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무대에 설 수 있는 하루하루가 행복하다"는 뮤지컬 배우 윤공주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연기를 향한 열정으로 단단히 무장한 데뷔 20년 차 배우에게서는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무대를 향한 애정이 묻어났다.
윤공주는 지난달 17일 개막한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연출 알리나 체비크)에 출연 중이다. 아름답고 매혹적인 안나라는 한 여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 속에서 가족과 사랑 등 인류 본연의 인간성에 대한 예술적 통찰을 담아낸 뮤지컬로, 러시아 대문호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의 3대 걸작 중 하나인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윤공주는 '안나 카레니나'에 갑작스레 합류했다. 동료 배우인 차지연이 갑작스레 투병을 하게 되면서 주인공 안나 역을 제안받았고, 나흘 만에 출연을 결정하고 곧바로 포스터 사진을 찍으러 스튜디오로 향해야 했다. 장기 공연 중이던 '지킬 앤 하이드'를 마무리하기도 전 새로운 공연의 막을 올려야 했던 상황. 그는 "주어진 시간 안에 최선을 다해 양쪽 공연팀 모두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윤공주는 한 달 만에 모든 연습을 마치고 첫 무대에 올랐다. "시간이 부족해 영화부터 대본, 음악부터 숙지하고 영화를 참고한 채 공연을 시작했고, 이후 소설을 읽으며 세부적인 장면들을 살펴봤다"는 그다.
그가 연기하는 안나는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지닌 귀족부인이다. 귀족 남편과 정락 결혼을 통해 텅 빈 삶을 살다가 브론스키 백작을 만나 금기된 사랑에 빠지며 운명이 뒤흔들리는 인물이다. 그간 여러 대형 뮤지컬에 출연해 온 윤공주지만 러시아 뮤지컬은 '안나 카레니나'가 처음이다. 짧은 시간 안에 안나라는 여성에 대한 공부는 물론, 러시아의 시대적 배경 등을 이해해야만 불륜이라는 극 중 설정을 관객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귀족들이 숨어서 애인들이랑 바람을 피우는 일이 흔했다고 해요. 하지만 안나는 처음으로 사랑을 느끼고, 자신의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서 진정한 사랑을 찾으러 나선 거죠. 그 용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안나가 후회 없는 삶을 선택했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행복한 일을 하며 사는 것이 삶의 목표인 사람인지라 너무나 공감이 갔죠. 현실에서는 불륜이 용납될 수 없지만, 드라마 적으로는 표현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어요."
긴 원작 소설을 3시간 분량의 뮤지컬로 압축하다 보니 관객의 입장에서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윤공주는 "어떻게 보면 주인공이 갑작스레 사랑에 빠지는 것 같기도 하고 두서없이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며 이 점을 언급했고, 이어 "하지만 조금만 알고 보면 모든 내용들이 담겨 있다. 뮤지컬 안에서도 당시 러시아의 정치·경제적 문제, 귀족들 간의 갈등 등 많은 요소들을 확인할 수 있다. 보면 볼수록 재밌는 텍스트"라며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윤공주는 "공연을 하면 할수록 더 어려운 역할이다. 기술적으로 노래를 잘하고 그런 걸 떠나서 관객의 공감을 자아내고 연기에 진정성이 묻어나게 하는 게 어렵다"며 속내를 털어놨다. "서사를 계속해서 쌓아야 마지막에 감정이 쌓여서 마음이 무너지는 연기를 할 수 있다. 모든 것이 무너지는 듯한 큰 감정의 진폭을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라고 말했다.
어느덧 데뷔 20년 차를 맞은 윤공주. 그간 꾸준히 주연으로 무대에 서며 다양한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그는 "돌이켜보면 20년이라는 세월 동안 계속 주인공을 하고 있더라. 정말 열심히 했더니 이렇게 뭔가를 이루게 됐구나 싶다. 원하는 만큼 노력을 했는데 안 되는 건 없더라.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해냈는데, 너도 할 수 있다', 후배들에게 그런 희망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윤공주는 "이렇게 주연으로서 한 작품을 대표해 인터뷰를 하거나 화려한 무대 위에 서는 일들이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이라는 걸 아니까, 세월이 흐를수록 순간을 소중하고 감사히 여기게 된다. 더 마음껏 누려야겠다는 생각도 든다"며 "작품마다 항상 고비가 있고 슬럼프가 있다. 때로는 앞이 캄캄하게 막힐 때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좋은 공연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힘듦마저도 최대한 누리려 한다"고 각오를 털어놨다.
"삶을 되돌아봤을 때 되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없게끔 최선을 다해 살고 싶어요. 아직까지는 돌아가고 싶은 과거가 없더라고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지금 이 순간 최고의 행복을 누리고 있는 것 같아요. 몸이 힘들어 움직이지 못하는 순간까지 배우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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