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연휘선 기자] "몸으로 보내는 제의(祭儀)이고 탈상(脫喪)이다". 연극 '신의 아그네스'가 21세기의 가치관으로 고(故) 배우 윤소정을 추모한다.

연극 '신의 아그네스'(연출 박혜선) 측은 4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혜화동 동양예술극장에서 프레스콜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는 연출을 맡은 박혜선 연출과 배우 전국향, 송지언, 오지혜가 참석해 1막을 시연하고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신의 아그네스'는 갓난아기를 탯줄로 목 졸라 죽인 수녀의 이야기를 그린 연극이다. 1983년 국내 초연돼 윤석화, 윤소정, 신애라, 김혜수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거쳐간 수작이다. 특히 이번 무대는 지난해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난 '연극계 대모' 윤소정을 추모하는 헌정 공연으로 꾸며진다. 이에 고인의 딸인 오지혜가 모친이 생전 맡았던 닥터 리빙스턴 역을 맡아 무대에 오른다.

이 밖에도 전국향이 원장 수녀 역할을, 송지언이 주인공 아그네스 역을 맡아 호흡한다. 이와 관련 전국향은 "윤소정 선생님을 추모하는 공연이라 선생님 생각이 많이 났다"며 "평소 선생님도 좋아했고 여배우라면 선생님을 좋아하지 않는 배우가 없었을 것 같았다. 제안이 왔을 때 흔쾌히, 너무 기쁜 마음으로 감사하게 받았다"고 밝혔다. 송지언은 "저는 오디션을 통해 아그네스 역을 맡았는데 여배우라면 누구나 한번쯤 꼭 하고 싶은 작품이고, 또 윤소정 선생님 타이틀을 걸고 하는 거라 합격 소식을 듣고 영광스럽고 기뻤다. 굉장히 큰 책임감을 느끼며 작품에 임하게 됐다"고 말했다.

딸인 오지혜의 경우 더욱 큰 책임감과 각오로 무대에 섰다. 그는 "사실 처음에 제의를 받았을 땐 많이 조심스러웠다. 공연으로 공연자를 추모한다는 게 사실 무리가 있다. 영화라면 필름을 틀면 되지만 추모 공연은 따로 엄마의 연기를 똑같이 흉내 내기도 어려웠다. 그런데 제작자의 의지가 강력해 운명이라는 마음으로 출연했다"고 털어놨다. 오지혜는 "연기를 하다 보니 제 모습이나 몸짓에서 엄마의 연기가 나오는 것 같기도 했다. 따라 하려는 생각은 결코 없었는데 그렇게 되더라"라며 "그런 걸 보면서 '몸으로 지내는 제사, 제의였구나' 싶었다. 또 개인적으로는 '탈상'의 의미라 생각하기도 했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엄마가 타고난 배우셨고 연기를 잘하셔서 그렇지 사실 이 역할엔 제가 더 어울린다. 제가 더 박사 같다. 엄마도 '넌 배우 안 같고 교수 같다'는 말을 언제나 하셨다"고 너스레를 떨 정도로 캐릭터에 자부심을 표현하기도 했다. 오지혜는 "해석은 배우 혼자 하는 게 아니다. 연출도 같이 한다. 연출과 제가 함께 만드는 역할이고 무대인 만큼 엄마와 일부러 연기를 다르게 하려고 신경 쓰기 보다는 과거 '신의 아그네스'와 지금의 '신의 아그네스'가 다르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서 준비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오지혜가 자부한 대로 이번 '신의 아그네스'는 윤소정이 연기한 초연 때와 달리 작품 해석에 있어서 변화를 꾀했다. 번역과 고증 등 고전 격인 '신의 아그네스'를 구현하는 데 있어서는 영어 원작을 수시로 살필 정도로 충실하게 임했으나 신앙에 대한 작품의 해석에서 변주를 준 것이다.

이와 관련 박혜선 연출은 "이번 공연은 추모 헌정 공연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프로덕션이기도 하다"며 "지금까지 '신의 아그네스'는 작품을 너무 신적인, 종교적인 의미로만 해석하지 않았나 싶었다. 이번에는 아그네스가 받은 성적 학대나 그로 인한 트라우마 등에서 새로운 의미를 전달해야 한다고 봤다"고 했다. 그는 "아그네스에게 일어난 '기적'이라는 게 사실상 기적이 아니라 기적이었으면 한다는 우리의 바람을 담은 거라고 봤다"며 "아그네스의 학대가 영적으로 치유되길 바라는 원장 수녀나, 과학적으로 치료되길 바라는 리빙스턴 박사나 모두 실패하면서 아이가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 내용이 원본에 분명히 있었음을 다시 확인했고 그걸 확실하게 보여주자는 마음으로 방향성을 잡았다"고 설명했다.

그렇기에 박혜선 연출은 "다른 '신의 아그네스'에 비해서 신격화된 부분이 덜 보일 것"이라고 자부했다. 또한 "아그네스를 보면 느껴지는 종교적인 부분을 조금 더 인간의 심리적인 요소, 상처받은 사람의 요소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2018년 '신의 아그네스'만의 차별화된 지점"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그렇다고 저희가 번역을 바꾸거나 대사를 추가한 건 전혀 없다. 단지 해석을 하면서 이전 공연에서는 엄마가 성모 마리아라고 느끼는 순간. 엄마를 대하고 대변하고 말하는 뉘앙스가 강했는데 저희는 극 중 엄마를 그냥 '엄마'로 봤다. 마치 지난 공연에서는 엄마의 학대를 성모 마리아가 아그네스를 시험에 들게 하는 것으로 보는 분위기였다. 그렇지만 저희는 엄마를 엄마로 보려고 했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오지혜는 '신의 아그네스'에 대해 "미성숙한 어른들의 실패담"이라고 말했다. 그는 "외국 작품이나 고전은 해석하라고 있는 거다. 그런데 이건 비교적 가까운 현대인 70년대 버전이라 해석하는 데 더 어려움이 컸다. 또 오직 외국어로만 구성된 대본이라 다시 번역하고 2018년 한국의 분위기에 맞게 관객과 소통하고자 엄청 노력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연출과 '예술에 정답은 없다. 다시 정하자'고 하면서 종교와 과학이 다 실패했다는 것, 사랑과 신앙으로 아그네스를 구하겠다고 나선 어른들이 다 실패하는 면에서 시사하는 점이 많다고 봤다"고 했다. 오지혜는 "제 책 제목이기도 한데 '많이 사랑하기 보다는 잘 사랑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신의 아그네스'는 불쌍한 아이가 불쌍하게 자라서 불쌍하게 생을 놓친 과정을 보여주는 실패담이다. 지금도 우리 사회에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참 많은데 그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작품을 준비했다. 엄마를 추모하는 것은 우리끼리의 의미라면 이 작품은 프로의 공연인 만큼 추모의 의미와는 별개로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달하는 메시지도 담았다"고 말했다.

'신의 아그네스'는 내일(5일) 개막해 이달 31일까지 동양예술극장 2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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