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원' 논리를 넘어선 감정의 힘, 최우식이 부리는 공감의 마법 [씨네뷰]
2026. 02.10(화) 08:00
넘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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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엄마의 음식을 먹을수록 엄마의 수명이 줄어든다. 이 허무맹랑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게 하는 이 숫자가 하민(최우식)을 내내 옥죄었다. 피하고, 또 피해 세상에 하나 남은 가족인 엄마 은실(장혜진) 지키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단순 무식하게 엄마와의 만남을 극단적으로 회피하며 산 지도 어언 10년이 훌쩍 넘었다. 그동안 하민과 엄마 은실 사이에 사로가 모르는 시간들이 쌓였다. 그렇지만 엄마 은실을 살리기 위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버텼던 하민은 감당하지 못할 시련과 마주하게 된다. 하민은 그 시련을 이겨내고, 인생의 절반을 괴롭게 만든 그 숫자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11일 개봉되는 영화 ‘넘버원’(감독 김태용)는 우와노 소라의 일본 소설 ‘당신이 어머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는 앞으로 328번 남았습니다’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김태용 감독과 배우 최우식이 영화 ‘거인’ 이후 10년 만에 재회한 작품으로, 배우 장혜진 공승연 등이 합류해 기대를 모았다.

사실 시놉시스를 처음 접했을 때, 관객은 필연적으로 단순한 논리적 의문에 봉착하게 된다. 숫자가 줄어드는 것이 엄마의 죽음을 앞당기는 길이라면, 그저 엄마의 밥을 먹지 않으면 해결될 일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다. 영화 초반부, 하민이 본가에 발길을 끊고 엄마의 전화를 피하는 일련의 행동들은 이러한 관객의 일차원적인 의문을 대변하는 듯 보인다. 이때까지만 해도 영화는 설정의 빈틈을 메우지 못한 채 다소 헐거운 판타지 드라마처럼 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는 중반부 하민의 한마디를 기점으로 이 모든 논리적 잣대를 감정의 영역으로 단숨에 전복시킨다. 자신의 말을 믿지 못하는 여자친구 려은(공승연)을 향해 뱉은 “안 믿었구나”라는 하민의 대사는, 그가 짊어져 온 고독의 무게를 증명하는 결정적인 장면이다. 남들에게는 허무맹랑한 판타지로 치부될 그 숫자가, 하민에게는 엄마를 살려야 한다는 절박한 실체였음이 드러나는 순간, 관객은 그가 감내했을 외로운 사투에 비로소 몰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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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점부터 하민과 은실의 이야기는 더 이상 판타지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 누구나 누군가의 자식이라는 보편적 명제 아래, 영화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 존재하는 미묘한 부채감과 사랑을 건드린다. ‘엄마의 밥’이라는 매개체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자식을 향한 엄마의 생명력이자 사랑의 총량으로 치환된다. 그렇기에 그 밥을 거부해야만 엄마를 살릴 수 있다는 아이러니는 관객의 마음에 묵직한 파동을 일으킨다.

김태용 감독의 노련한 완급 조절 또한 빛을 발한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소재와 모성이라는 신파적인 요소를 다루면서도, 영화는 결코 감정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지 않는다. 자칫 분위기가 지나치게 침잠하려 할 때마다 감독은 특유의 유머러스한 터치로 공기를 환기시킨다. 이러한 리듬감은 관객이 감정적 피로감을 느끼지 않고 끝까지 인물들의 서사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훌륭한 안전장치로 작용한다.

배우들의 호연은 이 판타지에 현실의 숨결을 불어넣는다. 최우식은 하민이라는 인물이 겪는 혼란과 절박함을 섬세한 감정선으로 표현해 감정 이입을 불러일으킨다. 자칫 작위적으로 보일 수 있는 설정조차 설득력 있게 만드는 것은 온전히 최우식의 얼굴이 가진 힘이다. 그는 말도 안 되는 상황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하민의 내면을 디테일하게 포착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기꺼이 그 판타지를 믿게 만든다.

은실 역의 장혜진은 영화 ‘기생충’ 이후 최우식과 다시 한번 모자로 호흡을 맞추며 검증된 케미스트리를 보여준다. 남편과 큰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아픔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은실을 연기하며, 장혜진은 단순히 희생적인 엄마를 넘어 입체적인 여성의 서사를 완성한다. 특히 하민과 감정을 쏟아내는 장면에서 보여준 절절한 연기는 스크린을 넘어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공승연이 분한 려은은 이 영화에서 감독의 시선을 대변하는 흥미로운 캐릭터다. 하민과 은실 사이를 연결하며 상처 입은 이들을 어루만지는 려은의 존재는, 관객이 이 모자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맞닿아 있다. 판타지로 시작해 가장 현실적인 위로로 끝맺음하는 ‘넘버원’은, 결국 우리가 잊고 지냈던 소중한 것들의 ‘유효기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수작이다.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영화 '넘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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