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김종은 기자] 연예계에서 40년 넘게 자신만의 입지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배우 김갑수에게도 슬럼프와 번아웃은 있었다. 하지만 이 역시 연기를 향한 꺼지지 않는 열정으로 이겨냈단다. 힘든 시기를 끝없이 넘은 끝에 이젠 '사망 전문 배우'로서 N번째 전성기를 맞게 된 김갑수다.

tvN 토일드라마 '눈물의 여왕'(극본 박지은·연출 장영우, 김희원)에서 김갑수가 연기한 홍만대는 무일푼으로 오늘날의 퀸즈그룹을 만든 장본인이지만, 과하게 믿은 모슬희(이미숙)에게 배신을 당하게 되는 인물. 본인의 잘못된 선택으로 자식들은 집에서 쫓겨나게 되고, 결국 그는 이 족쇄를 풀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을 한다.

아쉽게 종영 전에 하차하며 '사망 전문 배우' 다운 행보를 보여준 김갑수는 "사실 10회 안에 죽을 예정이었는데 생각보다 길게 살아남았다"라는 농담을 건네며 "가끔 '또야? 결국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작품 속에서 죽음은 무척이나 중요한 요소라 생각한다. 작품 속에선 이 죽음이 어떤 일로 이어지기도 하고 중요한 계기가 되지도 않냐.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그렇기에 아쉽다거나 그런 마음은 없다"라고 말했다.

김갑수는 이번 홍만대의 죽음을 연기하며 이전과는 다른 감정을 느끼기도 했단다. "기존과 달리 감정적인 부분이 있었다"는 그는 "홍만대가 복도를 따라가 계단 앞에 멈춰 서서 거기서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 끝나는데, 사실 다른 작품에선 죽음이 이렇게 묘사되지 않는다. 화가 나 심장병으로 죽던가 어떤 충격으로 인해 사망하는데, 이번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점이 다르기도 했다. 인생의 회한을 느끼고 떠나가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라고 밝혔다.

이어 어떤 감정으로 연기했냐고 묻자 "연기하기 전부터 '왜 이런 선택을 해야 할까' '왜 그래야만 했을까'를 계속해 생각했던 것 같다. 어릴 적부터 구두를 닦으며 아무것도 없이 퀸즈그룹을 이룩한 홍만대가 결국 마지막으로 믿었던 사람마저 잃게 됐는데, 그때의 감정이 어떨까 생각을 많이 했다. 젊은 시절부터 비서처럼, 때론 연인처럼 자신을 잘 보좌한 모슬희가 그런 일을 벌였을 때 이걸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상상해 봤는데 어느 순간 그의 인생이 쭉 보이더라"라고 답하며 "아마 홍만대는 결국 모슬희를 미워하지 못했을 것 같다. 미움과 애정이 다 섞여 있을거라 생각한다. 아무리 배신당했다 하더라도 모슬희를 끊을 수 없는 사람이 바로 홍만대이지 않을까 싶다"라고 덧붙였다.

김갑수가 홍만대를 입체적으로 만들기 위해 한 시도는 또 있었다. 김갑수는 "난 항상 내가 연기하는 인물이 납작하지 않길 원한다. 늘 풍부해야 한다"라며 "아무리 회장이라 하더라도 늘 점잖고 격식 있을 필요는 없지 않냐. 중요한 결정을 앞뒀을 땐 물론 회장의 면모를 보여줘야 하지만, 굳이 밥 먹을 때까지 회장처럼 보일 필요는 없다 생각했다. 그래서 농담도 하고, 풍산개 안 판다고 했을 땐 삐친 척도 하면서 보다 인간적으로, 풍성하게 보이게끔 했다. 회장이라고 위치나 권위만을 지키고 싶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조금 아쉬운 건 해인(김지원)이와의 교감이 부족했던 부분 같다"라고 솔직히 전하면서 "사실 촬영 중반에 감독한테 얘기를 하기도 했는데, 이미 대본이 다 쓰여있던 터라 못 넣게 됐다. 그저 마지막 메시지를 남기는 게 전부였다. 물론 좋았지만 그런 사소한 부분이 연기자의 입장에선 조금 아쉬웠다"라고 말했다.


