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쿤의 엉뚱한 ‘기적의 논리’에 관하여 [윤지혜의 대중탐구영역]
2025. 03.05(수)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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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이런 이야기가 있다. 인류 문명의 발전은 인류가 발전했다기보다 도구가 발전한 것일 뿐이어서 오늘의 인류가 가진 인간으로서의 생존 능력은 고대의 인류에 비해 현저히 떨어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내일 아침이라도, 오늘 인류의 손에 쥐어진 온갖 도구와 과학기술이 모조리 사라져 버린다면, 오늘의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생각보다 훨씬 적다고.

예를 들어 어느 것을 통해서도 지도를 볼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단 가정 하나만 해보아도,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한 채 제 자리에 서 있을, 우리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긴 어렵지 않으리라. 하지만 사실, 할 수 있는 게 생각보다 훨씬 적어 난관에 빠졌다고 느낄 따름이지, 그렇게 타이밍이 좀 지체될 따름이지, 아마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그간 도구에 가려져 제대로 발휘해 보지 못한 제 능력을 있는 힘껏 끌어올려 목적지를 향해 한발 두발 나아갈 게 분명한 존재가 또 인간이다.

래퍼 코드 쿤스트(이하 ‘코쿤’)가 MBC ‘나 혼자 산다’에서, 혼자 사는 삶을 위해 필요한 생활력을 키워보겠다며 마련한 에피소드들이 더없이 흥미롭다. 물어본 레시피대로 음식을 만들어 먹어 보고, 옷방의 7년 된 행거를 직접 교체해 보고, 남아도는 더스트백들을 연결하여 수납함으로 만들고자 재봉틀을 돌려 본다. 결과는 딱 처음 시도해 본 만큼 나왔다.

아니, 행거를 교체하는 건에 관해서는 누군가의 시선에선 완전히 실패라 할 수 있겠다. 설명서가 있는데도 보지 않고 자신의 직관대로 행거를 설치했다가 부품 몇 개를 빠뜨리는 바람에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 코쿤이 설명서를 보지 않은 이유는 단순했다. 설명서를 보고 하면, 제 것이, 제 능력이 되지 못한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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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지금은 비록, 설명서를 참고하지 않아 ‘멍청한’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으나 이를 발판 삼아 다음에 시도해 볼 때는 누구보다 능숙하게 해낼 테니 오늘의 ‘멍청함’은 내일의 ‘똑똑함’을 만들어낼 과정에 불과하다는 이야기. 조금은 느리고, 실수로 인해 불필요한 반복을 하게 되는 수가 있어도, 이마저도 한 단계 성장하는 행위의 일환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고 할까.

코쿤만의, 엉뚱해서 실소가 터져 나오는 논리임은 분명했다. 문제는, 따지고 보면 효율성, 가성비 등등 많은 것들이 떨어질 이 논리가, 묘하게 어떤 기적의 논리처럼 설득력을 발휘하는 지점이 있었다는 데 있다. 다름 아닌 실수나 실패에 좌절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그대로 두지 않는다는 것, 모든 경험을 배움을 위해 필요한 과정으로 해석한다는 것.

그러다 보니 우리는 어느새 그의 말마따나, 많은 것을 제 능력으로 삼은 코쿤이 자신의 어머니 나이쯤 되어 생활의 모든 기능을 섭렵한 상태, 즉 ‘코주부’의 경지에 올라와 있을 모습을 상상하고 있다. 결국 우리의, 인간의 삶에 있어, 해당 에피소드에 붙은 제목이기도 한 ‘오늘도 레벨 업’을 이루어내느냐 이루어내지 못하느냐는 설명서를 보았는지 보지 않았는지, 다시 말해 어떤 도구를 가졌는지, 어떤 환경에 처했는지에 달린 게 아니었다. 태도와 의지의 문제로, 코쿤적 사고가 생뚱맞게 하나의 기적의 논리처럼 다가온 이유이겠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니스트 etvidet@naver.com, 사진 = MBC ‘나 혼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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