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김종은 기자] 하루하루 계산을 해오며 달려온 건 아니었지만 앞만 보며 달리다 보니 어느새 10년, 20년을 지나 데뷔 30주년을 맞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연기를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끝나는 날까지 멋진 배우로 남고 싶다는 송승헌이다.

오는 20일 개봉하는 '히든 페이스'(감독 김대우)는 지휘자 성진(송승헌)의 아내이자 첼리스트 수연(조여정)이 어느 날 영상 편지만을 남겨둔 채 자취를 감추고, 그를 대신해 또 다른 첼리스트 미주(박지현)가 등장하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 '음란서생' '방자전' '인간중독' 등을 연출한 김대우 감독의 신작이다.

김 감독은 인간의 본능과 욕망을 파격적이면서도 관능적인 소재와 함께 매끄럽게 녹여내는 스타일로 유명한 감독이다. 오죽하면 '에로티시즘의 대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어 다닐 정도. 그렇기에 김 감독의 매 작품에선 '노출'이 빠질 수 없는 키워드로 꼽히곤 한다.

송승헌과 김 감독의 만남은 '인간중독' 이후 10년 만이자 이번이 두 번째. 노출이라는 큰 숙제가 있었음에도 그의 작업물에 익숙할 송승헌이 다시 한번 김 감독의 손을 잡은 이유가 무엇일까.

송승헌은 "'인간중독'을 촬영할 당시 노출보단 불륜이라는 설정이 내겐 더 도전적이었다. 이전엔 정의로운 멋있는 캐릭터만 맡았다면 '인간중독'을 기점으로 좀 더 다양한 작품에 도전할 수 있게 됐고, 연기적으로도 너무나 재밌었다. 내겐 전환점과도 같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라며 10년 전의 좋은 기억을 바탕으로 다시 한번 김 감독과 호흡을 맞추게 됐다 설명했다.

이어 "정형화된 캐릭터가 아닌 틀에서 벗어난 캐릭터를 했을 때 카타르시스와 재미를 느끼곤 하는데, '인간중독'의 진평과 '히든 페이스'의 성진이 내 기준에선 그런 캐릭터였다. '인간중독'을 촬영할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멜로만 찍어왔을까' '왜 한쪽에만 치우친 캐릭터만 했을까'라는. 그 정도로 했던 캐릭터만 연기해왔는데, 그러다 이런 비도덕적이고 속물적인 캐릭터를 연기하니 무척 재밌더라. 또 '송승헌이 이런 캐릭터도 어울리네' 이런 반응을 받는 게 좋기도 했다. 앞으로도 계속해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고, '히든 페이스'가 또 다른 포인트가 될 수 있길 바란다"라고 솔직하게 밝혔다.


다만 아무리 김대우 감독과의 지난 인연이 인상 깊었다고 해도 이런 파격적인 노출은 남자 배우인 송승헌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을 터. 송승헌은 "감독님을 믿고 출연을 결심했고, 촬영 역시 감독님이었기에 부담감이 덜했다"라며 "배우들이 감독님을 믿고 따를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디테일하고 정확하다는 점이다. 노출이 필요한 신에선 특히나 그렇다. '큐'하고 알아서 하게 놔두기보단 정확히 어떻게, 얼마나 찍을지 말씀해 주신다. 심지어 조감독님과 직접 시범을 선보이며 자세를 알려주기도 했다. 콘티가 되게 정확하시고 애드리브 같은 것도 없다. 덕분에 찍을 때도 늘 신뢰가 있고 부담이 없다"라고 김 감독을 향한 두터운 신뢰를 드러냈다.

함께 베드신 호흡을 맞춘 박지현에 대해선 "'인간중독' 때 임지연 씨도 그랬지만, 여자 배우들이 오히려 더 긴장을 안 하는 편이다. 박지현 씨도 마찬가지였다. 되게 프로다운 모습에 내색은 안 했지만 촬영을 앞두고 매우 놀랐던 기억이 있다. 촬영장에서 프로답게, 나보다 더 활발하고 멋지게 연기를 준비해 오는 모습에 놀랐다. 나보다 낫다는 생각을 하며 촬영에 임했던 기억이 있다"라고 전했다.


파격적인 노출에 도전할 정도로 여전히 완벽한 몸매와 비주얼, 한계 없는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는 송승헌이지만 그도 어느새 데뷔 30주년, 나이로는 쉰을 앞두고 있었다.

"뿌듯하기보단 깜짝 놀랐다"라고 30주년에 대한 소회를 밝힌 송승헌은 "시간이 정말 빨리 간다 싶다. 데뷔 초, 선배들이 20대인 날 보며 '좋을 때다'라고 할 땐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이제야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다. 나도 요즘 어린 후배를 보면 그런 얘기를 하곤 한다"라며 부끄러운 미소를 지었다.

"20대의 저는 잘 즐기지 못했던 것 같아요. 데뷔를 하고 '가을동화' 등의 작품을 통해 많은 사랑을 받고 여기저기서 환호를 해주곤 했지만, 그걸 즐기지 못했어요. '감사합니다'라고 답하면서도 날 왜 좋아해 주실까 싶었어요. 그땐 그저 일이라고만 생각하고 연기를 했던 것 같아요."

그런 송승헌에 최근의 가장 큰 고민이 무엇이냐 묻자 "20대, 30대 땐 내가 언제까지 연기를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던 반면, 지금은 멋지게 나이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지금 가장 존경하고 배우고 싶은 분은 이순재 선배님이다. 그 연배까지 왕성하게 활동하시는 게 정말 대단하게 느껴지고, 나도 그런 선배님의 길을 걷고 싶은 마음이다. 나이 대에 맞는 역할을 하면서 멋지게 나이 들어가고 싶다"라고 답했다.

이어 "사회생활을 연기로 시작했고 지금까지 하게 됐는데, 어느새 내겐 너무나 일상적인 일이 되어버렸다. 그럴수록 하루하루 나만의 행복을 찾고 욕심을 내려놓으려 하고 있다"라는 그는 "최근에 친한 분이 너무나 젊은 나이에 모든 걸 남겨두고 돌아가신 일이 있었는데, 그런 일들을 겪다 보니 내가 하는 일들이 너무나 허무하게 느껴지더라. 뭐 하나를 붙잡고 욕심을 내며 아등바등 사는 것보단 내 앞에 놓인 일에 집중하고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보내려 노력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티브이데일리 김종은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스튜디오앤뉴, 쏠레어파트너스, N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