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김지하 기자] “20년 했습니다.”

그룹 페퍼톤스(신재평, 이장원)가 인터뷰 자리에서 꺼낸 첫 마디다. 지난 2004년 3월, 가요계에 정식 데뷔한 이들은 올해로 활동 20주년을 맞았다.

“시간이 참 빨리 간 것 같단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들이 20년을 콕 짚어놓고 ‘여길 가야지’ 하며 온 것은 아닌데 매년 할 일들을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 숫자가 앞자리가 바뀌고 하니 기념을 하고 갈까 싶어 음반과 다양한 것들을 기획하게 됐다. 조금 쑥스런 기분도 들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축하를 받고 있다.”(신재평)

“10년 때는 지금보단 많이 민망했던 것 같다. 공연을 하자 말자, 공연 제목에는 10주년을 쓸가 말까를 가지고 굉장히 논의를 많이 했던 기억이 있다. 20년이 되니 약간 그때에 비해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더 생기는 것 같다. 20년 된 우리 홈페이지가 있는데 거기에 우리가 데뷔할 당시부터 신스(since) 2003, 2004 이렇게 적어뒀다. 그때는 이렇게 20년이 쌓일 것을 예상은 못했다. 바람은 있었지만. 이제는 조금 오래된 맛집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때에 비해선 덜 민망하게 20년을 했다고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이장원)

기념 앨범 ‘투웬티 플렌티’(Twenty Plenty)를 발매하며 인터뷰 자리를 마련한 이유는 ‘자랑’하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이들의 20년은 자랑할만한 시간이었다.

카이스트 전산학과 99학번으로 만난 동갑내기 두 사람은 우여곡절 끝 팀이 됐다. 두 사람에 따르면 음악을 같이 들었고, 좋아하는 취향은 비슷했지만, 음악을 같이 하진 않았던 사이였다.

대학교 3학년 쯤, 졸업이 다가오며 꾸렸던 밴드가 흐지부지됐을 때 신재평이 먼저 이장원에게 손을 내밀며 두 사람은 팀이 됐다. 신재평은 “장원이랑 같이 하면 유쾌할 것 같단 생각에 자꾸 꼬셨고 그러다가 여기까지 하게 됐다”라며 웃었다.

하드록, 포크록 장르의 음악을 하는 동아리에 몸담았었지만, 두 사람이 팀을 시작하며 선택한 장르는 시부야케이 스타일의 음악이었다. 일렉트로닉 음악을 골격으로 보사노바, 힙합 등의 장르가 혼합된 이 장르의 음악으로 가요계에 발을 들였다.

이장원은 “동아리 활동을 하던 것과 같이 모여서 음악을 듣던 것에는 차이가 있었다. 동아리는 동아리고 우리가 추구하고 좋아하던 것은 당시에 애니메이션 주제가나 시부야케이 등 듣기 쉽지 않은 음악들이었다. ‘이 CD 어떻게 구했어?’ 하던 때라 어디서든 그런 음악을 구해올 수 있다면 얼른 들고 와서 같이 듣자고 하며 돌려 들었다. 좋아하던 것이었기 때문, 팀을 결성했을 때 어떤 음악을 해야 할지는 자명했다”라고 떠올렸다.

시작부터 성공적이었다. 인디레이블 카바레사운드를 통해 내놓은 이들의 첫 미니앨범 ‘어 프리뷰’는 인디 신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정규 1집 ‘컬러풀 익스프레스’(2005), 정규 2집 ‘뉴 스탠더드’(2008) 등부터는 사실상 주류에 편입됐단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인기는 이들에게 뒷배를 마련해줬다.

2008년 유희열, 정재형 등이 속한 안테나 뮤직과 계약을 체결했고, 이듬해 발매한 정규 3집 ‘사운즈 굿!’부터 20주년 기념 앨범까지 16년 동안 안테나 소속 뮤지션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해왔다.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댄스 일렉트로닉 싱글부문상(2007)을 비롯해 ‘뷰티풀 민트 라이프’ 최고의 공연상(2012), 브랜드 고객충성도 대상 밴드 부문(2023) 등 곳곳에서 이들의 음악과 무대를 인정했다.



‘투웬티 플렌티’는 이들이 데뷔 후 20년 동안 보낸 시간을 총망라한 앨범이다. A사이드(Side) ‘서프라이즈(SURPRISE)!!’와 B사이드 ‘<<리와인드(REWIND)’ 두 장의 CD로 구성돼 있다.

‘서프라이즈!!’는 수민 ‘계절의 끝’, 잔나비 ‘행운을 빌어요’, 루시 ‘레디, 겟, 셋, 고!’, 이진아·멜로망스 정동환 ‘공원여행’ 등으로 구성돼 있는데 후배 뮤지션들이 완성했다. 페퍼톤스의 음악을 들으며 꿈을 키워온 이들이 흔쾌히 참여해, 기존 노래들을 각자의 색깔로 리메이크했다. 나상현씨밴드, 웨이브 투 어스, 유다빈밴드, 드래곤 포니, 스텔라장, 권순관(노리플라이) 등도 참여했다.

