라) 죽었다’. 구남을 옭아맸던 의심은 확신이라는 미명으로 해방되는 듯하다. 비로소 그는 최종 살육전에 뛰어들어 자신을 이 지옥에 끌어들인 적들의 실체를 더듬는다. 그러나 구남이 사망한 이후 영화의 엔딩은 구남의 아내로 추정되는 여자가 기차에서 내리는 장면이다. 그가 구남의 아내인지는 알 수 없다. 누구도 경위를 확인하지 못한다. 다만 ‘황해’는 내 안의 불안을 견디지 못해 참혹한 현실에 몸을 내던지고 끝내 지옥을 자가 증축하는 인물들의 심연을 펼쳐 보인다. 진실이 무엇인지 종잡을 수 없기에 영원히 가 닿을 수도 없는 우리들의 혼탁한 바다, 그것이 ‘황해’다.
◇ ‘곡성’, 길을 잃은 믿음 ◇ ‘사바하’, ‘검은 수녀들’, ‘파묘’ 등 근 몇 년 사이 부쩍 성장한 한국 샤머니즘 오컬트물의 성행은 나홍진 감독의 10년 전 역작 ‘곡성’을 떼어놓고 말하긴 어렵다. 결계를 짓는 성문(門), 신내림과도 같은 통증, 무당 굿과 밀착된 하이라이트 등은 국가의 토속성을 효과적으로 스크린에 이식한 나홍진 감독에게 ‘한국의 라스 폰 트리에’라는 유명세를 안겼다. 전작 ‘황해’의 개인적인 의심은 이제 ‘곡성’이라는 마을 공동체의 구설로 번진다. 낯선 외지인(쿠니무라 준)이 마을에 입성한 이후 원인 모를 연쇄 살인이 터지고 신병 같은 것들이 돈다.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 종구(곽도원)는 딸 효진(김환희)까지 시름시름 병을 앓기 시작하자 아버지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한다. 용하다는 무당 일광(황정민)을 포섭하고 귀기 서린 아가씨 무명(천우희)을 추궁하며 전염병처럼 느껴지는 외지인을 찾아가 패악을 부리기도 한다. 그러나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고 관객들도 이 미스터리의 실체를 종구와 함께 파헤쳐야 한다. 종구와 관객을 동시 혼란에 빠뜨리는 것은 바로 ‘곡성’ 인물들이 가진 이중성이다. 가령 일광의 굿은 겉보기엔 외지인을 처단하는 듯하지만 효진을 더 아프게 만들 수도 있다. 죽은 피해자들의 물건까지 보관하고 있는 무명의 아련함은 수상하고, 외지인이 제 집에서 사람을 살린다는 명분으로 행하는 의식은 더욱이 불길하다. 그렇다면 종구는 딸을 지키기 위해 누구를 공격하고 제거해야 할까. 휘몰아치는 이중성 속에서 종구의 믿음 방향이 딸의 생사를 결정하게 된다. 그는 결백했던 무명의 말을 끝내 믿지 못하고, 종구 딸 효진을 강타한 ‘곡성’의 파국은 그래서 관객에게 더 처참한 쇼크를 안긴다. 종구의 오판이 문제였을까. 아니다. 마을에 잠식했던 악(惡)은 종구가 어떤 선택을 한들 끝내 딸을 잃었다고 자책하게끔, 이미 상황을 선제적으로 설계해 놨다. 말하자면 ‘곡성’은 사람의 믿음·판단으로만 해결되지 않는 삶의 불가항력이나 불행을 악이라는 구체적 얼굴로 환원했을 뿐이다.
◇ ‘호프’, 희망의 전복 ◇ 개인과 마을을 지나온 나홍진은 ‘호프’를 통해 이번엔 외계를 끌어온다. 주인공들의 성격은 한층 단순 무식하다. 노인만 남은 시골 ‘호포’ 마을, 수소 한 마리의 사체가 갈기갈기 찢겨버린 오프닝 앞에서 보안관 범석(황정민)과 성애(정호연)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기관총을 든다. 여기에 우뚝 선 장총을 상비해 온 진격의 동네 노인들, 수컷 냄새가 진한 동네 건달 성기(조인성), 무언가를 수집하는 미치광이 목수 양배(음문석), 사체의 성기 해부에도 거리낌이 없는 보건소장(황석정)에겐 코미디를 위시한 성(性)적 뉘앙스도 있다. 즉 전통 한국 사회가 신뢰했던 ‘남근’의 오마주를 곳곳에 배치한 인상인데, 이는 원초적인 ‘날 것’으로 살아온 이들의 백지 같은 인간성을 암시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백지 인간들에게 어떤 편견이나 기준이 깃드는 시점이다. ‘호프’는 대략 5단계로 내러티브가 분절된다. 스타트 40분가량은 보안관 범석과 성애가 확인되지 않은 무언가를 쫓고 처치하려는 움직임이다. 나홍진의 전작들이 그렇듯이 카메라는 이 사태를 유발한 ‘그 무엇’을 끝까지 숨겨 놓고, 때문에 스타트 구간에서는 아직 외계인 존재를 확인하지 못한 범석의 총알이 정육점 사장의 복부를 뚫었다. 동네 사람들 역시 범석 뒤편에 외계인이 있었기 때문에 범석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며 “우린 너를 공격한 게 아니라 도리어 살려준 것”이라고 우긴다. 이윽고 범석도 아기 외계인을 죽여 냉동 수집한 양배를 “네가 사람 새끼냐”며 응징한다. 초반 마을 사람들끼리 벌이는 이 같은 총성 소동은 백지였던 인간들에게 어떤 윤리 기준이 생겨나는 계기이자, 참전 직전의 예행이다.
단순하고 원초적이었던 호포 마을에 이 같은 도덕적 잣대가 생겨날 때쯤, 기어이 생김새마저 다른 여러 외계인이 동시 등장한다. 그런데 호포 마을 사람들의 이 같은 배타·파괴적 행동 윤리는 과연 옳은가. 외계 존재는 반드시 말살되어야 할까. 숲에 서식 중이었던 외계인들의 입장은 다르다. 선제적으로 자신의 후손을 죽이고 기관총을 난사하는 호포 마을 사람들이야말로 외계인들에겐 극악무도한 괴물이었으며, 이 지점에서 ‘호프’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자리를 슬쩍 바꾸기도 한다. 통상 그러하다. 내가 행하는 공격은 나를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지만 상대방의 반격은 악의이자 도륙으로 여긴다. 요컨대 이 영화의 제목은 왜 ‘호프’인가. 희망이란 애초 호포 사람들의 관점으로 심어 놓은 씨앗이 아니었다. 우주선이 당도했을 때, 비로소 외계인들은 지구에서 살아남거나 탈주할 한 줄기 희망을 본다. 결국 인간의 심연이 내부적으로 일으킨 총성 전쟁은 끝내 외계인에게만 도착한 희망의 우편, 엇박자 같은 결과로 남는다. 손에 잡힐 듯 또렷한 볼거리에 반해 스토리텔링만큼은 관객들에게 다소 황당무계하거나 이질적으로 느껴졌던 이유다.
[티브이데일리 이기은 기자 news@tvdaily.co.kr] [티브이데일리 이기은 기자 news@tvdaily.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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