'눈물의 여왕'은 김갑수를 포함한 배우들의 호연과 예측할 수 없는 전개에 힘입어 화제성을 올킬, 현재 뜨거운 사랑을 받으며 tvN 역대 최고 시청률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가장 최근 방송된 14회의 경우 21.6%(닐슨코리아 유료 가구 기준)의 시청률을 기록했을 정도.

이런 대박을 예상했냐 물으니 "대본이 재미는 있었지만 사실 처음엔 이렇게 성공할 거란 확신은 없었다. 그러다 박지은 작가가 '사랑의 불시착'을 썼다는 얘길 듣고 깜짝 놀랐다. 아무래도 히트 작가인 만큼 이번에도 히트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라고 답하면서, "작가님이 참 재밌다. 부자 식구들이 다 시골로 내려가 살지 않냐. 그런 설정을 짠다는 게 참 신기하고 재밌었다. 사실 따지려고 보면 한없이 심각해질 수 있는 작품이지만, 작가님은 심각한데 심각하지 않게 잘 풀어내더라. 박지은 작가님과는 첫 작품인데 대사를 너무 잘 쓴다는 생각이 들었고, 상황 상황이 판타지스럽지만 현실이 발 아래에 깔려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면에서 신선하고 재밌었다"라고 작가의 필력에 대해 칭찬했다.

다만 이와는 별개로 '눈물의 여왕'은 재벌들이 고아원 출신들에게 너무 속수무책으로 당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에 대해선 "어떤 드라마건 이렇게 극단적으로 파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생각한다"라며 "개인적으론 작가님이 이런 재벌의 이야기보단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싶었다 생각한다. 가족과 부부의 이야기를 재밌게 그려내는 것, 거기에 초점을 맞췄다 본다. 어떤 부분에선 허술하다 생각될 수도 있지만 그보단 이런 상황을 어떻게 재밌게 그려냈는지, 사람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담으려 했는지를 봐주시면 좋을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처럼 김갑수는 오랜 연기 경력답게 섬세하고도 깊이 있게 캐릭터를 소화하는 데 성공, 40여 년 동안 늘 그래왔던 것처럼 완벽하게 본인의 역할을 다하고 작품에서 깔끔하게 물러났다. 어떤 작품이던 가리지 않고 신 스틸러로서, 또 든든한 조력자로서 작품을 탄탄하게 뒷받침하고 있는 김갑수. 그런 그에게도 고민이 있을까.

김갑수는 "내 장점이자 단점일 수 있는데, 확고한 이미지가 없다. 나쁜 역하면 나쁜 이미지가 생겨야 하고, 그 이미지로 한동안을 먹고 살아야 할 텐데 난 그런 게 없었다. 예전에 연극할 때나 영화를 찍을 때도 그랬다. 그래서 그런지 해보고 싶은 역할도 딱히 없는 것 같다. 이제와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버지나 할아버지, 회장님과 사장님 말고 또 뭐가 있겠냐. 그저 현장에서 재밌게 촬영하면서 죽는 역할이라도 임팩트를 남기는 연기를 하며 지내고 싶다"라고 털털하게 털어놨다.

이어 김갑수는 40년 넘게 연기를 해올 수 있던 원동력에 대해서도 "그냥 한거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밝히면서 "나도 연기를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었다. 아무래도 감정 노동이 심한 직업이다 보니 50대 초엔 연기를 이젠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한 신이 끝나면 혼자 구석에 가 앉아 있기도 했고, 과연 이걸 끝까지 해낼 수 있을까 회의가 들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겨내졌다. 역경을 뛰어넘었다기보단 세월이 가니 잊히더라. 그저 그럴 때가 있던 거였다. 시간이 지나니 흐릿해지고, 다음 작품을 만날 때면 또 '이걸 어떻게 연기해야 좋을까' 빠지게 됐다. 아마 연기자라면 다들 경험했을 거라 생각하는데, 그게 나만의 열정이자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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