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선과 악이 뒤섞인, 정의도 도덕도 그 개념이 불분명해진 허구의 세계를 담은 ‘살인자ㅇ난감’에서 정치색을 끌어내는 것만큼 난감한 경우가 또 있을까. 드라마나 영화는 현실에 있을 법한 이야기를 그리지만, 어디까지나 있을 법한, 현실과 온전히 닮았다 할 수 없는 허구에 불과하다. 즉,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이야기로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살인자ㅇ난감’에서 특정 인물을 떠올리게 한다는 캐릭터가 포착되어 작은 소동이 일었다. 이 특정 인물이 정치권에 속하는 바람에, 하필이면 해당 캐릭터가 비리와 악행을 저지르다 살인의 표적이 되는 설정인 까닭에 이를 언짢아하는 이들은 감독의 정치 성향을 운운했다. 캐릭터의 겉모습부터 몇몇 디테일한 설정이 고의가 아니고서야 이토록 세밀하게 저격할 수 없다는 게 그들의 입장이었다.

하지만 감독의 의도야 어찌 되었든 중요한 점은, 어떤 이는 우스갯소리로 누구누구 아냐, 정도 내뱉을 수 있었겠으나 시청한 이들 중 대부분이 깊이 있게 연결 짓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당연한 이야기다. ‘살인자ㅇ난감’의 중점적인 맥락에 달린 수많은 곁가지 중 하나에 해당하는 에피소드일 뿐이고 결국 작품 자체가 다루고자 하는 건 죄와 벌 사이에 놓인 인간 본성에 관한 것이어서 시선이 길게 머물지 않았다 할까.

오히려 정치색 논란이 일어났단 소식에 그제야 자각하게 된 이들도 꽤 있을 터. 즉, 작품 전체적인 흐름을 놓고 보았을 때 모욕으로 느낄 만큼의 무게감이나 존재감이 실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언짢음을 내려놓고 편히, 그저 이야기로서 즐겨도 무방하리라.

흥미롭게도 혹자는 이 현상을 보고 영화 ‘서울의 봄’을 언급한다. ‘서울의 봄’은 되고 ‘살인자ㅇ난감’은 안 되냐며, 언짢아하는 시각 자체가 편향되었다며. 이 또한 작품의 맥락에서 빗나간 반응이다. ‘서울의 봄’은 약간의 상상력과 허구를 더하긴 했으나 한국 정치 역사에서 실재했던 이야기의 핵심적인 부분은 거의 그대로 가져온 것으로, 그렇다면 ‘서울의 봄’은 얼마나 많은 이들을 모욕한 셈인가. 그러나 누구도 모욕했다고 생각지 않는다.

왜냐면, ‘서울의 봄’은 바로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객관적인 판단이 서 있는 역사이기도 하고. ‘살인자ㅇ난감’의 경우와는 엄연히 다른 지점에 존재하는 예로, 오히려 ‘서울의 봄’은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각각 모티브로 삼고 있는 실존 인물, 혹은 실제 사건과 대치하여 보는 것이 작품을 작품으로서 제대로 존중하는 동시에 이야기로서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기도 하다.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를 만들어내는 유의 오해와 착각은 이야기를 이야기로서 즐기지 못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현상이 과열되면 작품을 만드는 이들의 상상력은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 콘텐츠의 영향력이 어느 때보다 강력한 오늘, 우리가 갖춰야 할 마음가짐은 다름 아닌,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이야기로만 받아들이는 냉철한 혹은 여유로운 시각의 견지다.

물론 때로는, 아니 땐 굴뚝이 아니었을 수 있다. 그것이 도의적인 선을 넘는 왜곡이나 오류라면 가차 없는 비판을 가하는 게 옳고.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 작품의 일부분에 불과한 대목이 특정 사고방식이나 견해에 어긋난다고 해서 작품의 전체적인 맥락이나 방향성, 주제 의식 등을 고려해 보지 않고 무작정 보이콧을 외쳐 버리면, 벼룩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꼴이 날 수도 있으니까. K-콘텐츠가 세계의 이목을 끌며 한창때를 누리고 있다. 이를 향유하는 우리의 시선이 좀 더 지혜로워진다면 한창때는 좀 더 건강하고 오래 지속되리라.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니스트 news@tvdaily.co.kr, 사진 = 넷플릭스 ‘살인자ㅇ난감’, 영화 ‘서울의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