‘<<리와인드’는 페퍼톤스가 음악을 시작할 때부터 작업해 외장하드에 담아뒀지만, 그동안 소개하지 못했던 곡들의 재발견으로 이뤄졌다. 오래된 카세트 테이프를 되감는 듯한 콘셉트이기 때문 ‘리와인드’란 이름을 붙였다고 했다. 타이틀곡으로 선정된 ‘라이더스’는 페퍼톤스의 지난 시간, 앞으로의 시간을 잇는 트랙이다.

신재평은 “지난해 본격적으로 앨범 기획을 시작하게 됐다. ‘20주년이니까 20곡을 만들어볼까요’ 했다. 어떻게 하지 했는데 안테나에서 ‘안테나는 음악을 기획하고 음반을 기획하는 회사지만 페퍼톤스의 곡을 대신 써줄 수는 없다. 하지만 이정돈 해줄 수 있을 것 같다’라고 해서 리메이크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 들었을 때는 너무 좋을 것 같다고 했는데, 사실 그런 것은 헌정 음반처럼 레전드들이 받는 게 아닌가 했다. 우린 대단한 팀이 아닌데 그런 걸 받을 수 있을까 했지만 한 번 해보자고 했다”라고 말했다.

신재평에 따르면 안테나에서 참여 팀들을 미리 공유해줬다. 그는 듣자마자 ‘다들 바쁘고 본인들 음악을 하느라 바쁜 시기에 있는 팀들인데 되면 좋겠지만 가능할까요’라며 반신반의했다고. 후에 회사로부터 “연락을 해봤는데 흔쾌히 이 프로젝트에 동참을 해주기로 하셨단 이야기를 듣고 감격이었다”라고 떠올린 그는 “우리들은 잘 몰랐지만 그들이 우리 공연도 오고, 음악도 들어왔다며 애정을 갖고 같이 함께 해주셨다. 마치 우리들이 지금까지 해온 일들이 작은 영향들을 끼쳐서 우리에게 다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보람된 기분이 들었다”라고 덧붙였다.

B 사이드의 10곡을 준비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고 했다. 그는 “요즘엔 음반을 만들어도 열 몇 곡씩 안 만든다. 6집과 7집은 7~8곡을 넣고 그랬다”라면서도 “전부터 밴드를 하면서 세운 버킷리스트 같은 게 있었다. B 사이드 모음집”이라며 “비틀즈나 라디오헤드 등 거장들이 그런 앨범을 내면 재미있단 생각을 해왔다. 그런 걸 해보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이번 기회에 하면 맞아떨어지겠구나 생각해서 이번에 하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곡들과 경쟁에서 진 패자부활전 같은 앨범이 됐다. 서로의 외장하드를 공유하며 습작 중 고르고 하는 작업들을 했다. 남다른 감회를 갖고 상당 기간 이 작업을 했다. 10곡을 추리고 바꿨다가 또 다른 곡으로 바꿨다가 하면서 결정한 후 노래를 다듬었다. 그것만으론 앨범 한 장을 온전히 청자들에게 들려주기 아쉬운 점이 있어서 가장 최근에 쓴 곡들을 함께 버무려서 B 사이드 앨범을 만들게 됐다”라고 덧붙였다.



지난 20년을 돌아보고, 다가올 20년에 기약하는 음반을 내놨지만 두 사람에게 ‘페퍼톤스의 음악’을 정의하는 것은 아직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이장원은 “영원한 논쟁 거리”라며 고민에 잠겼다.

“긴 시간을 하나로 압축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시작은 약간 다른 취향을 가진 둘이 만나 하나로 의기투합해 음악적 방향과 공통된 취향을 갖고 시작을 했던 거다. 그 음악은 신나는 음악이었다. 신나는 음악을 만드는 게 우리의 하나의 목표였고, 그런 음악을 발표해 놓으니 사람들이 그 음악을 듣고 ‘페퍼톤스의 음악을 듣고는 마음이 가벼워졌다. 즐거워졌다’ 해주셔서 보람차다 생각했다. 그 다음엔 어떤 음악을 해볼까 하다가 여전히 유쾌하고 밝고 신나는 음악들을 만들어야겠다 했다. 그 안에서 조금씩 변화들은 있었다. 우리가 나이를 먹으면서 대중적인 음악을 해볼까 고민해본 적도 있다. 3집 이럴 때. 어느 순간에는 공연을 하면 참 좋더라. 공연을 해 소통하는 게 좋은 일인 것 같으니 밴드 포맷으로 틀어보자고 해서 ‘행운을 빌어요’ 같은 노래들을 만들고 활동했던 4, 5집 같은 시기들이 있었다. 그리고 또 그 이후에는 희망을 이야기하는데도 마냥 간단하게 ‘힘내자’라고 이야기 하기에는 우리 머리가 굵어진 것 같더라. 현실을 마음대로 할 수 있지 않고, 막연히 희망을 갖자고 하기에는 현실에 복잡하고 그렇지 않은 이야기도 있어 그 이야기를 섬세하게 풀어낼 필요도 있겠다 싶어서 음반에 하나의 이야극 담고 뒷맛으로 그런 긍정적인 기분을 갖게 하는 그런 음악들을 만들게 됐다. 또 코로나 시기에 겪은 감정들을 포기하지 말고 절망에 굴하지 않는 그런 이야기들로 승화시켜 만들어낸 음반도 나오게 됐다. 하지만 우리가 계속 지켜왔던 것은 낙관적인 이야기, 희망을 잃지 말자란 이야기들이었던 것 같다. 사실 우리도 차분하고 쳐지는 음악을 좋아한다. 그런 것도 사람을 위로한다는 걸 안다. 그런 걸 잘하시는 분이 있으니 우리는 우리가 처음에 시작했던 것, 사람들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을 하며 발전시켜 왔고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신재평)

