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김민주 기자] 하루씩 과거로 돌아가는 삶을 살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배우 이혜란은 '다시, 봄'을 촬영하는 동안 순간의 소중함을 느꼈다고 한다. 현재에 충실하며 후회 없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던 이혜란의 눈빛이 반짝였다.

17일 개봉된 영화 '다시, 봄'(감독 정용주·제작 26컴퍼니)은 딸을 잃은 은조(이청아)가 하루씩 거꾸로 흘러가는 시간을 살게 되면서 인생 두 번째 기회를 얻게 된 타임 리와인드 영화다. 이혜란은 극 중 꿈 많은 가수 지망생 세아 역을 맡아 연기했다.

이혜란에게 이번 작품은 과거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극 중에서 지호민(홍종현)이 치매에 걸린 아빠(박지일) 때문에 속상해하면서도 지극정성으로 챙기는 모습을 떠올리며 그동안 엄마 아빠에게 투정을 종종 부렸음을 털어놓던 그는 "매 순간 항상 최선을 다한 것 같아도 지나고 보면 후회가 되더라"고 이야기했다.

한 편으로는 미래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주기도 했다. '다시, 봄'을 통해 지금껏 그냥 지나쳤던 소소한 것들을 이제는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게 된 것이다. 자연스럽게 흘려보낸 시간 속 숨겨져 있던 소중함을 찾기로 한 이혜란은 이번 작품을 "따뜻한 위로"라고 표현했다.

이혜란은 "다 같이 모여서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을 찍을 때 배우들의 떨림이 고스란히 느껴졌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고요한 여름날 밤, 깊은 산속의 절에서 자살 장면을 촬영하는 동안은 연기와 현실이 구분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어두운 방에서 청테이프를 붙이는 동안 '다들 진짜 죽으러 온 걸까'라는 두려움이 들 정도였다.

"촬영을 하는 동안 청아 언니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청아 언니가 모니터를 해 주면서 제 안의 감정을 끄집어내 주고,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 라며 방향을 제시해주기도 했죠. 언니와 처음으로 촬영을 했는데, 마치 오래 알고 지냈던 언니 동생 같았어요."

가수 지망생 세아를 연기하는 동안 기타와 노래는 가족과도 마찬가지인 존재였다. 매일 노래와 기타 연주 연습을 했다는 이혜란은 "엔딩 크레딧에 세아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있다. 세아가 제일 행복해하는 순간"이라고 한 장면을 꼽았다.

이혜란은 "그 장면이 원래 제 목소리가 나오기로 돼 있었다. 가장 기쁜 순간인데 실력이 서투르면 안 된다는 생각에 열심히 연습을 했었다"며 "비록 제 목소리가 아닌 OST로 편집이 됐지만 만족한다. 오히려 OST가 분위기 있게 다가왔다"고 솔직한 감정을 드러냈다. 또한 "그 장면이 원래 극 중간에 있었다. 세아는 가장 행복했던 순간의 감정을 온전히 간직하며 죽음을 맞이하고자 당시 입었던 복장을 입고 자살을 시도한다"고 관전 포인트를 공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과연 세아는 진심으로 자살을 원했을까. 이혜란은 이와 관련해 정용주 감독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자살을 하기 위해 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세아는 이어폰을 끼고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듣는다. 이 순간까지도 세아는 자살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수면제를 먹을 때 "알약을 잘 못 먹는다"며 난처한 표정을 짓던 세아는 분명 삶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그렇게 세아는 자살을 포기하고 연기가 자욱한 방 안을 뛰쳐나갔다. 이혜란은 "아마 세아는 가수의 꿈을 이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극에는 담기지 않았던 결말을 상상하기도 했다.

과거로 돌아가는 삶을 사는 은조와 준호(박지빈)는 사기꾼과의 계약을 코앞에 앞둔 세아(이혜란)를 말린다. 꿈꾸는 삶을 살아온 세아가 한 순간에 몰락하는 것을 어떻게든 막으려는 그들의 간절한 바람이었다. 하지만 이를 알 리 없는 세아는 "뭐하는 짓이냐. 빨리 나가라"며 두 사람을 사무실 밖으로 밀쳐냈다, 이혜란은 "솔직한 심정으로 그 순간만큼은 나도 똑같이 행동을 했을 것 같다. 길거리에서 공연을 하다가 드디어 무대에 설 기회가 왔는데 왜 도장을 찍지 않겠냐"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혜란은 "무엇이든지 첫 순간은 설레고 떨리기 마련"이라며 "첫 계약을 앞둔 세아에게 미래의 구체적인 상황을 대비할 틈과 여유는 없었을 것"이라고 심정을 예상했다.

배운 것도 많고, 아쉬운 점도 많았던 촬영이었다. 대표 이사를 빙자한 사기꾼 역을 맡았던 김인권과 호흡을 맞췄던 이혜란은 "리허설 때 많이 가르쳐주시고 다독여주셨는데 너무 긴장이 돼서 얼어있었던 것 같다"며 "그래서 선배와 계약을 하는 장면은 재촬영을 하고 싶다. '애드립을 쳐서 장면의 분위기를 조금 더 살려볼 걸 그랬나'라는 아쉬움이 든다"고 심정을 밝혔다. 이혜란은 "선배가 애드립을 잘하시더라"며 "'난 대표 이사. 넌 등기 이사' 등의 대사가 다 애드립이었다. 대사의 절반이 애드립이었던 것 같다"라고 존경을 표했다.

긴장한 나머지 자신은 대본에만 충실해있었다며 "여유를 조금만 더 가졌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그의 표정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김인권의 순발력을 보며 베테랑임을 느꼈다며 칭찬하던 그에게서 무한한 가능성이 엿보였다.

차기작을 위해 오디션을 많이 보고 있다는 이혜란의 롤 모델은 이유리였다. "연기를 할 때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가 매력 있으시다"라며 이유리의 연기를 회상하던 그는 "작품에 출연할 때마다 캐릭터 변신을 잘하신다. 선배가 자주 맡는, 허당 매력이 있는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맡은 캐릭터를 잘 소화할 수 있는 연기자가 되고 싶다"며 바쁘게 살고 싶다는 목소리에서 희망찬 에너지가 느껴졌다.

"여유를 가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인데, 되려 그 부담감 때문에 간혹 실수를 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조금의 여유를 가지되, 차근차근 실력을 발전시켜나가는 배우로 성장하고 싶어요."

[티브이데일리 김민주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신정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