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이’를 삼켜라 [연예다트]
2026. 08.13(목)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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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 내용 요약

서양의 대서사시,
‘오디세이’의 이면


[티브이데일리 이기은 기자] 제1세계 서방의 백인 남성이 갱신하는 세계관을 예의주시하게 된다. 보수 엘리트주의 상징이었으나 현시점 미국 진보 기조로 비춰지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오디세이’는 2,900여 년 전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를 무척 현대적으로 개정한다. 핵심은 고대 그리스를 관통했던 환대 개념, ‘크세니아’(ζενια)에서 비롯된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누가복음 6장 31절)는 신약 성경의 유명 구절은 마침 고대 그리스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도 일맥상통한다. 당시 그들은 오갈 데 없는 약자나 이방인을 집에 들여 따뜻한 잠자리와 먹거리를 내주고, 서로를 해치지 않아야 한다는 규율을 마음속에 새겼다.

영화 ‘오디세이’에서는 이를 ‘제우스의 법’으로 치환한다. 치정과 살육에 잠식된 그리스 로마 신들과 인간들에게도 최소한의 질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래 신들에게 큰 총애를 받았던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맷 데이먼)는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면서 이 대법을 어기고 만다.

오디세우스가 설계한 ‘트로이의 목마’ 전술은 영리한 만큼 배덕하다. 아름다운 목마는 호의적인 선물로 둔갑해 트로이 성에 들어서지만 그 안엔 트로이 사람들을 발 빠르게 죽이는 비밀 병사들을 숨겨 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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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감독의 최근 전작 ‘오펜하이머’(2023)가 조명하는 패닉(panic)과도 유사하다. 오펜하이머는 원자 폭탄을 만들 수 있는 천재성으로 전쟁의 승리에 기여하지만 그 특별한 능력이 세계에 죽음을 드리우자 혼란을 느낀다.

누구든 인생의 어떤 구간에서 운이나 지략을 이용해 승리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승전해도 괜찮다는 정당성을 보장하진 않는다. 오디세우스도 오펜하이머도 참상을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조차 추산하지 않은 한순간의 선택은 이들이 항해하는 곳곳의 길목을 파쇄한다.

그리하여 인류 사회의 도의를 깨뜨린 자에겐 혹독한 시련만이 남는다. ‘오디세이’를 맷 데이먼의 히트작 ‘라이언 일병 구하기’, ‘마션’ 맥락에서 제1세계 남성이 집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로 읽는 것은 그래서 조금 나이브(naive)하다. 영화가 미국 현지 진보의 걸음으로 읽히는 것도 바로 이 대목일 것이다.

제우스의 법마저 유용하는 무소불위의 기성 승리자, 즉 약자나 이방인을 환대하긴커녕 도리어 몰살한 자는 지리멸렬한 형벌의 길목을 떠돌게 된다. 그곳엔 외눈박이 괴물 사이클롭스, 덫을 치는 마녀 키르케, 사이렌이 부르는 죽음의 노래가 도사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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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00년 전 쓰인 한 인간의 원형 모험극은 비로소 현대인들에게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진다. 오디세우스가 설계한 트로이 목마라는 전술은 과연 지혜인가. 그렇게 승리한 당신은 승자인가.

사실상 오디세우스가 아내 페넬로페(앤 해서웨이)의 품으로 부끄럽지 않게 돌아갈 수 있는 귀환은, 자신의 지혜로 인해 숱하게 목숨을 잃은 부하들의 희생을 인정하는 순간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가령 자신을 따르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것은 아닌지 언제나 우려하는, 중년의 가책 같은 것.

그렇다. 서방의 대서사시 '오디세이'는 연약하고도 미욱한 우리들에게 총체 적용되는 속죄의 파노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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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이기은 기자 news@tv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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