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감독 교체와 캐스팅 번복이라는 난항 속에서도 배우 김고은은 흔들리지 않았다. 잡음 보다는 작품 하나만 보고 도전했다. 누군가의 후순위였다는 항간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늘 그랬듯이 최선의 연기로 ‘자백의 대가’를 완성한 김고은이다.
지난 5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자백의 대가’(연출 이정효)는 남편을 죽인 용의자로 몰린 윤수(전도연)와 마녀로 불리는 의문의 인물 모은(김고은), 비밀 많은 두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미스터리 스릴러로, 김고은은 극 중 모은을 연기했다.
업계에서는 그런 말이 있다. 캐스팅 과정에서 어떤 배우에게 대본이 들어갔는지 철저히 비밀에 부쳐야 한다. 왜냐하면 누군가에게 갔다가 거절당한 대본이란 걸 알면, 더군다나 자기가 1순위가 아니라 후순위라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 배우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비밀이 깨지고, 자기가 후순위였다는 걸 알고 캐스팅을 거절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런 의미에서 ‘자백의 대가’는 모든 과정들이 신기했다. 캐스팅도 한 번 엎어지고, 심지어 감독도 2명이나 하차했다. 그럼에도 무사히 캐스팅을 다시 꾸리고, 제작까지 끝내서 대본이 얼마나 재밌길래 제작이 되나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서 김고은에게 물었다. 이런저런 상황들에도 불구하고 ‘자백의 대가’를 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김고은의 답은 간단했다. 기획 단계에서 우연히 모니터링차 대본을 읽어봤는데 캐릭터가 새로웠고, 매력적이었단다. 무엇보다 배우의 꿈을 갖게 해 준 선배 배우인 전도연이 한다니 무조건 하겠다고 오히려 매달렸단다.
김고은에게 캐스팅 후순위든 뭐든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김고은은 “저는 아무렇지 않았다. 진행 과정이 언론에 보도가 됐다가 엎어진 케이스이기 때문에 크게 느끼는 것 같다. 여러 상황이 안 맞다 보면 그렇게 되는 경우가 있다”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출연을 결정하고 다시 대본을 읽었을 때, 김고은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읽었다. 그러나 한 가지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초반부에 모은은 사이코패스처럼 그려지지만, 후반부의 과거 서사가 밝혀지면서 그 이유가 드러난다. 그렇다면 사이코패스가 아닌 모은이 혼자 있는 장면에서는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할지 김고은에게는 난제였다. 사이코패스처럼 연기했는데, 나중에는 아니라고 하면 배우 스스로도 개연성이 없다고 느껴지는데 시청자들이라고 모를까 싶었단다.
김고은은 이정효 감독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모은은 가만히 있는데, 사람들이 사이코패스라고 오해하는 방향으로 가길 원한다고 했단다. 김고은은 “모은이가 감정이 고장 나 버린 사람으로 가면 어떻겠냐고 말씀드렸다. 모은이의 서사가 분명히 있다고 하니, 그 서사와 개연성이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다”라고 했다.
모은을 사이코패스로 생각하지 않았다. 감당할 수 없는 비극을 겪고, 감정이 고장 나 버린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했다. 김고은은 “모은이가 무섭게 생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힘이 세거나 이런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왜 무서워야 할까 생각해 봤을 때에는 그냥 잃을 게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판사든 검사든 대중들이 압박하고 공격을 해도 압박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연기를 했다”라고 했다.
모은에 대해 파고들고 또 파고든 끝에 김고은이 내린 결론은 감정이 고장 나 버린 사람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삭발 헤어를 생각했단다. 김고은은 “보통 이런 결의 인물을 연상해 봤을 때 머리카락 사이로 눈빛이 보이는 그림이지만, 저는 오히려 머리카락 없이 얼굴이 다 보이는데도 그 속을 모르겠는 인물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라고 했다. 그래서 이정효 감독에게 직접 삭발을 제안했단다.
모은의 방향성뿐만 아니라 비주얼까지 직접 제안을 했지만, 받아들이는 건 결국 이정효 감독의 몫이다. 연출자가 그 제안을 수락하지 않는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그렇지만 이정효 감독은 기꺼이 김고은의 제안들을 믿고 받아들였다. 김고은은 이정효 감독 덕분에 자신이 생각한 대로 모은을 만들어나갈 수 있었다.
김고은이 자신의 생각대로 연기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이정효 감독뿐만 아니라 전도연도 큰 몫을 했다. 모은을 가장 잘 알고 이런저런 제안을 했지만, 때로는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이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고 했다. 처음 시도하는 것들도 많아 고민하고 있던 김고은에게 전도연이 “톤 잘 잡았고, 잘 가고 있다”라고 했단다.
특히 모은이 큰 비극을 겪는 태국 촬영 분량은 김고은이 가장 많은 고민을 한 부분이다. 사람이 어느 정도로 감정의 과부하를 겪어야 마치 고장 난 듯이 폭발할 수 있을까 고심했단다. 고민 끝에 김고은은 모은이 동생과 부친의 부고 소식에도 코로나로 인해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을 더욱 고통스럽게 그리고 싶었다. 마치 철창에 갇힌 듯 격리 장소의 철문을 붙잡고 울부짖는 모습을 통해 모은이 얼마나 감정의 과부하를 겪고 있는지 표현하고 싶었단다.
전도연은 그런 김고은에게 “그 표현을 어떻게 할 건지 궁금했는데, 너무 잘했다”면서 신난 목소리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롤모델인 선배 배우에게 그런 칭찬을 듣다니, 김고은이 ‘자백의 대가’를 촬영하며 행복했던 기억 중 하나였다.
지난해 영화 ‘파묘’를 시작으로 ‘대도시의 사랑법’, 그리고 올해 넷플릭스 시리즈 ‘은 중과 상연’ ‘자백의 대가’까지, 연달아 네 개의 작품을 선보이며 김고은은 그야말로 배우로서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대중의 사랑도 잡고, 작품의 완성도도 잡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데 김고은인 작년에 이어 올해도 배우로서 최고의 ‘폼’을 보여주고 있다.
김고은은 “작년이랑 올해 네 작품이 연달아서 좋은 평가를 받고 연기적으로 칭찬을 받고 있는 것이 저에게는 기적 같은 느낌이 든다”라고 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아무도 몰라주고, 흥행도 안 따라 준 적도 많았다. 그럼에도 쉼 없이 달려온 자신에게 그동안 열심히 했다는 의미로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려고 하고 있단다.
물론 김고은의 지금은 하루 이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매 작품마다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김고은은 그때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해왔다면서 앞으로도 그 태도는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했다. 최선의 최선이 계속될 김고은의 행보를 아낌없이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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