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 부산 영화숙·재생원에 대해 조명했다.
22일 밤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교도소에서 온 한 통의 편지와 그 안에 담긴 강제 수용시설의 참상이 공개됐다.
2025년 3월, '꼬꼬무' 팀으로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보낸 사람은 교도소에 36년째 수감 중인 재소자였다. 신경호 씨(가명)는 "저는 살인자입니다. 늦었지만 그곳’의 진실을 밝히고자 서신을 드립니다. 저는 1963년부터 1974년까지 '그곳'에서 지내며, 범행에 필요한 교육을 받았고 부산 전역을 돌아다니며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모든 것은 여기서 시작됐습니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신경호 씨는 부산 영화숙·재생원 출신이었다. 부산 영화숙·재생원은 부산 일대 아이들을 강제로 납치해 원생으로 만든 뒤, 폭력을 가하고 착취를 일삼았다. 명목은 부랑아 보호였지만, 원생들은 하루하루 고통을 받았다.
손석주 씨는 "소대장이 저를 노렸나 보더라. 그 안에서 예쁘장하게 생긴 애들은 그 소대장한테 다 당했다"면서 "방에 우리는 칼잠 자지만 소대장 자리는 널찍했다. 한쪽에 자기 혼자 그러더니 '히틀러(손석주 당시 별명) 이리 와'라고 하더라. 거기서는 거역하면 두드려 맞을 수박에 없으니까 마지못해 갔다. 내가 그렇게 당할 때 그 안에 같이 생활했던 그 사람들이 몰랐겠느냐. 어느 누구도 말 한마디 못했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악순환은 원장 이순영의 치밀한 계산 아래 짜여진 각본이었다. 돈 때문에 아이들에게 잔인무도한 일을 시킨 것이다. 돈을 아끼기 위해 유급 직원을 쓰지 않았고, 원생들끼리 서로 감시하고 통제하게 만든 것이다.
손석주 씨는 11살 때 부산 영화숙·재생원에서 겪은 충격적인 일을 또 털어놨다. 손석주 씨는 "기철이와 저는 머리를 맞대고 서로 '잘 자'라는 이야기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다음 날 새벽 6시 기상 시간에 기상 소리와 함께 다들 일어나는데 얘만 안 일어났다. 몸을 흔드는데 꼼짝을 안 하는 거다"라고 했다.
부산 영화숙·재생원에서는 가혹 행위로 원생이 죽으면 또 다른 원생들을 시켜 암매장을 시켰다. 신경호 씨는 편지를 통해 18명의 사람을 암매장했다고 고백했다. 이순영 원장은 이런 끔찍한 일마저 어린 원생들을 이용했다.
이 가운데 소 알로이시오 신부는 부산 영화숙·재생원 맞은편에서 부랑아 보호소를 운영했다. 그러던 중 부산 영화숙·재생원의 실태를 알게 되고, 원생들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이로 인해 이순영 원장은 구속됐지만,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풀려났다. 이후에도 소 신부는 영화숙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다. 1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의 서명을 받아 여론을 움직였다. 이에 부산시는 영화숙과의 위탁계약을 취소했다.
하지만 신경호 씨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신경호 씨는 "원장의 지시로 범죄 교육을 받았다. 사람을 묶는 법, 노상 강도에 대해서 배웠다"고 편지에 적었다. 그렇게 신경호 씨는 범죄자의 길로 들어섰다. 신경호 씨가 훔친 물건들은 영화숙에 있는 원장실 캐비넷으로 향했다. 이때부터 영화숙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무늬만 아동복지시설에서 거대한 범죄사관학교로 변한 것이다.
신경호 씨는 영화숙의 간부로부터 지시를 받고 경찰서로 향했다. 그렇게 신경호 씨는 검사를 거쳐 재판까지 받았다. 이순영 원장이 누군가를 대신해 신경호 씨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 것이다. 소년원을 나온 뒤 신경호 씨는 다시 영화숙으로 향했다. 이순영 원장은 신경호 씨를 반기며 "오늘부터 특공대 해라"고 했다.
특공대가 된 신경호 씨의 무대는 부산 최대 번화가 서면이었다. 당시 외화를 틀어주던 극장의 지하에는 거대한 작업장이 있었다. 신경호 씨가 맡은 임무는 마약을 배달하는 일이었다. 이순영 원장이 급기야 마약 시장에도 손을 댄 것이다. 당시 신경호 씨의 나이는 겨우 열 네살이었다.
부산 영화숙·재생원이 폐쇄된 뒤 1981년 이순영 원장은 지병으로 사망하면서 끝내 책임을 지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났다. 부산 영화숙·재생원이 폐쇄된 뒤 원생들 대부분은 형제복지원으로 끌려갔다. 형제복지원 운영 방식은 부산 영화숙·재생원과 상당 부분 겹쳤다. 최악의 강제수용소라고 불리는 형제복지원의 시초가 부산 영화숙·재생원이었던 것이다.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news@tvdaily.co.kr/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