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김지현 기자] 최근 헌법재판소는 고민에 빠졌다. 낙태죄의 합,위헌 여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찬반 논쟁이 팽팽하다. 찬성하는 이들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태아에 우선한다고 믿는다. 반대하는 이들은 생명권 보호를 주장하며 맞서고 있다.
핵심은 '자기결정권'이다. 이는 헌법에 있는 신체의 자유를 기본으로 한다. 한 인간의 신체를 타인이나 사회가 통제하면 안된다고 믿는다. 신체의 자유는 인간이 누려야 할 천부적, 초국가적 자연권이라는 것이다. 여기엔 자신의 신체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스스로 판단할 자유가 있다.
양측의 주장 모두 타당하기 때문에 헌법재판소의 고민은 치열할 것이다. 여성의 자기결정권 만큼 생명권은 소중하다. 물론 자기결정권 역시 그렇다. 이 논쟁에는 구성원들의 합의와 협의를 거처야 할 마땅한 사회적 가치가 내포돼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고민에 동참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설리의 노브라 논쟁도 그럴까. 툭하면 이 논쟁에 시달리는 걸그룹 에프엑스의 멤버 설리를 보면 헌법재판소의 고민이 떠오른다. 사람들은 브라를 착용하지 않은 설리를 보면서 마치 헌법재판소가 된 것 처럼 그녀의 속옷 착용 여부를 두고 찬성, 반대 의사를 표명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이번 논란은 SNS 라이브 방송, 일명 라방에서 비롯됐다. 설리가 네티즌의 '눈에 거슬리게' 노브라로 등장한 것이다. 한 네티즌은 설리에게 "'노브라'로 당당할 수 있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설리는 "나는 걱정 안해줘도 된다. 나는 시선 강간하는 사람이 더 싫다"고 답했다.
이 네티즌의 질문은 설리의 '노브라'를 둘러싼 사회적 시선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말해준다. '노브라=당당하지 못한 것'이다. 당당이라는 단어의 프레임이 파생하는 것들을 떠올려보라. 그것은 자신감이기도 하고, 특정 사회에서 요구되는 통념의 기준을 만족시킨 한 개인의 심리적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반면 이 단어의 반대 급부는 부끄러움과 수치심 정도일 것이다. 이 네티즌은 노브라를 한 설리가 수치심을 가져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시선 강간'이라는 설리의 말은 노브라를 한 자신을 쳐다 보면 안된다는 뜻이 아닐게다. 한 개인의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 영역을 두고 소모적인 설전을 벌이고 있는 누군가들을 말하는 게 아닐까. 설리의 속옷 착용 여부를 왈가불가하며 찬,반을 던지는 건 오지랖을 넘어 인권 침해다. 한 개인의 신체를 타인이 통제할 자유는 없다.
설리에겐 노브라를 할 자유가 있지만 타인들은 그녀에게 찬반표를 던질 자유가 없다. 보기 민망해서 그렇다는 것은 강요다. 강요의 또 다른 얼굴은 폭력이다. 설리의 신체는 설리의 것이고, 속옷을 선택할 권한 역시 설리만이 가질 수 있다. 나의 신체를 통제하고 표현하는 권한은 오직 내 자신에게만 있다. 이것은 우리가 힘겹게 쟁취해 낸 헌법의 기본권이 아닌가. 그리하여 설리의 노브라 선택에 자유를.
[티브이데일리 김지현 기자 news@tvdaily.co.kr /사진=설리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