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넘어 "우리가 바꿀게"…故 정인이가 남긴 숙제 [이슈&톡]
2021. 01.03(일)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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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김지현 기자] 생후 16개월, 장기가 절단되는 고통 속에 죽음을 맞은 정인이는 사망 하루 전 유일한 안식처였던 어린이집에서 홀로 고통을 삭였다. 선생님이 주는 음식을 먹지 못하고 축 늘어진 정인이의 눈물은 메말라 있었다. 이 작은 아이는 성인도 견디기 힘든 고통을 겪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누구를 떠올렸을까.

정인이 사건은 여러모로 같은 해 발생한 '천안 계모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아동학대 수사와 가해자들의 처벌 수위가 얼마나 허술한지 목격했고 그에 분노했다. 이미 수 많은 아이들이 친부모, 양부모, 어른들의 학대 속에 목숨을 잃었다. 이 피해 아동들의 공통점은 학대를 의심하는 이웃과 지인들의 신고가 여러차례 있었다는 점이다. 경찰은 검게 멍이 든 작은 몸을 눈으로 확인하고도 이들을 다시 집, 지옥으로 돌려보냈고 아이들은 끝내 목숨을 잃었다. 정인이의 사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2일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공개된 학대 정황은 충격이라는 단어로는 부족하다. 정인이의 시신을 부검한 한 전문의는 "정인이의 배가 피로 가득 차 있었고 췌장이 완전히 절단돼 있다"라고 당시를 설명했다. 전문의에 따르면 정인이의 몸은 나아가는 상처와 새로 생긴 상처 투성이었고 양쪽 팔과 다리, 쇄골도 골절된 상태였다. 이 전문의는 "정인이의 상태를 보고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며 "이 정도면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아동 학대"라고 말했다.

전문의에 따르면 췌장은 신체 내부 깊숙히 자리해 인위적은 힘을 가하지 않고서는 절단되기 힘들다. 실제로 부검감정서에 따르면 정인이의 사인은 외력에 의한 복부 손상, 강한 외력으로 췌장이 절단 것으로 드러났다. 양부모 아랫층에 거주한 이웃의 증언에 따르면 사망일 당시 정인이의 집에서는 무거운 것이 바닥에 쿵 떨어지는듯한 소리가 수차례 난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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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경찰은 양모를 살인죄가 아닌 아동학대치사 및 방조 혐의를 적용했다. 사망일 당일 의식을 잃은 정인이를 본 양모는 양부에게 "병원에 데려가? 형식적으로?"라는 문자를 보냈다. 이웃 신고부터 의심스러운 문자까지 여러 정황에도 불구 경찰은 고의성을 입증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살인죄를 적용하지 않았다. 양부에게는 방임 및 방조 혐의만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다. 여느 아동 학대 사건처럼 엄마에게만 책임을 물고, 아빠에게는 사실상 거의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다.

또 다시 반복이다. 그리하여 정인이 죽음은 가해자를 향한 분노를 넘어 보다 근본적인 해결법을 찾아야 한다는 걸 절실히 보여준다. 사건들이 반복될 때 마다 많은 이들이 목소리를 높였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정인이는 말하고 있다. 어른들의 숙제는 다시 원점이다.

곳곳에서 수 많은 이들이 "정인아 미안해"를 외치고 있다. 이 슬픔과 분노는 또 성과없이 흩어져 버리는 것일까. 다행히 다른 점이 있다. "바꿀게"라는 의지의 표현이다.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는 '그것이 알고 싶다' 방영 전 종이에 '정인아 미안해'라는 문구와 함께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적어 사진으로 공유하는 챌린지를 제안했다. 스타를 비롯해 수많은 이들이 정인이를 향한 애도를 표하는 동시에 "바꿀게"라는 단어를 적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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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김원효의 발언도 의미심장 하다. 그는 자신의 SNS에 "정인아 어른으로서 인간으로서 미안하다.부끄럽다. 우리가 바꿀게 라고 했지ㅏㄴ 정인아...시간이 오래 걸릴꺼야 법을 바꾸기에는 힘이 별로 없거든"이라며 안타까운 현실을 지적했다. 이어 그는 "바꾼다고 해도 네가 생각 할 만큼 크게 바뀌지도 않을 수도 있어. 하지만 네가 사는 그 곳에서 이런거 생각하지말고 행복하게 웃으면서 살아~다음 생에 만나게 되면 아저씨가 맛있는거 사줄게"라며 애도를 표했다.

배우 신애라는 정인이의 사건이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그는 3일 인스타그램에 "친생부모, 입양부모, 위탁부모, 미혼부모. 많은 사람들이 쉽게 부모가 된다. 하지만 그 중에 부모의 자격이 되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지금 이 순간도 어디선가 크고 작은 정인이가 울고 있을 것이다. 얼마나 아플까, 얼마나 무서울까. 우리의 책임이다. 나의 책임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뭘 해야 할까"라며 무거운 마음을 드러냈다.

일부 누리꾼들은 양부모의 강력한 처벌을 위한 진정서 작성을 촉구하고 나섰다. 오는 13일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양부모에 대한 첫 공판이 열리는데 공판 일주일 전인 1월 6일까지 진정서가 도착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1만 개의 진정서 작성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현재 200여 통이 작성됐다.

이 처럼 분노를 넘어 변화를 향한 움직임은 국민청원부터 경찰서 홈페이지까지 채우고 있다. 이들은 담당 경찰을 징계하고 양부모의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확실히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입양 제도와 아동학대법 개정에 대한 목소리도 들린다. 보다 근본적인 것에 관심을 갖고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정인이는 생전 구조될 기회가 세 번 있었다. 어린이집 교사부터 의사, 이웃까지 3명의 인물이 경찰에 아동학대가 의심된다고 신고했다. 하지만 경찰은 매번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정인이를 양부모 집안에 돌려보냈다. 경찰의 나약한 수사 의지가 정인이의 운명을 바꾼 것이다. 신애라의 말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어른들의 무관심 속에 학대를 당하는 아이들이 있다. 하늘로 간 정인이가 바라는 건 "바꿀게"라는 어른들의 약속이 지켜지는 일이 아닐까.

[티브이데일리 김지현 기자 news@tvdaily.co.kr /사진=SBS '그것이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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