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대중문화산업에서 스타와 팬은 아주 간단하게, 상품과 소비자다. 매정한가. 대중문화에 ‘산업’을 붙일 수 있는 자본주의사회에선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아무리 마음까지도 소비재로 사용되는 곳이라지만, 우리는 어떤 것으로도 계산할 수 없는 살아있는 가치를 지닌 ‘사람’인 까닭에 스타 또한 상품으로서가 아닌 존재 자체로서 가치를 둔다. 여기서 재화는 하나의 매개체일 뿐이다.

지난 20일, 1996년에 데뷔한 그룹 H.O.T를 응원해오던 디시인사이드 H.O.T 갤러리 일동이 멤버 중 하나인 문희준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겠단 입장을 밝혀 화제다.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은, 단순히 좋아하는 스타오빠가 결혼도 하고 속도위반까지 하는 바람에 벌어진, 흔하디 흔한 질투의 서막이라 여기겠지만, 상황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H.O.T 갤러리 일동이 지지철회를 선언하게 된 이유는 다섯 가지다. 팬을 대하는 태도, 명백한 거짓말로 팬과 대중을 기만, 무성의한 콘서트 퀄리티, 멤버 비하와 재결합 관련 경솔한 언행, 불법적 굿즈 판매와 탈세 의혹. 일각에서 나오는 의견처럼 문희준의 결혼과 출산이 없었더라면 좀 더 묻혀 갈 수 있었을지 모르나 언젠가 터질 문제였음은 자명해 보인다.

어떤 스타를 20년 넘게 응원해왔다는 사실은 그저 스타와 팬의 관계, 즉, 만들어진 이미지를 제공하고 소비하는 관계를 넘어섰단 의미다. 이미지와 실체 사이의 간격은 희미해져 환상이라 부를 것도 없고 ‘내 오빠’ 시기도 한 참 지나 버려 그 간 쌓인 마음과 다져진 정, 신뢰만이 남아 있는 상태다. 즉, 볼 꼴 못 볼 꼴 다 보아서 서로의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며 상대방의 존재 그 자체로 이유가 되는, 인격적인 관계로 진입한 것이다.

보이지 않는 가치로 똘똘 뭉쳐 있는 이 관계는 웬만해선 깨지지 않는다. 이제 스타와 팬을 상품과 소비자로 보는 자본, 돈은 부수적인 가치가 되는 까닭이다. 보이지 않는 가치가 앞서면 모든 눈에 보이는 가치들은 무력해진다. 생각보다 많은 돈을 지불했다 하더라도, 받고 보니 기대만큼 구성이 좋지 않았다 하더라도, 좀 더 저렴하고 성능까지 향상된 새로운 상품이 나왔다 하더라도, 심지어 스스로 생각하기에 더 좋아 보여도, 이미 마음을 허락한 그 상품, 해당 스타와 쉽게 바꾸진 못한다.

그러니까 이 견고한 진이 깨졌단 것은 단순히 질투의 문제로 치부될만한, 웬만한 일이 아니다. 못난 행동이더라도 나 혹은 우리에게만큼은 진정성이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아 왔던 귀한 마음 하나가 더 이상의 균열을 견디지 못하고 산산조각 나버렸으니. 보이는 가치가 무너질 때보다 보이지 않는 가치가 무너질 때 그 여파는 상당하다. 해결점이 없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신뢰를 어떻게 회복하며 무엇으로 채울 수 있겠는가.

H.O.T 갤러리 일동이 선언문에 쓴 ‘보이콧’(boycott, 사회•정치적 이유에서 비롯된 항의의 표현으로, 특정 개인, 기업, 조직 및 국가 등과의 거래를 중단하는 자발적인 행동을 의미)이란 단어도 눈여겨볼 만 하다. 거래를 중단한다, 스타와 팬, 상품과 소비자라는 관계를 끊겠다는 소리로, 스타가 팬을 이미 소비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 어쩌면 더 못한 존재로 여기고 있으니 팬 또한 스타를 상품으로서만 보고 판단(더 이상 소비할 가치가 없는 상품으로)을 내리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 하겠다.

어느 쪽의 잘잘못을 따지고자 함이 아니다. 물론 ‘불법적 굿즈 문제와 탈세 행위’에 있어선 뚜렷한 내막이 밝혀져야 하겠지만 이건 다른 이들이 할 일이고. 살펴보면 ‘불법적 굿즈 문제와 탈세 행위’를 제외하고선 모두 마음, 보이지 않는 가치에 관한 문제제기다. 한 마디로 팬은 상처를 받은 것이다. 인격적인 관계라 믿었던 스타에게서 비인격적 대우를 받아 왔다는 걸 깨달으면서 극심한 배신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어떤 팬이 오랜 시간 지지하던 스타를 향한 마음을 끊는 일은, 이토록 깊고 복잡한 사정이 있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news@tvdaily.co.kr / 사진=안성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