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어떤 역할이어도 겉으로 보이는 모습 그대로 연기하는 법이 없다. 인물의 이면에 깊숙이 숨겨진 감정까지 온전히 끄집어내어 치열하게 이해하고 공감하며 자신만의 인물로 빚어낸다. 그래서일까. 지금껏 그려낸 인물들이 단순한 선악으로 재단할 수 없을 만큼 입체적이고 다채롭다. 또 다른 새 얼굴로 스크린으로 돌아온 배우 노재원의 이야기다.
23일 개봉되는 영화 ‘타짜: 벨제붑의 노래’(감독 최국희)는 온라인 카지노 사업으로 세상을 다 가진 줄 알았던 장태영(변요한), 그리고 그의 모든 것을 빼앗은 같은 이름의 절친 박태영(노재원)이 글로벌 도박판에서 다시 만나 복수의 한 판을 벌이게 되는 범죄 영화로, 노재원은 극 중 박태영을 연기했다.
첫 상업 영화의 주연이라는 자리도 부담이었을 텐데, 20년 간 이어져 온 시리즈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작품이라는 타이틀까지 얹어졌다. 그럼에도 노재원은 부담감보다는 이 모든 것에 감사한 마음으로 ‘타짜: 벨제붑의 노래’에 뛰어들었다.
그만큼 노재원은 ‘타짜: 벨제붑의 노래’에 매료됐다. 전작의 영광에 가려지지 않을 만한 작품성이 있었고, 무엇보다 장태영과 박태영이라는 이름은 같지만 한 끗 차이의 선택으로 다른 인생을 살게 되는 두 친구의 이야기라는 점이 좋았단다. 노재원은 “‘타짜’ 시리즈의 피날레라는 생각보다는 그중에서도 새로운 이야기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박태영이라는 인물이 노재원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박태영을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 중 가장 순수한 인물이라고 말한 노재원은 그를 악역이라고 생각하며 접근하지 않았다고 했다. 노재원은 박태영을 ‘사랑받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는 키워드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박태영이 불우한 가정환경이라는 공통분모에도 늘 반짝반짝 빛나고 사람들의 호감을 사는 그야말로 ‘운’이 좋은 장태영이 되기를 원한 것도 결국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었다. 노재원은 “박태영은 장태영을 닮고 싶어 한다. 모든 행동을 따라 한다. 다들 살면서 누군가로 인해 자격지심이 들고 초라해 보일 때가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노재원이 박태영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던 이유가 된 건 가장 친한 친구 때문이었다. 노재원은 “제 분신 같은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의 많은 걸 부러워하고 존중하고 존경한다. 이 친구가 삶을 대하는 태도도 부럽고, 닮고 싶다. 그 덕분에 제가 좋은 배우로 살아가고 있다”면서 “박태영은 그 친구와 저의 관계로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박태영에게 몰입하며 디테일한 서사를 쌓아나갔던 노재원이 또 깊은 이해가 필요했던 소재가 있다. 바로 홀덤이다. 노재원은 “홀덤이 박태영에게 어떤 의미인지가 정말 중요했다. 홀덤이 박태영에게는 ‘내가 유일하게 증명받는 도구’라고 생각했다. 홀덤을 처음 했을 때 누구보다도 소질이 있었다는 게 박태영에게는 첫 번째 행운이지 않았나 싶다”라고 했다.
이에 노재원은 극 중 홀덤 장면들을 누구보다 잘 소화하고 싶었다. 박태영 서사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장면들이었기 때문에 촬영 기간 내내 공부하며 연습에 매진했다.
노재원이 박태영으로서 폭발적인 연기력을 쏟아낼 수 있었던 또 하나의 동력은 변요한이었다. 변요한이 장태영 그 자체였기 때문에 노재원이 박태영으로서 복잡다단한 감정들을 표현할 수 있었다. 노재원은 변요한에 대해 “제가 의지를 많이 했다. 변요한 선배님이 장태영 그 자체이니까,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부럽고 저를 쳐다볼 때마다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어 노재원은 “장태영은 멋있고 또 많은 것들이 부러운데, 박태영은 미워 보이고 어설픈 순간이 있다. 그렇게 대조되는 게 선배님과 저의 합이 맞았지 않았을까 싶다”라고 했다.
노재원은 영화의 가편집본이 4시간을 넘어갔을 만큼 박태영의 서사가 더욱 깊고 연민이 가는 장면들도 많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감독님께서 박태영을 사이코패스적인 면모로만 그리려고 한 게 아니라, 연민이 가는 신들도 다 찍으셨다. 저와 박태영을 보는 시점이 같았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비록 본편에서는 편집됐지만 극 중 하마에게 “넌 나 친구로 생각해?”라고 묻는 애드리브를 던진 후 스스로도 저릿한 감정을 느꼈다는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연기를 온전히 펼칠 수 있도록 믿어준 감독에게 깊은 감사를 표했다.
노재원은 박태영을 단순한 악역으로만 보지 않기를 바랐다. 노재원은 “얼마나 밉고 못나 보이겠나. 하지만 조금이나마 인물에 대한 연민이 보이길 바라는 것이 하나의 작은 바람”이라고 진심을 전했다.
그러면서 역설적이게도 노재원은 이렇게 일그러진 박태영을 통해 삶의 힌트를 얻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과연 박태영이 진짜 불운아였을까. 장태영이 바라봤을 때는 그렇게 안 봤을 것 같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꼬여있었던 것뿐”이라며 “내 삶이 힘들거나 지칠 때, 어쩌면 나만의 착각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힌트를 박태영에게 배웠다. 그런 점이 되게 뿌듯했다”고 덧붙였다.
물론 극한의 상황으로 치닫는 인물에 깊이 몰입하는 과정은 심적으로 녹록지 않았다. 자극적이고 부정적인 감정을 쏟아내는 신들을 찍고 나면 무의식에 남은 여파를 덜어내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했다는 그다. 노재원은 “메소드 연기를 떠나서, 사람이라면 너무나 자극적인 것들을 마주할 때 마음에 남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극한의 감정을 뒤로하고 노재원은 현재 연극 ‘내게 빛나는 모든 것’을 준비하며 스스로의 삶을 긍정의 에너지로 채워가고 있다. “인터뷰를 할 수 있다는 것, 아침에 눈이 금방 떠졌다는 것 등 내 삶에서 빛나는 리스트를 채워보고 있다”는 노재원은 한층 더 단단해져 있었다. 그러면서 노재원은 “살다 보면 마음이 쪼그라들고 작아질 때도 있지만, 이제는 억지로 극복하려 하기보다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기른 것 같다”고 전했다.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들과 함께 나아가는 그의 다음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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