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부담감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기존에 이뤘던 것까지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공포는 상당했다. 그럼에도 여러 의미들과 함께하며 마침내 해냈다. 첫 연출작 '헌트'로 감독 데뷔에 성공한 배우 이정재의 이야기다.

지난 10일 개봉된 영화 '헌트'(감독 이정재·제작 아티스트스튜디오)는 조직 내 숨어든 스파이를 색출하기 위해 서로를 의심하는 안기부 요원 박평호(이정재)와 김정도(정우성)가 ‘대한민국 1호 암살 작전’이라는 거대한 사건과 직면하며 펼쳐지는 첩보 액션 드라마로, 배우 이정재의 연출 데뷔작이다. 이정재는 '헌트'에서 연출 뿐만 아니라 주연과 각본까지 맡았다.

'헌트'의 시작은 한재림 감독이었다. '관상'이 끝난 뒤 한재림 감독이 이정재에게 "스파이물을 좋아하느냐. 지금 스파이물을 준비하고 있는데 각색을 요청해서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재림 감독과의 스파이물 작업을 기대하며 기다렸지만, 각색 과정에서 한재림 감독이 하차하게 돼 아쉬움을 남겼다. 그러던 중 그 시나리오가 제작사를 찾고 있다는 소식에 제작을 결심하고 판권을 구매하게 됐다는 이정재 감독이다.

물론 처음엔 연출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각본은 더더욱 생각이 없었다. 이정재 감독은 "시나리오를 아주 근사하게 수정하셔서 멋지게 찍어주실 감독님을 찾았고, 많은 감독님들을 만났다"면서 "거절하신 분들도 있고 본인이 시나리오를 쓰시다가 풀리지 않아 하차하신 분들도 있었다.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정재 감독은 "'이런 방향으로 수정이 됐으면 좋겠다'는 방향으로 제가 시놉시스를 쓰기 시작했다. 시놉시스의 글을 보내드리면서 초고와 함께 보여드렸다. 이러면 좀 더 감독님들이 캐스팅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썼던 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님 캐스팅이 잘 안 됐다. 좀 더 구체적으로 쓰면 잘 될까 싶어서 쓰다 보니까 시나리오 수정본이 나오게 된 거다"라고 설명했다.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시나리오를 수정하면서 막연한 기대감도 있었다. '태양은 없다' 이후 오랜만에 정우성과 함께 할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했다고. 그러나 출연 배우들 중 정우성이 섭외하기 가장 어려웠다. 이정재는 이에 대해 "정우성 씨가 4년 동안 거절했다"면서 "저희는 거절하게 오랜 시간 몸에 배어있었기 때문에 그거에 대한 서운함 감정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4번의 제안 끝에 정우성은 '헌트'의 출연을 수락했다. 과정 없이 결과만 보는 사람들은 정우성의 출연을 이정재 감독과의 친분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그 안에는 좋은 작품을 위한 두 사람의 치열한 고민과 의논의 과정이 있었다.

이정재 감독이 생각한 '헌트'의 방향성은 정통 스파이물이었다. 이정재 감독은 이에 대해 "국내에서 근사한 스파이 영화가 몇 년 동안 나오지 않았다. 액션이 부각되던가 액션과 코믹이 결합이 된 스파이물은 있었지만 정통 스파이물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는 없었기 때문에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정재 감독은 "스파이의 정체를 꽁꽁 감추고 있다 보니까 이야기 전개에 속도감이 없고 답답한 면이 있어서 제가 보기에도 큰 재미를 못 느끼겠더라. 근사한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목적으로만 만들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관객들이 재밌게 보시려면 액션 장면을 잘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정재 감독은 액션신에 대해 "액션 장면을 길게 보여드리고 싶지는 않았다. 임팩트 있게 보여드리고 싶었다"면서 "그러려면 아이디어가 좋아야 하고. 임팩트를 비주얼이 아닌 배우들의 연기하는 감정으로서 임팩트를 더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예를 들면 총을 뽑기 전 심리적 감정 상태가 중요하다. 심리적 감정 상태가 끝까지 고조된 상태에서 총을 쏘는 장면은 짧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짧은 순간에 강렬하게 보이려면 꽤 많은 부분들을 준비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임팩트 있는 액션신을 위해 모든 스태프들이 참여해 회의를 거듭했다. 거듭되는 회의를 거친 덕에 현장에서 사고 없이 지체하는 시간도 줄일 수 있었단다. 또한 꼼꼼한 프로덕션 과정으로 거리 전체를 세팅하지 않고 화각을 조절에 따라 미술을 제작해 제작비도 아낄 수 있었다는 이정재 감독이다.

배우가 아닌 감독으로서 관객과 만나게 된 이정재 감독은 그 어느 때보다 큰 부담감을 안고 있었다. 이정재 감독은 "저는 사실 연기만 오래 열심히 했던 사람이고. 앞으로도 꾸준히 연기할 수 있는 상태다. 그런데 굳이 연출까지 하고, 특히 시나리오까지 써서 '이정재가 왜 이 이야기를 들고 나왔는지'에 대해 실패를 본다면 연기자로서도 호감도가 떨어지지 않을까라는 공포감은 상상도 못한다"고 말했다. 이정재 감독은 "풀리지 않은 부분에 봉착하면 꿈에서도 그 부분이 무의식적으로라도 생겼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다 잤다. 그것이 어떻게 보면 제 커리어에도 문제가 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훨씬 더 무겁게 다가왔다"라고 전했다.

그럼에도 '헌트'의 의미는 그 부담감을 견디게 했다. 이정재에게 '헌트는' 절친한 정우성과 자신의 쓴 시나리오로 오랜만에 연기 호흡을 맞췄다는 의미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아티스트스튜디오에서 공동작업이라는 점도, '신세계' '아수라'를 함께 했던 사나이픽쳐스의 스태프, 동료 배우들과 함께 '헌트' 프로젝트를 함께 했다는 점도 마찬가지였다. 그 모든 의미들은 관객들에게도 통했다. '헌트'가 개봉 이후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 300만 고지를 넘어서면서 정재 감독은 첫 연출작으로 감독으로서의 능력도 인정받게 됐다. 이정재 감독의 다음 작품이 벌써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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