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판 키웠다…'욕망 고모' 엄지인 전성시대 [인터뷰]
2026. 09.24(목) 08:30
엄지인 아나운서
엄지인 아나운서
[티브이데일리 안윤지 기자] 단단한 아나운서의 틀을 깨고 나온 발걸음이 매섭다. 20년 가까이 쌓아온 무게감을 내려놓고, 거침없는 얼굴로 유쾌한 반란을 일으켰다. 부캐 '욕망 고모 엄영자'로 판을 제대로 벌린 엄지인 KBS 아나운서의 파격 행보는 일탈을 넘어 자신만의 새로운 전성시대를 써 내려가고 있다.

구독자 56만 명의 유튜브 채널 '여의도 육퇴클럽'이 신규 코너 '영자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1966년생 말띠 부캐 '욕망 고모 엄영자'가 월드컵부터 트로트, 결혼정보회사까지 다채로운 영역을 가리지 않고 도전하는 모습을 담은 콘텐츠다. 최근 박철규 KBS 아나운서의 트로트 도전을 다룬 영상들은 각각 조회수 39만 회, 41만 회를 기록하며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에 따라 엄지인의 부캐 엄영자 역시 큰 주목을 받았다.

엄지인은 먼저 화제성에 대해 "생각보다 반응이 너무 좋다. SNS 계정에서도 100만 뷰를 넘겼고, 유튜브 영상까지 만들게 됐다. 화제가 돼 기쁜 마음"이라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주변 반응이 어떻냐고 묻자, 그는 "과거 '소비자고발' 프로그램을 했었는데, 당시 함께했던 PD들이나 작가들이 엄영자를 보고 놀라워한다. KBS 앞에 엄영자 포스터도 크게 붙여져 있다. 그 사진을 보더니 '얘가 누구냐'라고 웅성거리더라"라며 "다들 엄지인을 알고, 엄영자를 알지만, 이들을 매치시키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어떤 분들은 엄영자 연기를 할 때 '엄지인 아나운서 닮았다'라고 하더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티브이데일리 포토
유튜브 채널 '여의도 육퇴클럽'의 '영자의 전성시대'

주변인들이 본캐와 부캐를 일치시키지 못할 정도로 '엄영자'는 과감하다. 파마한 머리에 얼굴엔 점을 찍었다. 어떤 상황이든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한다. 말 그대로 '욕망 고모'의 자세를 보여주는 부캐 엄영자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이 모든 것은 KBS 교양 프로그램 '아침마당'에서 시작됐다. 엄지인은 "'아침마당' 요일별 코너를 기획하던 중 작가님이 나한테 '부캐를 할 수 있냐'라고 물었다. 그런데 '아침마당'은 생방송 아닌가. 엄영자를 하더라도 중간에 엄지인으로 돌아올 수가 없다. 그래서 괜찮냐고 물었는데 다들 흔쾌히 좋다고 했다"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실제 성격과 부캐 엄영자가 흡사하다고 밝혔다. 엄지인은 "보통 사람들이랑 있을 때 나서면 매를 맞지 않나. 나는 '가만히 있어야지'라고 생각해도 입방정을 떨고 후회하는 성격"이라며 "엄영자도 이런 성격이다. 부캐 연기를 할 때 어려울 건 없다. 주변에서 봤을 때 '왜 저래'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내려놓고 연기하면 되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아나운서란 방송사를 대표하는 얼굴이다 보니 대부분 우아하고 정돈된 이미지를 지닌다. 하지만 엄지인은 바로 그 견고한 틀이 있었기에 역설적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설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제가 조금 엉뚱하게 망가진다고 해서 개그맨이 되는 것도 아니고 아나운서라는 정체성이 사라지지는 않는다"라며 "오히려 연차나 이미지의 틀에 갇혀 선뜻 나서지 못하는 후배들을 위해 팀장인 제가 먼저 판을 열어주고 싶었다"라고 털어놨다.

