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신화' 프리챌 전제완 대표, 충격 근황 "펜션 청소부로 일하는 中"(꼬꼬무) [종합]
2026. 09.17(목) 23:34
꼬꼬무 전제완
꼬꼬무 전제완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프리챌로 우리나라 온라인 커뮤니티의 시초를 열었던 전제완 대표의 충격적인 근황이 공개됐다.

17일 밤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1세대 벤처 신화를 이룩하며 대한민국 IT 업계에 한 획을 그었던 프리챌 창업자 전제완이 현재 청소부로 지내게 된 사연을 공개했다.

1998년 우리나라에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가 보급됐다. 초고속 인터넷과 함께 벤처 기업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닷컴 열풍이 일어나면서 벤처 기업의 성장도 이뤄졌다.

1999년, 스물 다섯살 대학생 최소현 씨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서울대생이었던 최소현 씨에게는 취업 걱정이 없었다. 이미 삼성 입사가 확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새로운 IT 회사에 입사한 후배가 소현 씨에게 회사 명함 디자인을 맡겼다.

현재 네이버 디자인부문장인 최소현 씨는 당시에 대해 "명함 정도밖에 안 만드는 거겠지만 이 회사 이름은 왜 자유와 도전인가 싶었다. 조금 촌스럽기도 하고 유치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해당 일로 최소현 씨는 자유와 도전 대표인 전제완 씨를 만났다. 전제완 씨는 서울대 출신에 삼성물산을 다녔던 이력이 있었다. 1988년, 당시 삼성 이건희 회장은 젊은 인재 영업을 지시했다. 그때 삼성 인사팀을 발령 난 사람이 전제완이었다.

전제완이 직접 대학교 순회를 하며 인제 발굴에 나섰다. 하루에 만나는 학생들만 100명이 넘었다. 전제완은 컴퓨터를 독학, 장장 5년에 걸쳐 새로운 인사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가 만든 성과물로 삼성그룹 전체의 인사 시스템이 개편됐다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제1회 자랑스런 삼성인상까지 수상했다. 당시 삼성에서 PC 최고 전문가이자 IT 천재라고 불린 사람이 전제완이었다.

1997년 IMF가 한국을 덮치고, 삼성 역시도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제 발로 삼성을 나온 사람이 있었다. 바로 전제완이었다. 삼성을 나와 만든 회사가 자유와 도전이었다. 최소현 씨는 전제완 대표의 자신감에 당시 확정돼 있었던 삼성 입사를 취소하고 자유와 도전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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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전제완 대표는 조수용 전 카카오 공동대표이사를 데려와 디자인팀 총괄을 맡겼다. 이 외에도 인재들을 끌어 모은 전제완은 초고속 인터넷 커뮤니티 프리챌을 열었다. 프리챌은 한국에 온라인 커뮤니티 전성기를 이끌며 벤처 기업 중 가장 성공한 사례로 뽑히기도 했다.

프리챌을 운영한 자유와 도전에 재직했던 직원들은 현재 주요 IT 기업을 이끄는 임원으로 성장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을 한데 모아 자유와도전을 이끌었던 전제완의 근황은 조금 충격적이었다. 전제완은 현재 양양의 한 펜션에서 청소부로 일하고 있었다.

전제완은 "사업을 하다가 어려워지는 고통은 사실은 인생이 거의 파탄 지경에 이르는데 시름을 잊어야 하니까 여기 와서 청소를 하는 거다. 한 가지에 집중을 해야 한다. 그래도 가끔 생각이 나는 게 제가 마음을 다 못 버린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전제완은 "(프리챌 개시 당시) 1년 만에 국내 TOP3를 가지고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던 거니까. 그 마음을 다 비울 수 있다면 제가 해탈하는 사람이다. 제가 중 같은 수도를 하는 사람도 아니고 잘 안 된다"고 했다.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news@tvdaily.co.kr/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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