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어떤 사람의 삶에 이해 못할 불행이 닥쳤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든 그 불행의 원인을 찾아내려 노력한다. 오해하지 말 것은 그(녀)가 겪는 고통을 이해하고 덜어주고 싶다거나 누명을 썼다고 변호해주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 불행이 자기 자신에게도 동일하게, 이유 없이 찾아올까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납득이 될 만한 타당한 인과관계를 찾아 불행을 겪고 있는 그(녀)와 우리 사이에 어떻게든 선을 긋고 만다. 분명 본인의 잘못이나 실수에서 비롯된 상황일 거라고, 그러한 잘못이나 실수를 범하지만 않으면 동일한 상황에 처하지만 않으면, 동일한 어려움이나 고통을 겪을 일은 없을 거라고 애써 믿는 것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은 어느날부터 허공에 인간의 이성으로 도통 이해 불가능한 형상이 나타나 사람들에게 지옥행을 선고하고, 이것이 그대로 이루어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사람들은 불특정 다수에게 발생하는 이 불가사의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이 때 굉장한 설득력을 발휘한 게 바로 더 이상 죄악을 좌시할 수 없었던 신이 심판의 전면에 나섰다는 관점이다.
문제는 지옥행을 고지받은 사람들 중에, 누가 봐도 불의 심판을 받기에 마땅한 죄목을 갖고 있는 이가 있는 반면, 또 어떤 이의 것은 살아오며 작은 실수, 잘못 하나 저지르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봐야 할 정도에 불과했다는 데 있다. 즉, 지옥을 가야할 대상으로 지목되는 기준이 일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공포에 질린 사람들에게 더욱 끔찍한 무엇이 되었다. 무슨 죄를 짓든 혹은 짓지 않기 위해 노력하든 다음의 고지가 자신을 향할 수도 있다는 소리이니까. 죽음의 얼굴을 맞닥뜨린 이들에게 주홍글씨를 새겨서라도, 자신은 아니어야 할 확신, 지옥행을 선고받지 않을 거라는 안심을 얻고 싶었겠다. 지옥행을 선고받은 사람들이 무조건 크나큰 죄인이 되어버렸고 되어야 했던 이유다.
tvN 드라마 ‘해피니스’에서는 코로나 치료제로 개발된 약 중 하나가 일으킨 부작용으로 사람을 물어뜯는 광인병이 발발한다. 작품의 인물들은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이웃이 괴물로 변하고 아파트가 봉쇄되는 상황에 이르는 것을 지켜보며 큰 혼란에 빠진다. 흥미로운 대목은 ‘지옥’의 사람들과 유사하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래서 더욱 도드라지는 사람의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본능이다.
위층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아래층, 임대주택에 사는 이들과 더욱 경계를 지으며, 바깥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나간 혹은 내보낸 아래층 사람들과 청소업체 사람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마트에서 먹을 것까지 구해오나 감염되었을지 모른다며 문도 열어주지 않는다. 마치 좀 더 여유로운 경제적 조건을 가진 사람들은 그만큼 감염의 가능성도 낮은 것처럼, 더욱 감염되지 않아야 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할까.
그러나 정작, 아파트 내의 첫 광인병 환자는 그들에게서 나왔고 약을 먹었을 확률도 약이 판매되었던 피트니트센터를 이용할 자격을 지닌 그들이 더 높았다. 극도의 두려움과 공포가 건네는 불안감을 어떻게든 벗어내기 위해 기껏 마련한 방법이란 게, 고상하고 지체 높은 자신들이 그런 비인간적인 모습으로 변할 리 없다고 과하게 믿으며 그들이 평소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을 더욱 하대하는 일이었던 거다.
죽고 사는 문제가 코앞에 선명히 도래하면 그간 그렇게 도덕적으로 행동하고 휴머니스인 양 굴던 우리 내면의 악한 본성, 잔인성이 그 얼굴을 드러낸다. 생존에 위협이 가해졌다는 두려움이 발생시킨 것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좀 전까지 마음을 나눴던 사람의 삶일지라도 마다하지 않고 사지로 내몬다.
기억해야 할 것은 이런 소재를 다루는 모든 이야기에서 결국 살아남거나 인간으로서의 모양새를 잃지 않는 존재는, 다른 이들에게 닥친 상황을 동일한 자신의 것으로 여기며 이타심과 연대의식을 발동한 이들이며, 놀랍게도 우리가 마주한 현실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니스트 news@tvdaily.co.kr, 사진 =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 tvN 드라마 ‘해피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