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한서율 기자] 숲 속에서 기이한 불상이 발견되면서 비극의 서막이 오른다. 호기심에 이끌려 불길한 악귀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인 세 고교생이 기괴한 자해 끝에 목숨을 잃는다. 타인의 죽음과 비극을 먹어 치우며 힘을 키워가는 악령, 그리고 그 참혹한 저주를 끊어내기 위해 령(靈)의 세계로 뛰어든 박수무당의 사투가 잔혹하게 펼쳐진다. 박수무당은 점차 파국으로 치닫는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
오는 17일 개봉되는 영화 '신사: 악귀의 속삭임'(감독 구마키리 가즈요시)은 일본 고베의 폐신사를 배경으로 실종된 대학생들을 구하려는 박수무당의 서사를 담은 오컬트 호러물이다. 한국의 무당과 일본의 폐신사라는 동양적 소재를 결합해 이색적인 공포를 담아냈다.
영화는 일본 장르 영화계의 거장 구마키리 가즈요시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만큼, 작품은 언뜻 일본 고유의 괴담과 무속 신앙을 다루며 특유의 음산한 분위기를 풍길 것으로 기대됐다. 이에 걸맞게 초반부는 오컬트 장르 특유의 구성을 충실히 따라간다. 의문의 자살로 죽은 학생들과 이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나선 선생, 그리고 박수무당의 등장은 익숙하면서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구도다. 특히 악귀의 영향으로 드릴로 귀를 뚫거나 나무막대로 눈을 찌르는 등, 별다른 설명 없이 인물들이 스스로 자해를 감행하는 장면들은 시각적으로 강렬한 이미지를 선사하며 몰입도를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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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사: 악귀의 속삭임 |
그러나 전개가 될수록 영 낭패다. 영화 속 배경만 일본일 뿐, 장르의 색깔은 정체불명의 혼종이 펼쳐진다. 관객이 기대했을 법한 한국 박수무당과 일본 악귀의 치열한 영적 대결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영화는 개항기 시절 일본으로 유입된 인도의 귀신 '라크샤사'를 중심 소재로 끌어들인다. 오컬트 장르로서 분명 신선하고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매력적인 장치다. 다만 한국의 무속 신앙과 일본의 폐신사, 그리고 인도의 살인귀이라는 이색적인 재료들을 하나의 거대한 세계관으로 유기적으로 엮어내는 데에는 그 솜씨가 어설프다.
공포를 자아내는 방식 또한 기대와 다르다. 오컬트 장르 특유의 영적 존재가 주는 심리적 압박감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스스로 목숨을 끊던 인물들이 돌연 타인을 난도질하는 잔혹한 살인극으로 부족한 긴장감을 간간이 때운다.
중반부로 접어든 서사 역시 갈 길을 잃었다. 극의 긴장감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선생을 향한 박수무당의 뜬금없는 짝사랑 서사가 몰입을 깨트리더니 뒤이어 등장하는 인물들의 설정 또한 황당함을 자아낸다. 신을 배반하고 맹목적인 살인자로 전락한 목사의 모습이나, 과거 누군가를 저주해 목숨을 끊게 만들었다는 박수무당의 과거사 등 개연성 없는 전개들이 우후죽순 쏟아지는 탓이다. 음산한 미스터리를 고조시켜야 할 타이밍에 중구난방으로 파생되는 인물들의 서사는 극의 중심을 흔들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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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사: 악귀의 속삭임 |
주연으로서 극의 중심을 굳건히 잡았어야 할 김재중마저 어색한 박수무당 연기로 아쉬움을 더한다. 멜로인지 코미디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갈피 잃은 연기를 선보인다. 점입가경으로 귀신의 실체를 보기 위해 "보여줘 할머니"라고 외치며 행하는 주술 동작은 오컬트 영화가 아닌 K팝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무속 신앙을 대변하는 박수무당이 뜬금없이 불교 염불을 외우는 장면 역시 장르적 몰입을 철저히 깨뜨린다. 차라리 맨몸 액션 연기가 더 돋보이는 수준이다. 그가 14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으로 왜 오컬트 호러를 선택했는지 의문이 남는다.
반면 배우 공성하는 무너지는 극의 서스펜스를 홀로 지탱하며 깊은 인상을 남긴다. 평범한 선생인 줄 알았던 인물이 극 후반부 악귀에 빙의돼 펼치는 열연은 소름이 돋을 정도다. 자극 초반의 차분하고 초조했던 안색과 완전히 대비되는 광기 서린 폭발력, 그리고 어색함 없는 일본어 연기는 이 영화가 건진 유일한 수확이자 가장 강렬한 명장면이다.
결론적으로 '신사: 악귀의 속삭임'은 일반적인 오컬트 공포 영화를 기대한 관객에게는 실망감을 안길 확률이 높다. 영적 세계의 음산한 매력 대신 핏빛 가득한 잔혹함만 도드라지는, 다소 길을 잃은 잔혹한 액션 스릴러에 가깝다.
[티브이데일리 한서율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라이브러리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