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받은 감독상 보다, 평단의 극찬보다 더 중요한 것은 관객의 평가였다. 모두가 거장이라고 칭송하지만, 관객들의 평가 앞에서는 아직 신인 감독과 같은 초심으로 돌아가는 박찬욱 감독이다.

최근 개봉된 영화 '헤어질 결심'(감독 박찬욱·제작 모호필름)은 산에서 벌어진 변사 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 해준(박해일)이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를 만나고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박찬욱 감독은 '헤어질 결심'으로 제75회 칸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다.

이번 작품은 박찬욱 감독의 기존 작업 방식과 조금 달랐다. 배우를 먼저 캐스팅하고 시나리오를 완성했다고. 박찬욱 감독은 "사실 이 경우는 독특했다. 탕웨이가 먼저였다. 탕웨이를 캐스팅하기 위해서 주인공을 중국인으로 정했다. 탕웨이 씨를 잘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로 창조된 거다. 캐릭터에 맞는 사람을 캐스팅한 게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박찬욱 감독은 "탕웨이의 전작들을 보면서 갖고 있던 막연한 인상과 그녀의 매력이 뭔지 생각하고, 한편으로는 궁금해하면서 보고 싶은 탕웨이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각본을 썼다"면서 "각본이 완성되기 전에 탕웨이 씨를 만나서 캐스팅 제안을 했고, 하겠다는 의사를 받은 다음에 각본을 더 썼다. 그 단계에서는 탕웨이 씨를 1 대1로 만나서 알아가는 과정과 각본을 완성해가는 과정을 동시에 진행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탕웨이는 실제로 보니까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장난끼가 있는 사람이었다. 고집스러운 면도 있었다. 작업 방식에 있어 소신이 뚜렷한 사람이었다. 그걸 반영해서 각본에 투영했다"고 말했다.

박해일도 마찬가지였다. 박해일을 상상하면서 해준 캐릭터를 만들어갔다고 했다. 박찬욱 감독은 "박해일이라는 사람을 상상하면서 각본을 써보자고 정서경 작가에게 제안을 했다. 그대로 캐스팅된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담백하고 깨끗하고 상대를 배려해주는 박해일을 이 캐릭터에 대입하자는 생각을 하고 썼다"고 설명했다.

박해일을 염두에 두고 쓴 캐릭터였지만, 이를 연기한 박해일은 되려 해준에게서 박찬욱 감독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박찬욱 감독은 "남자 배우들은 남자 감독에게 여자 배우는 여자 감독에게 뭔가를 찾아내는 경향이 원래 있다. 아무래도 디렉션을 하게 되면 말을 할 때 억양 같은 것들을 주문하게 되는데 그걸 따라가게 되다 보면은 그런 일이 벌어지기 쉽다"고 했다.

기존과 달랐던 작업 방식은 어땠을까. 박찬욱 감독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았다고 했다. 기존 작품들도 배우들이 캐스팅되면 시나리오를 그에 맞게 수정하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박찬욱 감독은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고집하기보다는 배우들의 제안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정도로 유연한 작업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촬영이 시작된 이후에도 끊임없이 배우들을 관찰한 것들을 시나리오에 반영시키면서 영화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러한 박찬욱 감독의 작업 방식은 배우와 캐릭터 간의 간극을 좁히는데 주효했고, 배우들의 '인생 캐릭터'라는 관객들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특히 이영애, 김옥빈, 김태리, 김민희, 그리고 '헤어질 결심'의 탕웨이까지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여성 배우들의 매력적인 모습을 담아내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박찬욱 감독은 "저는 남성, 여성 구별해서 어떤 캐릭터를 더 공들여서 창조하지는 않는다. 남자건 여자건 뭐건 간에 남녀노소 똑같은 정성으로 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박찬욱 감독은 "'남성이기 때문에 이렇게 행동한다' '여성이 이렇게 행동해도 될까?'라는 이런 식의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한 명 한 명의 개인일 뿐이다"라고 했다.

박찬욱 감독은 매력적인 캐릭터에 대해 "개성이 있으면서도 무작정 이상하기만 해서는 안 되지 않나. 개성이 있으면서도 어디서 본 것 같은 면이 있어야 그 사람의 행동이 이해가 되는 거니까. 친숙하고 이해 가능한 범위 안에서의 독특함이어야 한다"면서 "한 사람이 하나의 형용사로 규정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캐릭터가 생명력과 개성을 가져야 관객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그게 좀 지나치면 종 잡을 수 없는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인물로 보일 테니까 적당한 선을 지켜가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왜 제목이 '헤어질 결심'일까. 박찬욱 감독은 결심이라는 단어가 곧 실패로 연결되는 단어 같다고 했다. 박찬욱 감독은 "헤어질 결심을 하지만 끝내 못하거나 굉장히 고통스럽게 헤어지거나 그런 것들이 연상된다. 연상 작용은 관객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뜻하는 거니까 바람직한 제목인 것 같다. 얼마나 이 사랑이 힘들었으면 이런 결심까지 필요한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 것 같다"라고 말했다.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감독의 전작들과는 달리 자극적인 요소를 거의 빼고, 담백하다. 폭력이나 섹스 없이도 어른들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박찬욱 감독의 의도 때문이었다. 박찬욱 감독은 이에 대해 "고전적이고 우아한 사랑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감독의 주장, 정치적 메시지, 영화적 기교 등이 없는 영화를 구성하는 최소한의 요소로만 관객들의 감흥을 끌어내는 그런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칸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고, 언론과 평단의 극찬을 받았지만, 박찬욱 감독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관객의 평가였다. 박찬욱 감독은 이에 대해 "전문가들의 리뷰가 좋은 것은 직업적으로 굉장히 뿌듯한 일이다. 그런데 역시 제일 중요한 것은 영화 보는 일이 직업이 아닌, 시간을 내서 극장에 와 돈을 내고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어떤 평을 하느냐가 뭐니 뭐니 해도 세상에서 중요한 일이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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