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매 순간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적이 없다. 잠시간의 활동 공백기를 갖기 전까지도 '동궁'으로 글로벌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쉼 없이 달렸다. 데뷔 후 처음 가져보는 오랜 휴식 이후 더 깊어지고 다채로워질 배우 곽동연의 2막이 기대되는 이유다.
지난 17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동궁’(연출 최정규)은 귀(⻤)의 세계를 넘나드는 능력을 가진 구천(남주혁)과 비밀을 간직한 궁녀 생강(노윤서)이 왕(조승우)의 부름을 받고 동궁에 깃든 저주를 파헤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는 작품으로, 곽동연은 극 중 미스터리의 중심인 세자를 연기했다.
곽동연과 ‘동궁’의 인연은 전작인 ‘눈물의 여왕’ 회식 자리에서부터 시작됐다. ‘눈물의 여왕’과 ‘동궁’의 제작사 대표가 “뭐 하나 부탁할 수 있는데 잘 좀 봐달라”고 언질을 한 뒤, 몇 달 뒤에 ‘동궁’ 대본을 건넸단다.
하지만 4부까지 읽어 본 대본에서, 곽동연은 자신이 연기적으로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이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귀의 세계를 어떻게 구현할지에 대한 의구심도 있었다. 이에 곽동연은 자신 보다 더 적격인 사람이 하는 것이 맞다고 거절하려고 했지만, 최정규 감독의 청사진과 조감독의 설득에 물 흐르듯 출연을 결정하게 됐다.
특별출연이었지만, 곽동연이 ‘동궁’에서 수행해야 할 존재감은 그 이상이었다. 죽음으로 작품의 오프닝을 강렬하게 열고, 그 이후엔 ‘궁궐’에서 벌어진 비극의 원흉이라는 핵심적인 역할을 감당해야 했다. 무엇보다 귀신이라는 설정 때문에 거의 매 장면마다 특수분장을 해야 했다.
세자의 정체가 밝혀지기 전, 귀신이 등장했던 모든 장면도 곽동연이 연기했단다. 곽동연은 “촬영할 때마다 머리카락을 어느 정도 걷을지 고민했다. 너무 가리면 제가 안 보이고, 더 열면 누구인지 알아챌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곽동연이 분석한 세자는 선천적으로 귀신의 소리를 듣는 능력을 지닌 인물이다. 그는 이 능력을 신의 점지로 여겼고, 후계 구도에서 밀려난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선지자적 사명으로 합리화하며 살생을 저지르는 복잡한 내면을 구축해 나갔다.
세자가 아버지인 왕으로부터 독살을 당하는 장면에서 곽동연의 연기가 빛난 이유는 바로 이 견고한 캐릭터 분석에 있다. 곽동연은 “난 하늘이 점지한 사람이고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선지자라고 합리화하면서 살생을 저질렀고, 기구한 운명을 스스로 이끌고 가는 자기 일을 서사화 시켰을 것” 이라며 “십 수년 동안 가지고 있었던 삶의 사상들이 전복되는 경험을 한 거니까 거기에서 울분이 터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세자의 내면을 바닥부터 철저하게 파고든 곽동연의 고민은 곧 해당 장면에서 터져 나온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개연성이 됐다.
이러한 캐릭터의 서사가 폭발하는 독약 신에서 곽동연의 치밀한 계산이 빛을 발했다. 그는 죽어가는 과정의 시각적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스스로 독을 더 마시는 설정을 더했다. 형제들을 죽이면서까지 왕좌에 집착하던 세자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직전 아버지인 왕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게 되자 울분과 허망함을 처절하게 그려내며 극의 몰입도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후반부 액션신 역시 곽동연이 꼽은 명장면 중 하나다. 세자가 죽은 자들의 왕으로서 품위를 지키려다 궁지에 몰리자 역병귀까지 동원하며 절박하고 치졸하게 싸우는 흐름은 곽동연이 직접 짚어냈다. 이는 캐릭터의 맹목적인 절박함을 가장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크로마키와 와이어를 넘나드는 고난도 액션은 곽동연에게도 값진 경험이었다. 기술적 합을 맞추는 과정을 통해 판타지 액션에 대한 감각을 익혔고, 이는 훗날 배우로서 마주할 다양한 장르 작업의 탄탄한 자양분이 됐다.
‘동궁’을 마친 곽동연은 8월 입대를 앞두고 자신의 지난 삶을 찬찬히 되돌아보고 있는 중이다. “지금 생각해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하면서도, 너무 앞만 보고 달려온 시간에 대한 짙은 아쉬움을 털어놨다.
촬영에 지장을 줄까 봐 쉬는 날 등산조차 주저했던 시간들을 떠올린 곽동연은 앞으로는 삶의 작은 즐거움들을 외면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군 복무 이후에는 매 순간을 조금 더 음미하고 향유하며 살아가겠다는 그의 목소리에는 한층 성숙해진 여유가 묻어났다.
끝으로 곽동연은 팬들을 향한 씩씩한 인사를 잊지 않았다. “불안정한 정세 속에서 국가는 제가 지킬 테니, 여러분은 ‘동궁’을 재밌게 보시며 행복하게 지내달라”는 특유의 유쾌하고 든든한 당부와 함께, 더 단단해진 모습으로 돌아올 다음 챕터를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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