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김한길 기자] '서프라이즈' 히로시마 원자폭탄에 사망한 유일한 황족, 이우왕자에 대한 안타까운 사연이 전파를 탔다.
28일 오전 방송된 MBC 예능프로그램 '신비한TV 서프라이즈'(이하 '서프라이즈')에서는 야스쿠니 신사에 안치돼 논란이 된 한국인, 조선의 마지막 황족 흥영군 이우 왕자에 대한 이야기가 그려졌다.
이우 왕자는 고종의 다섯째 아들 의친왕의 차남으로서 1922년 11살의 나이로 일본 유학길에 올라 일본 육군사관학교, 육군대학교를 졸업해 일본 군대에서 큰 공을 세운 인물이다. 이에 그는 친일파라는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는 이우 왕자의 이름은 없었다.
사실 이우 왕자는 누구보다 일본을 증오했다. 그가 어쩔수 없이 일본으로 유학해 일본 군인이 된 이유는 '왕공가궤범' 때문이다. 이는 왕, 왕세자, 왕세손, 공은 만 18세가 되면 육군, 해군 무관으로 임관해야 한다는 일본의 법.
그는 일본에서 일본어를 쓰지 않고 한국어를 사용해 마찰이 잦았으며, 이 밖에도 일본과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꺼렸다고. 또한 이우 왕자는 자신의 결혼 문제도 일본과 마찰을 빚었는데, 당시 조선 왕족의 혼인은 일왕의 허가가 있어야 했는데, 이우 왕자 역시 일본인과의 정략결혼을 강요당했다. 이우 왕자 또한 일본 왕실이 정한 일본 여인이 있었으나 아버지의 도움으로 결국 자신의 의지대로 박영효의 손녀딸 박찬주와 결혼했다.
이후 이우 왕자는 1943년, 중국 산서성의 일선부대로 전출됐지만, 독립세력을 키우기 위해 비밀 자금을 조달하는 활동을 펼쳤다. 실제로 조선인 출신 육사 동기인 이형석 장군에게 보낸 편지에는 "일본 군복을 입고 있는 것이 부끄럽다. 우리 군복을 입고 당당히 살때까지 기다리라"라는 내용이 담겼으며, 그는 3년에 걸쳐 조국의 독립을 꿈꿨다고.
그런데 1945년 다시 일본으로 전출 명령을 받으며 모든 준비가 무산될 위기를 맞았다. 이는 일본이 이우 왕자의 독립운동을 눈치챈 것. 이우 왕자는 일본으로 가기 전 잠시 고국에 머물렀고,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여러 가지 핑계로 버텼다. 하지만 일본의 강요로 히로시마로 떠날 수밖에 없었고,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첫 출근을 했다.
그런데 그날이 미국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날이었고, 길거리에서 피폭된 이우 왕자는 다음 날 새벽 결국 사망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불과 33세, 이는 히로시마에서 원자폭탄에 의해 사망한 유일한 황족이었다. 당시 이우 왕자의 수행 무관이었던 요시나리 히로무는 책임을 통감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사실은 이우 왕자를 감시하기 위해 일본 정부에서 붙인 감시원이었으나 이우의 성품에 매료돼 그의 편이 된 사람이었다.
이우 왕자의 유해는 고국으로 돌아왔고, 일본이 패전을 선언하고 한국이 독립을 맞이한 8월 15일, 경성운동장에서 열린 장례식에서는 많이이들이 이우 왕자의죽음을 안타까워했다.
그런데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 유족의 동의도 없이 이우 왕자가 합사한 사실이 알려졌고, 이후 유족들은 신사에서 이름을 빼달라고 항의했다. 그러나 야스쿠니 신사는 사망 당시 이우는 일본인 신분이었기 때문에 일본을 지킨 신으로 모시는 것이 당연하다며 현재까지도 유족들의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고 전해졌다.
[티브이데일리 김한길 기자 news@tvdaily.co.kr/사진=MBC 방송화면 캡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