엄지인은 회사의 방송 플랫폼은 줄어드는데 아나운서들이 역량을 증명할 기회가 부족했던 점이 늘 아쉬움으로 남았다고도 덧붙였다. 그는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서 이미지에 손상이 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아나운서도 저렇게 다양하고 재미있는 면이 있구나'라는 새로운 방향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혼자였다면 쉽지 않았겠지만, 박철규 아나운서처럼 가능성 있는 후배들과 함께 존재감을 키워나갈 수 있어 오히려 더 뜻깊다"라고 전했다.
티브이데일리 포토
엄지인 아나운서

'영자의 전성시대'는 요즘 트렌드를 거부감 없이 흡수하고 체험하는 과정을 위트 있게 풀어낸다. 특히 결혼정보회사 에피소드를 통해 골드미스의 자화상과 현실적인 고민을 조명하며 시청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끌어냈다. 엄지인은 "그때 나도 '요즘 결혼은 이런 거구나' 했다. 내가 결혼할 때와 너무 달랐다. 우리 때는 결혼정보회사는 몰래 다녀야 했다. 그런데 요즘은 결혼정보회사도 자연스러운 만남이라고 하더라"며 "그때 촬영 전 서면으로 원하는 이상형, 연봉 등을 작성했었다. 골드미스의 현 상황도 알게 됐고, 부캐 세계관이 뚜렷해지는 계기가 됐다"라고 설명했다.

엄영자와 숙모 나규리(나보람)의 케미가 돋보인 동묘 브이로그 에피소드 역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엄지인은 이 같은 화제성의 공을 제작진에게 돌렸다. 그는 "작가님부터 PD님들까지 젊은 감각이 넘치는 친구들이다. 아침마당 팀장님도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신다. 저나 팀장님 같이 올드한 사람들에게 '동묘가 왜 핫한지' 알려주며 아이디어를 쏟아내는 젊은 제작진 덕분에 늘 신나게 촬영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티브이데일리 포토
엄지인 아나운서

엄지인은 2007년 KBS 33기 공채 아나운서로 데뷔해 KBS1 '아침마당', '생로병사의 비밀', '인생이 영화'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 외에도 KBS의 대표 프로그램인 '우리말 겨루기', '미녀들의 수다', '체험 삶의 현장', '소비자고발' 진행은 물론 뉴스 앵커로도 활약했다.

과거 활동을 돌아본 엄지인은 "내가 아나운서를 지원했을 때만 해도 노현정, 강수정 선배가 활약할 때였다. 또, 전현무도 그렇고 다들 방송에서 많이 보이지 않나. 나 역시 이런 활동을 꿈꾸며 입사했지만, 아나운서의 입지가 좁아지더라"라며 "아이를 낳고 결혼한 아나운서로도 한계를 많이 느꼈다. 후배들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또한 "요즘은 기자들이 앵커를 맡고, 배우나 가수가 MC를 맡는다. 심지어 올림픽에도 방송인들이 많이 온다. 그러다 보니 아나운서들도 다양하게 뻗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능 쪽의 활동을 넓혀야 했다"라고 말했다.

이런 엄지인의 생각은 정확히 적중했다. 다만 시기상의 아쉬움은 존재한다고 밝혔다. 그는 "유튜브를 활용하는 방송사들이 많다. 우리도 안 하고 싶어서 안 하는 게 아니다. 귀찮은 것도 아니고, 절차가 너무 복잡하다 보니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가 없던 것 같다"라며 "이런 활동을 좀 더 미리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럼 난 더 많이 활약하지 않았을까"라며 웃어 보였다.

훗날 자신의 이름을 내건 프로그램을 꿈꾼다는 엄지인은 "어쩌면 '영자의 전성시대' 역시 내 꿈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부캐 엄영자의 이름을 달았으니 말이다"라며 "콘텐츠가 잘되고, 못되고 보다도 계획대로 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라고 미래를 내다봤다.

[티브이데일리 안윤지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제공=엄지인 SNS, KBS]
기사제보 news@tvdaily.co.kr        안윤지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는 tvdaily 홈페이지(http://tvdaily.mk.co.kr)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info@tv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