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이했던 배재고 소란을 마주하며 [토요판] |
| 2026. 07.04(토) 15: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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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 내용 요약 아이들 망가지는 디스토피아 사회 속 정서적 가치 복원 역설하는 영화들 [티브이데일리 이기은 기자] 지난 2026년 6월 4주 차.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적폐 인사 관행의 희생양으로 부각되며 전 국민의 안타까움을 자아낸 상황에 이어 기성세대와 흡사 ‘맞다이’를 뜨는 듯한 10대 꿈나무들의 참담한 언행이 어른들의 반성을 부른 한 주였다. 6월 29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제81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에서는 서울 강동구 소재 배재고등학교 팀 선수들이 전남광주 북구 광주제일고등학교 팀 더그아웃을 향해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 데이” 구호를 외치는 모습이 포착됐다. 그 즉시 극우를 위시한 '배재고 일베충'(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이용자) 논란이 일었다. 반면 일각에서는 명문고 우파 남학생들이 도리어 진보 정권 인사들의 과오에 키치(kitsch)한 역공을 선보인 사례로 해석했다. 그러나 핵심은 학생들의 실제 본심과도 별개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광주 5.18 민주화운동이 소재로 조롱화 된 지점 그 자체다. 이는 명백히 그릇된 일이며 어느 하루 아침에 일어난 이변만은 아니었다. 이에 학생들을 통솔해 온 배재고 관계자들은 “이번 사태는 (아이들의) 단순한 이탈이나 실수가 아닌 윤리 의식·역사 인식에 대한 총체적 붕괴에서 비롯”됐음을 짚어내며 고개를 숙였다. 한국 사회 각 업계 종사자들, 보호책임을 짊어진 학부모와 교육자들의 이처럼 무거운 고심에 힘입어 해당 사태의 심각성을 환기할 만한 두 편의 휴머니즘 영화를 소개한다.
◇ 잃어버린 소중한 가치의 복원…‘내 이름은’(2026) 60대 모친 최정순(염혜란) 손에 큰 18세 제주도 소년 이영옥(신우빈)은 자신의 촌스러운 이름마저 늘 부끄러웠다. 서울에서 온 준재벌 자제 경태(박지빈)의 눈에 들어 학급 반장으로 추대됐지만, 약육강식에 익숙한 경태의 가해 놀음 앞에서 방관자 영옥은 무기력감에 사로잡힌다. 영화 ‘내 이름은’(감독 정지영)은 1949년 제주 4.3 사건을 화두에 내세웠다. 제주 여자 최정순은 수 십 년 전 4월 3일에 일어난 ‘그 사건’ 이후 깊은 트라우마를 겪어왔다. 의사를 찾은 그의 상담 과정을 통해서 참혹한 근현대사의 상흔도 베일을 벗는다. 인상적인 것은 18세 아들 이영옥이 학교 폭력 현장을 겪으면서 각성해 가는 과정이다. 단연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소환하는 이 무자비한 교실 풍경은 배재고 소란이 발생한 2026년에도 변함 없이 피해자를 간과하는 힘의 과시, 인성의 몰락과 맞물린다. 강자가 약자를 쾌락적으로 짓밟는 역사는 유구했다. 수 십 년 간 제주 학살 트라우마를 겪는 모친 최정순, 적자생존 수컷 서열의 현장에서 울부짖는 아들 이영옥의 이야기는 결국 피의 밭에서 생존한 자들이 지켜나가야 할 삶의 이유와 인간적 가치를 상기하게 한다. 역사·지리적 약소국이었던 대한민국 섬 제주도의 단독성만으로도 서늘한 미장센이 완성됐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최정순과 아들 이영옥 사이의 비밀스러운 상처도 정지영 감독의 선 굵은 카메라 워크와 교차 편집을 통해 설득력을 얻는다. 종국에 감독이 큰 힘을 할애한 배우 염혜란의 갈대밭 무용 신(Scene)은 숱한 평단이 걸작으로 꼽은 영화 ‘마더’(감독 봉준호)의 명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요컨대 ‘내 이름은’ 역시 한국적 한풀이의 승화다.
◇ 너와 나, 우리… ‘세계의 주인’(2025) 누군가 행하는 배려의 기원은 결국 상처다. 스스로가 겪었던 아픔을 다른 사람들이 굳이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 그래서 유달리 따뜻하거나 다정하거나 사려 깊은 사람을 볼 때면 반대급부로써 그가 겪어온 지옥의 깊이를 가늠하게 된다. ‘세계의 주인’(감독 윤가은) 주인공 낭랑 18세 여고생 이주인(서수빈)에겐 남모를 아픔이 있다. 그런 소녀는 전교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서명운동에서 홀로 “NO”를 외치는 ‘곤조’도 상당하다. 잘 나가는 ‘인싸(Insider)’이자 공부도 잘하는 모범생이었지만 순간의 주관으로 인해 이주인의 평판도 금세 추락한다. 통상적인 조직에서 유달리 튀는 여성은 손가락질을 받곤 한다. 더욱이 학교, 회사, 특정 모임 등 집단사회 특유의 폐쇄성은 인물 본연의 특질이나 성품을 굴곡 어리게 반영할 때도 있다. 가령 학생이라는 지위는 학생들에게 선택이 아니다. 다만,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갈 요량이 충만한 이주인은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지 않은 세계에 내몰렸을 때 당연히 타인과 주고받아야 하는 상처, 그들이 이유 없이 드러내는 미움이나 비난, 영원히 해결될 것 같지 않은 막막한 문제들까지 헤엄쳐 나가는 방법을 배운다. 그렇듯 삶은 페르소나의 끊임없는 수행이다. 이 철부지 아이들이 어른이 된다는 것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던 사람들이 이율배반적으로 기쁨을 줄 수 있는 존재임도 알아가는 과정이다. 인생. 나와 다른 타인 탓에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갈등하고 때론 융합하는 길목에서, 이타심이나 인류애가 우리들의 가슴 속 조용히 영역을 넓혀가는 일이겠지.
[티브이데일리 이기은 기자 news@tvdaily.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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