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김지현 기자] 글로벌 OTT 기업 넷플릭스는 왜 망사용료를 지불하라는 한국 IT 기업의 요구에 콧방귀도 뀌지 않는 것일까. 한국 기업만 유일하게 넷플릭스에 떼를 쓰는 것인지, 넷플릭스가 한국 법에서 자유로운 탓에 공짜 특혜를 누리는 것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오는 20일 오전 10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일명 망사용료와 관련한 상임위원회 공청회를 개최한다. 골자는 콘텐츠 제공 사업자(CP사)와 인터넷 서비스 기업(ISP)간의 망사용료 계약을 의무화하는 것으로, 그간 한국 ISP사에 망사용료 지불을 거부해 온 넷플릭스에 대한 법적 구속력을 갖는 장치가 마련될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수년째 망사용료를 두고 법적 다툼을 벌이는 SK브로드밴드(SKB)와 넷플릭스에 대한 논의도 함께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제2의 구글법' 韓서 나올까 두려운 넷플릭스
넷플릭스 입장에서는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IT강국‘이라 불리는 한국 소비자들이 해당 사안에 뜨거운 관심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최근 기습적으로 요금제 인상을 시도했고, 광고 도입까지 검토하고 있는 터라 소비자들의 눈치가 보이는 상황이다. 게다가 한국은 세계 최초로 구글과 애플을 둘러싼 전세계 IT 기업들의 뜨거운 감자였던 ‘인앱(in-app) 의무 결제’가 부당하다는 내용의 소위 ‘구글 갑질 방지법’을 가장 먼저 입법화 한 나라가 아닌가. 실효성 문제가 숙제로 남았지만, 한국의 '구글 갑질 방지법'은 세계 시장에서 활동하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에게 긴장을 준 사례로 남았다. 넷플릭스의 망사용료 논란도 마찬가지다.
그간 SKB, KT, LG유플러스 등 국내 ISP 업체들은 넷플릭스도 국내 CP사와 마찬가지로 망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넷플릭스가 대규모 콘텐츠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트래픽 과부하가 발생하는데, 이를 국내 ISP사가 떠맡고 있다는 것. 국내 CP사들은 관련 비용을 ISP사에 지불하면서 해외 기업인 넷플릭스만 이를 거부하는 것은 시장의 공정성에 위배된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넷플릭스는 ‘지불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구글 갑질 방지법'같은 사례가 또 한국에서 처음으로 시작될까 우려하는 눈치다. 넷플릭스는 2020년 망사용료 지급을 요구하는 SKB를 상대로 먼저 소송을 냈을 정도로 해당 사안해 철저히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해 1심에서 패소했지만 곧바로 항소를 제기했고, SKB는 그간 사용한 망사용료까지 지불하라며 넷플릭스에 부당이득반환청구 소를 제기하는 것으로 맞섰다.
넷플릭스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관련 비용을 낸 적이 없다며 한국 ISP 기업들이 부당한 요구를 한다고 말한다. 또 자사와 SKB가 '빌앤킵(Bill and Keep)' 관계, 서로 직접적인 대가를 주고받지 않아도 정산을 한 것으로 인정하는 기존 통신 업계의 관행을 근거로 들며 망사용료에 대한 의무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이 같은 넷플릭스의 주장에 SKB는 통신 분야 전문가의 말을 빌어 “빌앤킵은 오래 전 전화통신사업에서 유래한 것으로, 현 시대에 부적합하다”고 반박했다.
애플TV는 내는데 넷플릭스 홀로 공짜 고집
넷플릭스의 주장대로 한국 기업만의 요구일까. 비슷한 논의는 유럽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영국을 포함한 유럽 13개국 주요 ISP사들은 CP사들에게 망사용료를 내라는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한국처럼 구체적인 기업명을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넷플릭스와 구글을 겨냥한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영국의 한 경영자는 “25년전 망중립성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4~5개 회사가 전세계 인터넷 트래픽의 80%를 주도할 것이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며 망사용료의 필요성에 대해 피력하기도 했다. 넷플릭스가 근거로 밝히는 빌앤킵 논리와 전면 대치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미국 바이든 정부 역시 아마존, 구글, 넷플릭스, 메타 등 빅테크 기업의 독과점을 우려하며 관련 법안을 추진하는 상황이다. 모두 규제를 골자로한 법안들이다.
