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대 웃음 통합한 故 허참, 온가족 모인 설 하늘로 [이슈&톡] |
| 2022. 02.01(화) 20:09 |
| ||||
![]() |
[티브이데일리 김지현 기자] "몇 대 몇? MC 허참이 저 세 마디를 외치면 아쉬움과 동시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모든 게임이 마무리 돼 곧 방송이 끝난다는 신호였고, 대결을 벌이던 양팀의 점수 결과가 전광판에 뜨는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주고 받으며 퀴즈의 정답을 맞추기 위해 진땀을 흘리는 연예인들의 모습은 얼마나 웃겼던가. 폭탄이 제 손에 터질세라 벌벌 떨던 출연자들의 모습을 보며 한 집에 사는 할머니, 아빠와 딸은 함께 ‘깔깔깔’ 웃었다. TV쇼 KBS ‘가족오락관’은 유일하게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예능이었다.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주말 늦은 오후때 쯤이면 가족들은 저녁 식사를 기다리며 한 자리에 모여 웃음을 나눴다. 세대의 취향과 호불호가 극명히 나뉘는 요즘과 사뭇 다른 풍경이 당시 안방에 펼쳐졌다. 3세대의 웃음 코드가 한 공간에서 공유될 수 있었던 그 특별한 시간을 이끈건 MC 허참이다. 무려 25년 간 ‘가족오락관’을 이끌며 우리 가족의 웃음을 책임졌던 원조 ‘국민MC’다. 임인년 설날인 2월 1일, 허참이 영면에 들었다. 향년 73세. 전국의 친지들이 모이는 설날 간암 투병 끝에 눈을 감았다. 고인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지막 숨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빈소는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3일 오전 5시 20분, 장지는 경춘공원묘원이다. 고인이 별세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를 기억하는 수많은 이들이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세대가 함께 기억하는 몇 안되는 명MC였기 때문일까. 아쉬움이 더하고 향수가 짙어진다. 자신의 죽음을 계기로 추억을 공유하고, 담소를 나누라는 듯 그는 전국의 가족과 친지들이 모이는 설날 하늘로 떠났다. 죽음 마저 국민MC 모습답다. 고(故) 허참은 1974년 MBC 라디오 프로그램 '청춘은 즐거워'로 방송가에 발을 들였다. 이후 1977년 TBC '쇼쇼쇼'에서 활약하며 TV쇼 MC로 이름을 알렸고, KBS2 '도전! 주부가요스타', SBS '빙글빙글 퀴즈' 등의 진행을 맡으며 전국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대표작은 단연 '가족오락관'이다. 1984년부터 2009년까지 25년간 MC를 맡았다. 당시 등장한 퀴즈와 소재들, 허참의 멘트들은 현재 버라이어티에도 참조될 정도로 그 인기가 뜨거웠다. 허참은 수 십년 동안 동안 교통사고를 당해 어쩔 수 없이 한 차례 녹화에 불참한 걸 제외하곤 단 한 번도 ‘가족오락관’ 녹화에 빠진 적이 없다고 한다. 허참이 없는 ‘가족오락관’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니 이 프로는 MC 허참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전 고인은 유쾌한 말투와 유머, 출연자를 아우르는 카리스마와 포용력을 동시에 보여 준 MC였다. 버라이어티가 전무한 당시 방송가에서 가장 예능에 적합한 모습을 보여준 MC형 진행지였고 이러한 모습은 동시간대에 활동한 진행자들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났다. 단 한번의 교체 없이 그가 ‘가족오락관’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다. 긴 시간 만큼 세대를 뛰어넘는 사랑을 받았다. '가족오락관' 종영 후 허참은 TV조선 '퍼펙트라이프', '백세누리쇼', KBS2 '트롯 매직 유랑단', '불후의 명곡' 등에 출연하며 근황을 전해왔다. 하지만 간암 투병 사실은 알리지 않았다. 함께 자리하는 후배들과 제작진, 스태프들을 위한 배려였다고 한다. ‘가족오락관’에서 6년 여간 허참과 활동하며 그의 전성기를 함께 한 방송인 손미나는 고인을 추억하며 슬퍼했다. 손미나에 따르면 고인은 말단 스태프에게도 깍듯한 모습을 보였던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였다. 손미나는 고인의 별세 소식이 전해진 1일 자신의 SNS를 통해 "선생님은 6년 가까이 매주 방송을 진행하며 호흡을 맞춘 짝꿍이고, 방송 진행자의 모범적인 모습을 몸소 보여주신 롤모델이자 삼촌, 친구 같은 분이었다"라며 애도했다. 이어 "내가 아는 최고의 애처가. 의리로 정으로 똘똘 뭉친 분. 철저하고 겸손하고 성실한 프로, 후배나 말단 스태프들까지도 깍듯함과 존중으로 대하시던 인품의 소유자였다"며 "뭐라 표현할 수 없는 허망함에 눈물만 난다. 편히 쉬세요"라고 전하며 허참을 그리워했다. 짧은 글이지만 생전 고 허참의 인품을 충분히 엿볼 수 있는 글이다. 손미나에 이어 오정연, 서유리 등 수많은 후배들이 명복을 빌었다. 끝까지 투병 사실을 숨기며 시청자들의 기억을 온전히 지키려 했던 고 허참. 더 이상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음이 아쉽지만 힘 차게 ‘몇 대 몇’을 외치던 고인의 모습을 많은 이들이 오래 기억할 것이다. 내 할머니의 웃음을, 내 부모의 웃음을, 가족의 오락을 책임졌던 국민MC를 어찌 쉽게 잊을 수 있겠는가.
[티브이데일리 김지현 기자 news@tvdaily.co.kr /사진=사진공동취재단, KBS] |
| 기사제보 news@tvdaily.co.kr 김지현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