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한서율 기자] 매 순간 흔들리고 불완전한 인간의 내면을 깊은 고뇌의 시간을 거쳐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단순한 모방이 아닌 살아있는 한 인물을 표현하려던 그의 노력은 결국 시청자의 마음을 울렸다. 배우 박해수의 이야기다.
지난달 26일 종영한 ENA 월화드라마 ‘허수아비’(극본 이지현·연출 박준우)는 30년 전 종결된 연쇄살인 사건의 진실을 좇는 형사 강태주와 성공을 위해 사건을 실체를 덮으려는 검사 차시영(이희준)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이 가운데 박해수는 강태주를 맡아 섬세한 연기를 펼쳤다.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허수아비’는 무거운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의 뜨거운 찬사를 받았다. 시청률 8.1%라는 높은 성적 거둔 박해수는 “이렇게까지 예상을 못 했는데 많이 사랑해 주셔서 깜짝 놀랐다”라며 “오랜만에 드라마를 하다 보니 시청률 추이는 잘 몰랐는데 기분 좋은 반응을 얻게 돼 감사하다. 마스크를 쓰고 동네 쇼핑몰을 돌아다녀도 다들 알아봐 주시더라”라고 말했다.
작품을 흥행 궤도에 올려놓은 주역이지만, 사실 박해수는 처음 대본을 마주하고 큰 부담감과 두려움을 느껴 출연을 망설였다고 고백했다. 박해수는 “태주라는 역할이 내가 가진 역량보다 그릇이 크고 삶의 고통이 너무나 깊지 않나”라며 “하지만 감독님과 작가님의 명확한 기획의도를 듣고 도전의식이 피어올랐고 이희준 형님을 비롯해 신뢰하는 배우들이 대거 합류한다는 소식에 큰 힘을 얻어 용기를 낼 수 있었다”라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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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해수 |
어렵게 용기를 내 작품에 뛰어든 만큼, 캐릭터를 구축해 나가는 과정은 정교했다. 그는 시대적 배경을 현실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같은 사건으로 모티브로 한 작품을 이정표로 삼았다. 박해수는 “영화 ‘살인의 추억’ 속 선배의 연기를 적극적으로 참고하며 그 시대 특유의 둔탁한 에너지를 가져오고 싶었다”라며 “선배의 연기와 비교될 것 같다는 부담감을 의식하기보다 실제 존재했던 사건의 무게감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했다”라고 강조했다.
다만 박해수는 기존 작품의 연기를 참고하되 새로운 인물을 만들고자 했다. “일반적으로 극에서 볼 수 있는 형사의 모습을 흉내 내지 않으려 했다”던 박해수가 정의한 강태주는 범인을 백전백승 잡아내는 영웅이 아닌 미성숙한 존재였다. 그는 “강태주가 왜 이런 행동과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는지 그 시대의 공기와 인물의 내면을 온전히 이해하려고 애썼다”라고 밝혔다.
인물의 불완전함과 실수의 과정들을 날것 그대로 표현하며 강태주의 서사를 설득해 낸 박해수. 그는 “연기를 할 때 무언가를 보여주려는 ‘척’이 아닌 진짜 그 인물로 ‘존재’하려고 했다. 당시의 과학기술로는 수사가 어려워 실제 형사들이 헛발을 차기도 했던 것처럼 강태주 역시 확신이라 믿고 거칠게 밀어붙일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진정성 있게 그리고 싶었다”라고 짚었다.
사건을 완벽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답답하게 애쓰는 모습은 오히려 그 시절을 살아낸 이들에게 묘한 공감과 먹먹한 위로를 안겼다. 실제 가족들의 반응을 전한 박해수는 “주변에서 그 서글픈 시대를 통과해 온 청년들의 안타까운 삶에 깊은 위로를 받았다고 하시더라”라며 “당시 청년들의 아픔을 이야기할 때면 저 역시 가슴 한구석이 아려온다”라고 진한 여운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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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해수 |
장기 미제 사건의 진범이 뒤늦게 밝혀졌을 때의 허탈함처럼, 드라마 또한 통쾌한 정의 구현 대신 씁쓸한 현실을 비추며 종영했다. 박해수는 작품이 가진 서사의 힘을 온전히 믿었기에, 작품의 결말 또한 확신을 갖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사건들이 시원하게 해결되면서 끝맺지 못하더라도 좋았다. 문제를 문제로 남겨두는 결말이 시청자들에게 정서적으로 더 큰 감정적 울림을 줄 것이라 확신했고 실제로도 매우 만족스러운 마무리였다”라고 의견을 피력했다.
작품에 깊게 녹아들었던 만큼 종영 후에도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강태주의 서글픈 잔상이 여전히 뜨겁게 남아있는 듯 보였다. 박해수는 “만약 제가 강태주를 길 위에서 마주한다면 아무 말 없이 정말 꽉 안아주고 싶다”라며 “‘외로울 자격이 있다’고 스스로 위안하며 덤덤히 고통을 감내하고 살았을 태주가 한층 정서적으로 건강해졌기를 간절히 바란다”라고 빌었다.
끝으로 그는 시간이 흘러 작품의 강렬한 여운은 조금씩 휘발되겠지만 강태주가 남긴 삶의 진정성만큼은 가슴속에 간직해두고 싶다고 전했다. 박해수는 “방송을 보면 당시 나눴던 대화와 감정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라며 “이제 태주를 아름답게 보내줘야 하지만,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던 그의 용기 있는 모습은 영원히 잊지 않고 품고 가겠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티브이데일리 한서율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BH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