넷플릭스 특혜 주장에 쐐기를 박는 사례가 또 있다. 넷플릭스를 제외한 메타(구 페이스북), 애플TV 플러스, 디즈니플러스 등도 직, 간접적으로 망사용료를 지불하고 는 것. 실제로 애플TV 플러스는 국내 ISP 업체에 망사용료를 지불하는 글로벌 CDN(콘텐츠전송네트워크) 계약을 맺었다.
넷플릭스와 SKB의 갈등엔 기술적 개념도 동원되기에 그 배경을 모두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한국 구독자에게 중요한 건 보다 본질적인, 소비자로서의 문제다. 한국 소비자들이 궁금한 건 K-콘텐츠가 넷플릭스에 기여한 만큼, 이들이 한국 시장에 걸맞는 대우를 하는지 여부다. 쉽게 말해 넷플릭스가 '오징어게임' 덕에 벌어 들인 돈 만큼 K-콘텐츠에 재투자가 되는 것인지, 한국 스태프들이 그에 걸맞는 대우를 받는 것인지 말이다.
한국에 돈 쏟는 넷플릭스? 구슬만 따가는 깐부
결론부터 말하자면 ‘글쎄’다. 넷플릭스코리아는 지난해 한국에서 6317억 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한국에 낸 법인세는 31억 원, 매출액의 0.5%에 그친다. 2년 전에도 한국에서 4천억 원대의 매출을 올렸지만 당시에도 21억 원의 법인세만 납부했다. 한국 매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는데, 늘어난 세금은 9~10억원 가량에 불과한 것이다.
가입자 포화로 투자자들 사이에서 회의론이 대두되며 주가가 곤두박질쳤던 넷플릭스는 250억 원을 투자한 한국드라마 ‘오징어게임’으로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 구독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경험을 했다. 예상치 못한 한국 드라마 한 편으로 넷플릭스가 세계 시장에서 거둬들인 매출은 1조 2500억 원대로 추정된다.
넷플릭스는 이를 K-콘텐츠에 재투자했을까. 넷플릭스코리아는 올해 본사가 한국 콘텐츠에 5천~8천억 가량의 자본을 투자할 것이라며, 한국 시장에 대한 세계의 시선이 달라졌다고 홍보했다. 한국 소비자들 역시 K-콘텐츠가 '오징어게임' 신드롬에 걸맞은 대우를 받는다며 기뻐했다. 정말 그럴까.
최근 공개된 '수리남'의 제작비는 350억 원 가량이다. 윤종빈 감독을 비롯해 하정우, 황정민 등 한국을 대표하는 제작진과 스태프, 배우들이 뭉친 이 시리즈는 한국 드라마 사상 최대 제작비가 소요된 작품으로 화제를 모았지만 넷플릭스의 평균 투자액에 비하면 사실 푼돈(?)에 불과하다. 넷플릭스는 올해 영화 ‘그레이 맨' 단 한 편에 무려 2400억 원의 제작비를 소요했다. 넷플릭스의 대표작인 ‘기묘한 이야기’ 시즌4의 제작비 역시 ‘오징어게임’의 10배가 넘는 3700억 원에 달한다. 물론 제작비가 작품의 정체성을 대변할 리 없다. 하지만 투자 규모는 해당 시장의 가치를 기업이 어떻게 판단하는지 지표는 될 수 있다.
"'오징어게임'에서 우리의 심금을 울린 것은 ‘깐부’라는 단어일 것이다. 이는 넷플릭스의 정신을 반영하는 단어로, 오늘날 넷플릭스가 있었던 것은 한국 창작 생태계를 구성하는 많은 ‘깐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넷플릭스 딘 가필드(Dean Garfield) 정책총괄 부사장의 말이다. 말로는 한 팀이라고 밝히면서도 망사용료 지불은 거부하고, 주머니 속 구슬을 아끼며 내주지 않는 넷플릭스. 이들은 왜 깐부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을까. 한국 시장을 속된 말로 호갱으로 취급하는 게 아닌지, 한국이 저렴한 콘텐츠 제공국에 머무르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
[티브이데일리 김지현 기자 news@tv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