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사 내용 요약
N차 콘텐츠 유발하는 웰메이드 코믹극 공신
오정세라서 가능했던 ‘와일드씽’
[티브이데일리 이기은 기자] 지난 2024년 오정세는 현 소속사 프레인TPC와 흔쾌히 재계약을 체결했다. “주변에 자랑하고 싶은 회사, 그 안의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는 그는 이곳 둥지가 매년 배우들에게도 상여금을 주고 신년 계획을 달성한 아티스트 1인을 뽑아 유럽 비즈니스 항공권을 선물로 준다고 귀띔했다.
배우의 재계약은 대체적으로 아티스트 본연의 성품, 의리 이미지로 승격된다. 하지만 오정세는 “나는 결코 의리로 재계약하지 않았다”면서 기성 배우들의 고충을 자기 일처럼 고민해주는 회사이기에 향후 여정을 장기 동행하기로 약속했단다. 이 같은 소속사와 아티스트 간 사려 깊은 커뮤니케이션이 이내 준수한 결과물로 이어졌다. 이를테면 지난 3일 개봉한 코미디 영화 ‘와일드 씽’(감독 손재곤)은 오정세의 본래 특기인 코믹 캐릭터가 극도로 활개를 칠 수 있는 무한의 스케치북이었다.
영화는 한때 가요계를 휩쓸었지만 예기치 못한 사건에 휘말려 하루아침에 해체된 3인조 혼성 댄스 그룹 ‘트라이앵글’이 20년 만에 찾아온 재기의 기회를 잡기 위해 무모한 도전을 벌인다는 설정이다. 이들과 대치 구도를 이루는 재미난 캐릭터가 바로 경쟁자 보컬 최성곤(오정세)인데, 그는 트라이앵글 대성공 탓에 당시 가요계에서 38주째 음방 2위인 비운의 발라더로 기록되기에 이른다.
화이트 쉬폰 블라우스를 입고 곱게 빗은 단발머리를 깻잎처럼 올려붙인 최성곤은 아무리 봐도 우스꽝스러워서 내처 ‘키득거림’을 유발한다. 극 중 그가 부르는 타이틀곡 ‘니가 좋아’는 90년대 황금기 가요계의 버블 분위기를 고스란히 답습했다. 가령 2000년대의 몽글몽글하고 반짝거리는 음악 무대 잔흔은 ‘니가 좋아, 예뻐서 좋아’라는 처연한 세레나데 가사와 맞물리고, 90년대 향수를 자극하는 4대3 화면 비율, 뿌연 레트로 필터는 이내 “누룩빛깔 최성곤”이라는 ‘떼창’ 응원으로 연계된다.
뮤직비디오는 당시 가요계 트렌드였던 특유의 드라마 타이즈 새드엔딩 공법을 오버랩해 특별 제작됐다. 환한 아일라이팅 효과는 배우의 여장 느낌마저 유발하고, 이는 본래 코미디 장르의 강자로서 1997년 데뷔 이래 탄탄한 기본기를 쌓아왔던 오정세의 찬란한 필모그래피를 환기하게 했다.
2013년 ‘남자사용설명서’로 코미디 정수를 선보였고 ‘머니백’, 2019년 천만 코미디 ‘극한직업’까지 열띠게 달려왔다. 예컨대 일련의 의미심장한 유머 캐릭터들은 현재 ‘와일드 씽’ 최성곤은 물론, 방영 중인 MBC 금토드라마 ‘오십프로’ 북파 간첩 봉제순(오정세)을 만들어낸 토대다.
영화 속 가상의 연예인 캐릭터들이 또 하나의 가상 콘텐츠를 생성하는 일은 콘텐츠 강국 한국 마케팅팀에겐 익숙한 ‘N차 바이럴’ 작업이다. 홍보팀 롯데엔터테인먼트 부처는 지난 4월 21일 ‘니가 좋아’ 음원을 공식 발매한 이후 영화 개봉일인 지난 3일 뮤직비디오까지 동시 공개했다.
내친김에 홍보팀은 ‘니가 좋아 1시간 반복 재생’ 영상까지 열혈 제작했는데, 원본 뮤직비디오가 단 3일 만에 120만 뷰를 찍은 것에 이어 해당 2차 영상도 부스터 홍보 효과를 낳았다. 급기야 한솥밥 식구 배우 류승룡을 비롯해 그룹 에스파 윈터까지 ‘니가 좋아’ 챌린지에 흔쾌히 동참하면서 ‘누룩빛깔 최성곤’의 존재감은 신드롬이 됐다.
오정세와 이미 가족 같은 사이인 소속사 관계자들로선 물 만난 고기마냥 신이 났다는 후문이다. 프레인TPC도 최성곤 캐릭터 관련 쇼츠를 3편이나 직접 만들었다.
상황극 속에서 최성곤의 팬은 “뒤에 나방 붙었어요”라며 그에게 주의를 준다. 최성곤이 화들짝 놀라면서 몸서리를 치는 순간 팬은 “성곤님에게 빠졌나방”이라고 외친다. 이는 오정세 특유의 섬세한 주접 연기를 극대화했다. 예상대로 나방 쇼츠는 현 시각 유튜브에선 무려 220만 뷰를 기록, 인스타, 틱톡, 네이버 클립, X(구 트위터)까지 장악하며 ‘밈(Meme)’으로 번졌다.
공교롭게도 오정세의 지난했던 29년의 무·유명 필모그래피는 관객들로 하여금 세상의 모든 유수 희극인들을 플래시백마냥 소환하게 한다. 가령 희비극을 동시에 오가는 묵직함과 별개로 군중에겐 늘 비범한 웃음을 선사했던 코미디언 찰리 채플린(1889-1977)은 어떤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그 위인의 명언에는 처참한 세계의 핍진성 속, 타인에게 헬륨 풍선마냥 우스꽝스러운 재미를 선물하는 코미디 장르가 얼마나 고난도인지를 알게 하는 인생의 무게가 녹아있었다. 그러니 오늘의 오정세는 그런 찰리 채플린의 현신(現身)이라 말해두기로 하자.
[티브이데일리 이기은 기자 news@tv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