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기행' 공효진의 내공, 나무 아닌 숲을 보다 [인터뷰]
2026. 08.27(목) 10:30
경주기행 공효진
경주기행 공효진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나무만 보던 사람이 이제는 숲 전체를 보는 시야와 사고를 가지게 됐다. 자신만 돋보이는 것이 능사가 아니며, 작품 전체의 재미가 곧 배우 자신의 진짜 가치를 증명하는 길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배우 공효진의 성장은 현재 진행형이다.

26일 개봉된 영화 ‘경주기행’(감독 김미조)은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한 막내딸 ‘경주’를 위해, 8년의 기다림 끝에 ‘죽이는’ 여행을 떠난 네 모녀의 가족 복수극을 담은 영화로, 공효진은 극 중 첫째 딸 장주를 연기했다.

공효진은 ‘경주기행’을 만난 건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운이 좋게 받은 시나리오는, 감독의 성별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중성적이었다. 복수라는 무거운 소재이지만 곳곳에 배치된 유머가 공효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무엇보다 시나리오에서부터 느껴지는 김미조 감독의 색깔에 매료됐다. 공효진은 “시나리오에 독님이 연출적으로 얹어 놓은 상징적 신이 있었다. 글에서부터 그런 느낌이 있었다. 곳곳에 표현이 잘 돼 있었다”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미 이정은이 캐스팅 돼 있던 상황이라 공효진에게는 더더욱 안 할 이유가 없는 작품이었다. 반전은 공효진이 탐낸 역할이 이정은이 연기한 엄마라는 것이다. 공효진은 “엄마 캐릭터가 너무 탐났다. 나중에 엄마 나이가 됐을 때 이런 작품이 나에게 오길 바란다”라고 말할 정도로 ‘경주기행’에 푹 빠졌다.

이어 공효진은 “이 영화는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나리오가 영상화되는 걸 보고 싶다는 걸 떠나서 내가 숨을 불어넣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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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효진이 연기한 첫째 장주는 세 동생들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자매들의 편이라기보다는 철저히 엄마(이정은)의 사이드에서 리드를 돕는 오른팔 같은 존재다. 공효진은 “엄마가 하고 싶은 것을 곁에서 풀어주고 돕고 싶은 마음이 컸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극의 클라이맥스에 다다르며 장주 역시 자신만의 각성을 맞이한다. 딸로서 엄마를 보필하던 그가, 자신에게도 지켜야 할 남편과 딸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엄마’로서의 본능을 드러내는 것이다. 공효진은 이에 대해 “내 결정적인 실수로 남은 가족마저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 속에서 장주의 마음이 복잡하게 요동쳤을 것”이라며 캐릭터에 깊이 공감했다.

이어 공효진은 “가장 복잡해 보이지만, 목적이 단 하나라는 점에서는 오히려 제일 단순한 인물일 수 있다”며 캐릭터의 양면성을 짚어냈다.

무거운 감정선이 흐르지만, 작품의 분위기는 결코 어둡기만 하지 않다. 짠할 만하면 웃음이 터지는 이른바 ‘단짠단짠’의 묘미는 공효진과 감독이 가장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물이다. 사안이 무거운 만큼 진중한 마무리가 필요하지만, 시작부터 끝까지 기괴하고 무겁기만 하다면 관객을 설득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코미디를 대놓고 노린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블랙 코미디적 요소는 ‘경주기행’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됐다.

공효진은 김미조 감독 특유의 미적 세계와 상징적인 연출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특히 공효진이 꼽은 명장면은 엄마와 세 자매가 펜션에 누워 과거 바닷가에 갔던 추억을 나누는 신이다. 뻔한 회상 장면 대신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그림자와 하와이풍의 음악으로 애절함을 극대화한 연출을 보며 “우리 감독님에게 확실한 자기 세계가 있구나”라며 감탄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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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초부터 지금까지 공효진을 지탱해 온 가장 큰 무기는 특유의 자연스러운 연기와 딕션이다. 공효진은 그 비결에 대해 “어릴 때 눈만 뜨면 구연동화 테이프를 들었다.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을 쉽게 접할 수 있게 해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다”고 했다. 이어 “초반에 김태용, 민규동 감독님처럼 나를 얼어붙게 하지 않고 장점을 잘 끌어내 주시는 분들을 만난 것도 컸다. 덕분에 카메라 앞에서 두려움이나 해내야 한다는 압박 없이 연기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수많은 작품을 거치며 단단한 내공을 쌓아온 공효진은 이제 완벽한 베테랑의 시선을 갖췄다. 예전에는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관객에게 이해시키고 응원받는 것이 우선이었다면, 지금은 작품 전체의 흥미를 유발하는 데 더 큰 목적을 둔다. 공효진은 “이제는 내 캐릭터만 욱여넣고 싶은 게 아니라, 극이 지루하지 않게 쭉 끌어가는 일에 더 집중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자신의 캐릭터가 다소 수상해 보이거나 나중에야 이해를 받더라도, 관객이 궁금증을 안고 끝까지 지켜보게 만드는 것이 이제는 자신이 해야 할 몫이라는 것이다. "끝까지 보는 게 제일 중요하지 않나”라는 말에서는 캐릭터를 넘어 작품 전체의 호흡을 쥐락펴락하는 공효진만의 깊은 여유와 책임감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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