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프' 정호연의 기세 [인터뷰]
2026. 07.09(목) 08:30
호프 정호연
호프 정호연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연차가 한참 차이나는 대선배들 앞에서도 기죽지 않으려 했다. 오히려 배울 것들이 더 많으니 좋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 기세로 자신의 몫을 오롯이 해내며, ‘호프’로 또 한 번 필모그래피에 유의미한 족적을 남겼다. 배우 정호연의 기세가 어디까지 뻗어나갈지, 기대되는 이유다.

15일 개봉되는 영화 ‘호프’(감독 나홍진)는 비무장지대에 위치한 호포항 출장소장 범석(황정민)이 동네 청년들로부터 호랑이가 출현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온 마을이 비상이 걸린 가운데 믿기 어려운 현실을 만나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제79회 칸 영화제 초청작이다. 정호연은 극 중 호포항 경찰 성애를 연기했다.

정호연은 나홍진 감독과 처음 미팅을 할 때만 해도 ‘호프’를 하게 될 거란 생각은 못했다. 가벼운 미팅이라고 하기는 했지만, 정호연은 오디션이라고 생각하고 단단히 준비하고 나홍진 감독을 만나러 갔다. 그러나 나홍진 감독의 호랑이 같은 눈빛에 준비해 온 것들을 모두 내려놓고,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

그 판단은 ‘호프’ 시나리오로 돌아왔다. 나홍진 감독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나리오를 받을 수 있었고, 꼭 출연하고 싶다는 마음에 제목 밑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 넣었단다. 제 것이 되었으면 하는 그 간절했던 마음을 잊지 않고, 정호연은 ‘호프’의 성애를 잘 표현해 보고자 각고의 노력을 펼쳤다.

그 간절함으로 정호연은 성애에 대해 파고들기 시작했다. 정호연은 성애를 “마을의 소일거리부터 대소사를 다 도맡아서 하는 친구”라고 설정하고 디테일을 잡아나갔다. 나홍진 감독이 “성애는 선의에서 출발했으면 좋겠다”라는 말에 성애의 톤을 설정했다.

성애의 첫 등장신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 중 하나다. 믿기 힘든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데, 성애는 어리둥절하거나 허둥대지 않는다. 마을을 지키기 위해 총기를 한가득 차에 싣고 나타나 범석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으레 한국영화에서 봐왔던 경찰 캐릭터의 톤과는 사뭇 다르다. 진지하지 않지만 에너지는 가득한 다소 신선하다. 그 신선한 톤은 오히려 ‘호프’가 어떤 영화인지 단번에 납득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런 신선한 톤은 나홍진 감독과의 치열한 고민 끝에 탄생했다. 정호연은 “첫 리딩 때 저만의 것을 준비해 갔는데, 감독님께서 ‘어떻게 다르게 해 볼 수 있을까’ 숙제를 주셨다”며 “선의나 정의에 대한 믿음이 확실할 때 그게 쉬운 슬픔보다는 큰 분노의 에너지로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해 다르게 접근해 봤다. 미세한 톤은 감독님이 다 도와주셨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호연은 “감독님께서 촬영을 하면서도 성애가 화면에 나오면 영화가 청량해진다는 피드백을 주셨다”며 “그게 이 영화에서 제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수많은 비극이 일어나는 상황 속에서 성애의 등장이 단순한 가벼움이라기보다는 환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연기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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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장르물 속에서도 정호연은 특유의 유머를 잃지 않았다. 그는 “나홍진 감독님과 유머 코드가 잘 맞는 것 같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너무 많이 웃어서 이렇게 웃어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며 “특별히 연기적으로 웃기게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하기보다는, 그 상황 자체가 지닌 코미디적 요소에 집중해 억지스럽지 않게 표현하려고 했다”고 회상했다.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베테랑 스태프, 기라성 같은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는 건 큰 도전이었다. 정호연은 “서로 너무 잘 아는 베테랑 분들 사이에 있다 보니 처음엔 제가 극 중 외계인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들고 두렵기도 했다”면서도 “한편으로는 배울 것들이 많겠다는 설렘도 컸다. 나의 기세와 자신감을 잃지 않고 현장에서 잘 서 있자,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자는 마인드로 임했다”고 털어놨다.

현장에서 선배들이 보여준 압도적인 책임감은 정호연에게 좋은 교과서가 됐다. 정호연은 “황정민 선배님은 주연 배우로서 누구보다 현장에서 긴장하고 스스로를 편한 곳에 놓지 않으려 경계하셨다. 항상 20분씩 일찍 오시는 모습을 보며 크게 감명받았다”고 존경심을 드러냈다.

또한 조인성을 통해서는 현장에서의 유연함을 배웠다. 정호연은 “조인성 선배님 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유연하시다. 작품을 하다 보면 그 유연함이 필요한 순간들이 정말 많은데, 강약 조절을 선배님들이 직접 해주시는 걸 보면서 앞으로 저도 현장에서 어떤 자세로 존재해야 할지 배웠다”고 덧붙였다.

기술적으로 난도 높은 액션 신 역시 끈끈한 협업과 사명감으로 이겨냈다. 정호연은 “트럭에 와이어를 장착하고 매달리는 장면도 있었고, 무술팀과 승마팀 분들이 안전을 위해 여러 가지 플랜을 꼼꼼하게 짜주셨다”며 “두려울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때쯤엔 우리 모두 이 영화를 제대로 만들어서 보여줘야겠다는 사명감 하나로 달려왔던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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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연은 극 중 범석과 성애의 대화를 통해 영화의 핵심 메시지를 짚어냈다. 그는 “인간관계가 복잡하고 단순한 선의가 늘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우리는 선의를 지키고 희망을 믿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인간의 의지를 말하고 싶었다”며 “정답을 정해두기보다는, 살아가면서 지키고 싶은 것들을 스스로 설정하고 유연하게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을 통해 배우로 발돋움한 만큼, 모델과 배우라는 두 가지 길에 대한 고민도 한층 성숙해졌다. 정호연은 “예전에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나 고민도 했지만, 이제는 굳이 극단적으로 결론 내릴 필요가 없다고 느낀다”며 “아이유 선배님처럼 가수와 배우를 훌륭하게 병행하는 분들도 많다. 저 역시 둘 다 자연스럽게 가져가며 저만의 길을 개척해 보고 싶은 욕심과 자신감이 생겼다”고 눈을 반짝였다.

‘호프’라는 큰 프로젝트를 마친 정호연의 다음 목표는 거창한 성공보다는 단단한 내면을 가꾸는 것이다. 정호연은 “엄청나게 원대한 희망을 품고 살기보다는, 건강한 멘털리티를 유지하며 살고 싶다”며 “일에 몰입하면 잠이 불규칙해지기 쉬우니, 쉴 때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운동도 하면서 최대한 규칙적으로 바이오리듬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고 미소 지었다.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영화 '호프',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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