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드라마 ‘시크릿 마더’에서 등장하는 ‘입시 보모’, 단어조차 생소하다. 고작 초등학생밖에 안 된 아이들에게 입시를 위한 보모가 붙다니, 문득 언젠가 보았던 해외 영화 속 가정교사들이 떠올랐다만 이들과는 엄연한 다르다. 가정교사들이 아이들과 실생활을 함께 하며 여러 면에서 교양 있는 사람으로 자라도록 전인격적 교육을 한다면, 입시 보모들은 말 그대로 아이들이 좋은 학교에 무리 없이, 가능하면 우수한 성적으로 진학하게 하는 게 목표다.

김윤진(송윤아)이 아들을 위해 입시 보모를 들였다는 이야기에, 또래 아이들을 키운다는 이유로 사모임을 이룬 엄마들의 귀가 쫑긋 섰다. 윤진의 재력이라면 아무나 고용했을 리 없고 분명 어디 내놔도 부족하지 않을, 실력 좋은 선생일 테니 자신의 아이를 위해 견제를 하고자 혹은 정보를 얻고자 관심을 쏟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들이 가진 공동의 목표는 자식들을 탁월한 인재로 키우는 것. 목표를 위해 어떤 엄마는 위장이혼도, 또 어떤 엄마는 청산한 옛 과거인 술집으로 되돌아가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무리 거액이라도, 어렸을 때 어떤 길을 걷느냐가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 그 정도의 투자는 어떻게 해서든 해줘야 자식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엄마라 할 수 있으니까. 실은 그저 본인의 직성이 풀리는, 결핍된 욕망을 해소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데, 정말 잘못된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다 하겠다.

”단 한 번의 시험으로 현재의, 그리고 미래의 가장 기본적인 지적 능력을 측정할 수 있다고 여긴 겁니다. 말하자면, 그 시험에 자신을 규정할 수 있는 권력을 부여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고정 마인드셋을 가진 사람에게, 모든 성공이 그토록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인 겁니다.”

스탠퍼드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캐럴 드웩의 저서, ‘마인드셋(스탠퍼드 인간 성장 프로젝트)’(이하 ‘마인드셋’)의 몇 구절이다. 진심으로, ‘시크릿 마더’의 엄마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아마 저자의 경력이나 책 제목에 붙은 ‘스탠퍼드’란 단어에서 이미 구미가 당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인드셋(mindset)’, 쉽게 말해 마음가짐, 태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드웩 교수는 사람들에게서 두 가지 마인드셋이 나타난다고 보았다. 자신의 재능과 능력이 ‘불변하고 고정되어 있는 자질’이라 믿는 고정 마인드셋(Fixed mindset)과 자신의 재능과 능력이 ‘발전될 수 있다’고 믿는 성장 마인드셋(Growth mindset), 이 둘을 가르는 가장 큰 차이점은 실패를 대하는 태도다. 전자는 한 번의 실패에 크게 좌절하며 심한 경우엔 스스로를 패배자로 여기는 반면 후자는 실패를 또 다른 배움의 과정으로 즐기는 타입이기 때문이다.

‘시크릿 마더’의 엄마들에게 무리를 해서라도 어린 자녀들을 명문 학교의 길목으로 내모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면, ‘자녀들만큼은’ 실패를 겪지 않는, 실패란 존재하지 않는 황금빛 탄탄대로를 걸었으면 하는, 엄마로서의 애틋한 마음에서 비롯된 정성이라 할 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정성 및 열심이 도리어 자녀들을 고정 마인드셋에 가두고, 인생에 한두 번 아니 여러 번 다가오는 실패 앞에서 쉽사리 무너지게 하거나, 실패가 싫어 제한된 틀 안에 어떻게든 맞추어 사는, 엄마들의 기대와는 정반대의 시시한 삶을 살게끔 만든다.

얼마나 비극적인 결말인가. 그런데 이 점에 관한 ‘시크릿 마더’의 주의(注意)가 별로 없다. 물론 이야기의 맥이 되는 사건을 따라가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리라. 하지만 엄마들의 비틀린 열심은 본질을 드러내기보다 자녀들을 사랑한다는 순수한 동기로 포장되고 자녀들은 시키는 대로 잘 따를 뿐 아니라 때때로 한층 높은 강도의 교육을 요구하는 모습까지 보여주니, 드라마를 그저 재미있게만 감상하기에는 자꾸 어떤 염려에 마음이 자못 불편한 것이다.

안 그래도 교육에 열정을 다해야 하는 오늘의 환경인데, ‘시크릿 마더’에서 나오는 엄마들의 교육관을 마치 보편적인 사고방식으로, 시도해볼 만한 것으로 여길까, 혹은 갖지 않아도 되는 왜곡된 결핍감을 가질까 염려가 된다 할까. 저렇게 해주면 아이들은 오히려 시들시들해질 텐데 그른 방법을 옳은 거라 착각할까 두렵기도 하다. 재미있고 완성도도 높은 드라마이지만 볼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이 씁쓸했던 이유다.

특수한 환경을 지닌 가정이란 설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만, 알다시피 드라마가 대중에게 끼치는 영향력은 상상 이상으로 거대하다. 아직 이야기가 전개 중이니 온전한 결말에 이르기 전에 분명 어떤 조치가 있을 거라 믿고 있다. ‘시크릿 마더’, 짙은 재미와 높은 완성도, 그리고 좋은 시선까지 담긴 잘 만들어진 드라마로 마무리되길, 애청자의 진심을 담아 바란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news@tvdaily.co.kr / 사진제공=S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