“페퍼톤스답다란 이야기를 안 한지 오래된 것 같다. 2009년 3집 정도 때까지는 우리가 서로 데모를 들려주고 앨범을 꾸리고 하면서 ‘이거 페퍼톤스야?’ ‘이거 아닌데?’라는 말을 했다. 사실 우리들 사이에서도 정의되지 않은 말을 하는 거였다. 페퍼톤스가 뭔지 정확히 정의할 수 없기 때문, 우리 답냐 아니냐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나눴다. 요즘 들어서는 뻔한 대답이고 오글거릴 수 있지만 우리 둘이 머리를 짜내서 뭔가 나오면 ‘페퍼톤스다’라는 생각이 든다. 이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 재평이가 지난 앨범들에서 우리가 했던 굵직한 결정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줬지만, 이번 앨범도 그런 결에서 주제가 ‘우리’가 되는 것 같다. 우리가 만들었떤 노래가 새롭게 만들어지고, 우리의 지난날의 습작들, 최신곡까지 해서 이게 우리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우리’라는 것을 숨기려고 애써왔던 우리들이란 생각을 하면 우리한테 파격적이지만. 어떻게 보실지 모르겠다.”(이장원)



20년을 돌아보며, 두 사람은 다양한 순간들을 돌아봤다. 신재평은 클럽 투어는 클럽 투어대로, 야외 공연은 야외 공연대로 적막에서 노래를 시작할 때의 떨림, 설렘이 제각각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고 했고, 이장원은 데뷔 앨범을 내고 대전에서 신재평을 만나 놀다가 편의점에서 페퍼톤스의 노래가 들리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진부할 수 있지만, 목표도 짚어봤다. 이장원은 “우리는 천천히 차근차근 쌓아올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굉장히 튼실하게 지어지고 있는 집이란 생각이 드는데 우리도 그렇고 우리 음악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도 그렇고 그 우상향적인, 건설적인 게 유지가 될 수 있는 우리들이었으면 좋겠다. 여기에는 창작에 대한 부분뿐 아니라 요즘 우리가 많이 이야기하는 건강에 대한 부분도 있고, 신재평과 사이 좋게 지내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라며 “그냥 착실하게 계속 우리의 세계관을 넓혀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굉장히 작은 꿈 같으면서도 굉장히 큰 꿈이란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신재평은 “우리가 예전에 20대 때 이렇게 인터뷰하는 자리에서 꿈이 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환갑 잔치를 할 때 ‘뉴 히피 제너레이션’을 부르고 싶다’ ‘할아버지가 돼서도 이 노래를 계속 부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때는 전혀 실감을 못하고 한 이야기다.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해 실감을 못하고 있다. 우리 둘이 계속 변하지 않는 부분들을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단 생각이 있다. 작은 것들은 바뀌고 변화하고 새 모습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더라도 우리 둘이 나란히 서서 노래를 하고, 농담 따먹기를 하고, 누군가가 그때에도 여전히 그걸 보러 와주고, 음악을 들어주고 하는 것들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단 생각이다. 그게 여전히 꿈인 것 같다. 지금은 조금 그게 실감이 나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돼 조금 더 가까워진 꿈이 된 것 같다”라며 웃었다.

20주년을 맞아, 두 사람이 페퍼톤스의 음악사를 중간 결산해 내놓은 답은 ‘우리’ ‘둘’이었다. 40대 남자 둘이 나누기엔 낯간지러운 소리일 수 있지만 두 사람은 페퍼톤스란 틀 안에서 오래, 함께 음악을 하고 싶단 공통된 목표를 갖고 있었다. 그렇기에 페퍼톤스의 음악을 언제나처럼 진행형이다.

[티브이데일리 김지하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안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