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김지현 기자] 누군가 살해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되지만 범인은 오리무중. 진실이 미궁에 빠진다. 한 변호사의 집요한 추적 끝에 진짜 범인이 밝혀지지만, 결말을 보고도 속이 시원치 않다. 때로 ‘진실을 밝힌다’는 건 사실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게 아니라 연출되고 조작될 수 있음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어느 날’(연출 이명우)은 비교적 메시지가 분명한 드라마다. 성과주의를 쫓는 검,경찰의 표적 수사와 이에 동조하는 여론이 초래하는 파괴력과 폭력의 민낯을 보여준다.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주인공 현수(김수현)가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아니 범인으로 낙인되는 과정을 그리면서 우리가 진실로 판단한 어떤 일들에는 복잡한 이권과 셈이 숨겨져 있음을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는 진실은 정말 진실인 걸까. 드라마는 연일 이 질문을 던진다.
‘어느 날’에서 실제 범인이 누군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떤 진실이 진실이어야 나에게 유리한가?”라는 변호사 신중한(차승원 역)의 대사처럼 진실이 감추고 있는 다중성, 그 이면을 바라보는 게 중요하다. 때문에 그 누구도 “내가 죽이지 않았다”는 현수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애초 ‘팩트’도 ‘진실’도 중요하지 않은 탓이다.
경찰은 천식을 앓는 현수의 네뷸라이저(천식치료기)를 범죄 현장에서 발견하자 슬그머니 증거에서 빼돌리고 검찰과도 입을 맞춘다. 천식이 있는 잔혹한 사이코패스라니 어쩐지 어울리지 않으니까. 경찰은 언론 앞에 선 현수에게 범죄자다운 옷을 입히고, 범죄자답게 보이기 위해 애쓴다. 학창시절 친구와 다툰 현수의 경험은 범죄자다운 과거가 되고, 그렇게 현수는 1심 판결이 나기도 전 공공의 적이 된다.
그 누구도 진실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현수는 벼랑 끝에 내몰린다. 경찰은 빠르게 용의자를 특정하는 것이, 검찰에겐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의뢰인을 변호하는 변호인도 마찬가지다. 진실 보다 중요한 건 성과다. 사실 보다 입맛대로 만들어진 진실이 이익을 도모해주므로. 드라마는 현 사법 체계가 가질 수밖에 없는 시스템의 한계를 내보이며 ‘무죄 추정의 원칙’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더 섬뜩한 것이 있다. 현수를 바라보는 나(시청자)의 관점이다. 연출의 의도이기도 하지만 드라마를 본 이들이라면 결국 현수가 범인일 수도 있다는 의심을 감추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이 현실이 된다면? 순식간에 마녀 사냥, 여론 재판의 가해자가 된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이들 중 이 폭력에 자유로운 이가 얼마나 될까. 검증을 거치지 않은 정보를 진실로 받아들이고 누군가에게 주홍글씨를 새기는 낙인에 익숙한 우리가 아닌가. 가짜 뉴스가 삽시간에 퍼져 진실로 둔갑되는 현상이 자주 벌어지지만 폭력이라는 인식 조차 하지 못한다. 반대로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음모론에 빠져 사실이 아닌 것을 진실로 착각하는 이들도 있다. 두 가지 모두 공통점이 있다. 무고한 자가 여론의 제물로 바쳐진다는 것이다.
결백을 확신하던 현수는 모두가 자신을 범인으로 지목하자 스스로를 의심하기에 이른다. 진실이라는 것이 그 만큼 판단하기 어려운 것임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진실이 증명되기까지는 수많은 검증과 시간이 필요하지만 안타깝게도 사회는 기다림에 익숙치 않다.
자유의 몸이 됐지만 더 이상 전과 같을 수 없는 현수의 마지막은 씁쓸하다. '대한민국에 정의와 같은 달달한 것은 없다'는 걸 인생으로 경험한 현수의 체념은 불특정 다수에게 묘한 죄책감을 안긴다. 모두가 손가락질했지만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 사회, 모두가 비난했지만 용서를 구하지 않는 사회 안에서 그는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무고한 현수를 죄인으로 만든 경, 검의 모습에서 우리의 얼굴이 보이는 건 무엇 때문일까.
[티브이데일리 김지현 기자 news@tvdaily.co.kr /사진=쿠팡플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