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김지현 기자] 방송가에서 연말은 한 해의 성과를 가리는 포상의 시간이다. 명성이 전 보다 못하지만 트로피를 안을 자를 가린다는 건 여전히 시청자의 관심거리다. ‘인기순'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트로피 나눠주기‘가 빤히 보이지만 시상식은 스타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는 것만으로 흥미를 유발한다.
그런데 몇 년 사이 지상파 시상식은 그 흥밋거리마저 잃어가고 있다. 지난 18일 진행된 'SBS 연예대상'을 시청하며 안타까운 마음이 일었다. 한 때 안방의 예능을 책임지던 개그맨들의 머릿수가 줄어든 것이 확연히 눈에 보였다. 한국 예능계의 대부 이경규를 비롯해 신동엽, 지석진, 양세형, 장도연 등 시청자와 친숙한 MC, 개그맨들이 필두에 섰지만 이들의 명맥을 이어야 할 후배 개그맨들은 보이지 않았다. 뉴페이스라고 부를 수 있는 예능 신인은 일명 스포테이너로 불리는 전직 스포츠 선수들. 예능계 후배들이 실종된 것이다.
이날 신인상을 받은 이들 중 순수 예능 신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스포츠 예능 ‘편먹고 공치리’에 출연 중인 전 야구선수 이승엽과 또 다른 스포츠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의 모델 이현이, ‘골목식당’ 진행을 맡은 배우 금새록, 라디오를 진행하는 배우 박하선 등이 신인상 트로피를 나눠 가졌다. 과연 제2의 박나래, 양세찬, 장도연이 탄생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드는 장면이었다.
물론 이들의 수상 자체가 문제 될 것은 없다. 한 명의 스타가 가진 능력은 멀티 소스가 돼 다방면에 쓰인다. 말 그대로 멀티 능력을 가진 스타들이 환영받는 시대다. 문제는 신인 개그맨들의 씨가 완전히 말라간다는 것이다. 20년 후 유재석의 자리를 이을 후배는 누구일까. 적어도 공채 출신의 개그맨은 아닐 것이다. 미래의 예능 시장은 개그맨들의 장이 아니라 인기 배우, 인기 아나운서, 인기 스포츠 선수들의 확장 영역에 불과해질 수 있는 것이다.
신인 부재, 개그맨 생존 넘어 예능가 자생력 문제인 이유
이는 단순히 개그맨들이 사라지는, 특정인들의 생존 문제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예능 판도의 주도권이 타 영역에서 활동하는 스타들에게 넘어가면 예능가는 스스로 신인을 배출할 능력을 잃게 될 것이다. 개그맨을 비롯해 순수 예능인을 발굴하려는 노력이 없으니 신인이 탄생할 리 없다.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면 타 영역의 스타를 향한 예능가의 섭외 매달리기는 해마다 심화될 것이다.
OTT의 선전으로 조금이나마 일회성 성적에 숨통을 튼 영화, 드라마와 달리 예능계는 여전히 한 회, 한 회가 기록하는 본방 시청률에 예민하다. 때문에 미래를 내다 보지 못하고 당장의 성적표에 급급한 경우가 많다. SBS '미운 오리 새끼‘, MBC ’나 혼자 산다‘, ’전지적 참견시점‘, KBS '1박 2일’, ‘슈퍼맨이 돌아왔다’ 등 각 방송사를 대표하는 예능들은 점점 스타 게스트에 따라 시청률이 좌지우지 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선 스타, 게스트에 기대지 않고도 프로그램 포맷 자체가 힘을 발휘해야 한다. 그 내구력으로 신인을 발굴하고, 스타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키는 스타가 아닌 콘텐츠를 만드는 제작사에 있지 않은가.
개그맨 B씨 "기회 줘야 적응하는데..."
예능가의 일방적 선호도로 설 곳을 잃은 개그맨들은 TV방송 등 정통 매체를 포기하는 눈치다. 팬데믹은 또 다른 악재가 됐다.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행사가 완전히 축소돼 생존을 위협받는 중이다. 그나마 눈을 돌린 건 유튜브지만 이 마저도 경쟁이 치열해 살아남는 게 쉽지 않다.
한때 시대를 풍미한 모 방송사의 개그 프로에 출연했던 개그맨 A씨는 티브이데일리에 “제작진도 개그맨을 쓰고 싶다고 말해지만 결국 섭외가 되는 건 전직 스포츠 선수나 배우 모델 등”이라며 “이유를 물으면 무게감 때문이라고 하니 뭐라고 답변해야할 지 모르겠다. 시청자가 원하는 것이라고 말하니 할 말이 없다. 시청자 선호도를 따라가는 게 제작진의 역할이기에 이해하면서도 자꾸 섭외 순위에 밀려 서운하다"고 하소연 했다.
또 다른 개그맨 B씨는 “소속사가 큰 편인데도 섭외가 쉽지 않다. 옷에 맞지 않는 프로에 출연하는 것도 감지덕지할 때도 있다. 제작진이 개그맨 자체를 크게 선호하지 않는 것 같다”라며 “개그 프로가 폐지되면서 개그맨들이 아직도 그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이제 우리도 변화를 받아들이고 노력해야 하는 걸 안다. 하지만 제작진도 기회를 주길 바란다. 그래야 새로운 것에 대한 감도 잡고 살아남는 건데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으니 만들어지는 게 없다"라며 안타까운 현실에 고개를 떨궜다.
[티브이데일리 김지현 기자 news@tvdaily.co.kr /사진=방송사 포스터,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