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김지현 기자]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tvN '시그널', '백일의 낭군님' 등 굵직한 작품들을 배출한 제작사 에이스토리(대표 이상백)가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며 심각한 재무 악화에 직면했다. 매출액보다 제작 원가가 더 많이 들어가는 역마진 구조가 고착화된 게 고질적 문제로 꼽힌다.
에이스토리가 8월 제출한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연결 기준 매출액은 101억 6,662만 원, 영업 손실액 -37억 3,050만 원이다. 2024년-35억 483만 원, 지난해 -72억 7,824만 원에 이어 3년 연속 대규모 영업 적자를 기록했다. 문제는 수익을 낼 수 없는 구조에 있다. 올해 상반기 연결 매출액은 101억 6,662만 원인데, 매출원가는 이를 웃도는 107억 4,490만 원이다. 매출원가율은 105.69%에 달한다.
판관비는 31억 5,222만 원이 소요됐다. 콘텐츠를 제작하고 판매할수록 오히려 적자가 누적되는 구조인 셈이다. 여기에 촬영 스태프 급여는50억 888만 원, 배우 출연료 39억 7,296만 원, 종업원 급여 25억 1,278만 원, 작가 원고료 4억 2,753만 원 등 제작이 드는 인건 비용도 상당하다. 3년 연속 적자는 에이스토리가 방송사나 OTT 플랫폼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유동성 문제도 발견된다. 에이스토리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2024년 말 54억 3,470만 원에서 지난해 말 16억 5,266만 원, 올해 6월 말 기준 10억 9,916만 원으로 급감했다. 1년 6개월여 만에 보유 현금의 약 80%가 소진됐다. 반면 재고 자산은 2024년 말 46억 868만 원에서 지난해 말 94억 5,687만 원, 올해 6월 말 142억 9,229만 원으로 3배 이상 급등했다. 선집행된 제작비가 방송사 편성 지연 및 판권 매각 난항으로 회수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에이스토리는 올해 하반기 방영 예정인 ‘크래시2: 분노의 도로’를 통해 실적 반등을 노릴 계획이다. 시즌1은 ENA 역대 드라마 중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다음으로 높은 시청률인 6.6%를 기록했다. 에이스토리는 글로벌 OTT 플랫폼 디즈니플러스 방영을 계획 중이고, 또 다른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 빅키와 시즌 1·2를 2036년까지 장기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하는 등 활로를 모색 중이다.
그러나 시장의 시선은 회의적이다. 글로벌 OTT와의 장기 판권 계약은 계약 기간이 긴 것일 뿐 재무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선급금이 유입되는 구조가 아닌 탓이다. 몇 편에 달하는 신작 라인업 역시 실제 편성·제작으로 이어지는데는 시간이 필요하고 불확실성이 크다. 제작비 급등과 플랫폼의 강한 협상력 속에서 작품당 마진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은 구조다.
괄목할 것은 에이스토리의 경영난은 한 제작사만의 보릿고개가 아니라는 점이다. 글로벌 OTT가 한국 콘텐츠, 제작 시장에 어떤 왜곡 현상을 가져왔는지 잘 보여준다. 먼저 ▶제작비 및 출연료의 비현실적 폭등로 인한 결과다. 글로벌 OTT 자본이 대거 유입되면서 한국 스타 배우 출연료와 회당 제작비는 글로벌 기준으로 치솟았다. 에이스토리의 매출원가율 105.7%'라는 기형적인 역마진 구조가 이를 대변한다. 타 제작사도 사정은 비슷하다.
▶레거시 미디어의 입지 축소도 국내 제작사들의 실적 악화를 부채질했다. 시청 주도권이 글로벌 OTT로 넘어가면서 국내 방송사의 TV 광고 매출이 급감했고, 이는 곧 드라마 편성의 전면 축소로 이어졌다. 과거처럼 ‘일단 만들면 어디든 방영되는’ 유통 공식은 깨진 지 오래다. 에이스토리의 프로그램 재고자산이 143억 원까지 폭증한 까닭 역시 TV와 OTT를 막론하고 플랫폼 편성의 문턱이 극도로 높아졌음을 보여준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시그널’ 같은 굵직한 히트 IP를 보유한 기획사마저 재고 부담에 허덕이는 상황에서, 자금력이 약한 중소 제작사들의 콘텐츠는 방영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창고 속에서 먼지만 쌓여가는 실정이다.
▶글로벌 OTT 기업이 제작 시장을 장악할 수 있도록 쉽게 권리를 내 준 한국 제작사들의 안일한 대처도 문제다.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등은 제작비 전액과 수익을 보장하는 대신 IP에 대한 권리를 독점 소유하는 외주 제작 방식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국내 제작사가 글로벌 OTT의 '단순 하청 기지'로 전락하는 결과가 됐다.
설상가상 글로벌 OTT 국내 진출이 촉발한 평균 제작비 인플레이션과 시장 환경 경색이라는 거대한 악재까지 겹치면서 국내 제작사의 의존도는 더욱 심화됐다. 에이스토리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모델처럼 IP를 직접 소유해 수익 창출을 노리는 전략을 택했는데, 정작 순수 IP 사업을 지키려던 이러한 시도가 오히려 족쇄가 된 것이다. 높아진 제작비를 직접 부담하며 IP를 지키려다 시장이 경색되자 홀로 리스크를 껴안게 되면서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됐다.
결국 왜곡된 제작 시장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에이스토리 뿐 아니라 국내 제작사들의 실정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티브이데일리 김지현 기자 news@tv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