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해냈습니다”, 달라진 수상소감이 주는 깨달음 [윤지혜의 대중탐구영역]
2025. 01.30(목)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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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연예인들이 한해의 수고를 인정받는 자리이기도 한 연말 시상식, 수상한 이들의 소감에 색다른 분위기가 입혀지고 있다. 사실 색다르기보다는, 상을 받아 기쁜 마음을 가감 없이 표현한다고 할까. 환호성을 지르며 잔뜩 상기된 얼굴과 목소리로 누가 봐도 호명된 운 좋은 이임을 드러내는, 아무리 좋아도 절제하는 게 미덕이라 여겼던 이전과는 상반된 양상이다.

“제가 우수하다니요, 세상에, 정말 감사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2024 SBS 연기대상에서 ‘열혈사제2’의 여형사 구자영 역으로 시즌제 드라마 부문, 여자우수상을 받은 배우 김형서이자 가수 비비다. 감격스러운 얼굴로 트로피를 손에 쥔 채, 환호성과 함께 시작한 수상소감은, 말하는 내내 표정과 몸짓에 한가득 기쁨이 배어 있어 보는 이들이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고 할까.

“100년 동안 더 열심히 연기하겠습니다, 너무 힘이 납니다, 감사합니다“
배우 구교환 또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제45회 청룡영화상에서 청정원 인기스타상에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벌떡 일어나, 감격에 겨운 얼굴로 관객석을 응시하다 무대 위로 올라갔는데 이보다 더 흡족할 수 없다는 모양새였다. 상을 대하는 자세가 흡사 대상의 영예를 안은 것만 같아서, 아니, 진심으로 그렇게 여기는 게 보여서, 이를 지켜보는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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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희(喜)가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기쁨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2024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코미디언 장도연의 수상소감 중 일부다. 쇼버라이어티 부문 여자 최우수상을 받은 그녀는, 유독 긴 팔을 하늘로 뻗어 올려 기쁨을 표현하며, 최우수상 수상자가 다름 아닌 자신이라는 사실을 한껏 만끽하는 포즈를 지어 보였다. 지극히 장도연다운, 진솔한 표현으로 수상의 의미가 한층 짙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끝으로, 제가 해냈습니다”
소감마다 상을 받은 데 대한 감개무량함 속에서, 연예계와 방송계의 상황을 걱정하고, 함께 활동하고 있는 동료들을 격려하는 게 트레이드마크였던 유재석 또한, 이번만큼은 조금 다른 마무리를 보여주었다. 2024SBS 방송연예대상에서 대상을 거머쥔 후 이어진 소감의 말미에서,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제가 해냈습니다’라는 말로 끝을 낸 것.

물론, 무려 20번째 받는 대상이라서 더욱 각별했을 수 있다. 하지만 저 마지막에 덧붙인 한마디에, ‘국민MC’라거나 ‘유느님’이라거나, 그에게 부여된 무거운 책임감을 모두 벗어낸, 유재석의 오롯한 진심이 담겨 있는 듯해서, 상당히 감명 깊게 다가왔다고 하면 과언일까. 사실상 우리 사회는, 미덕이라는 무언의 압박 아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에 인색하며 자신을 스스로 칭찬하는 일엔 더없이 어색해한다.

그래서 상의 크기와 상관없이, 자신이 수고로이 얻은 성취를 마음껏 기뻐하고 그것을 알아봐 준 이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는 이들이 모습이, 어떤 해방감과 비슷한 통쾌함을 안기며 우리의 마음에 짙게 각인된 걸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풍토가 아닐지 생각해 보며, 크든 작든 혹은 있든 없든 수고를 해 온 것들에, “수고했다, 혜교야”와 같은 칭찬을 스스로에게 좀 더 많이 할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바라 본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니스트 etvidet@naver.com, 사진 = ‘2024 SBS 연기대상’, ‘제45회 청룡영화상’, ‘2024 MBC 방송연예대상’, ‘2024 SBS 방송연예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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