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딨을까. 흔들림 끝에 배우로서 단단히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서현의 새로운 도전에, 자양분처럼 쌓인 그의 '시간'이 꽃처럼 피어났다.

지난달 20일 종영한 MBC 수목드라마 '시간'(극본 최호철·연출 장준호)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유일한 시간과 결정적인 매 순간, 각기 다른 선택을 한 네 남녀가 지나간 시간 속에서 엮이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가난과 싸우며 살아가던 여인 설지현이 동생의 의문사에 대한 비밀을 밝히려 하고, 그의 죽음에 간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재과 그의 약혼녀, 자신을 배신하고 부귀영화를 좇는 과거 연인인 변호사와 얽히고설키며 안방극장에 긴장을 선사했다.

'시간'은 유독 우여곡절이 많은 드라마였다. 제작발표회부터 주연 배우 김정현의 태도 논란이 불거졌고, 종영을 6회 앞두고 김정현이 건강 상의 문제로 중도 하차하게 되며 후반부 내용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홀로 남아 드라마 전체를 떠 받들어야 했던 주연 배우 서현은 "내가 흔들리면 작품을 망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힘들었던 순간들을 털어놨다. 묵묵히 버텨야만 했던 서현의 시간이 흘러가고 함께 한 스태프들과 드라마를 지켜본 대중들이 그의 수고를 알아줬을 때, '시간'은 그에게 부담과 책임감이 가득했던 시간이자 배우로서의 자신을 한층 성장하게 해 준 고마운 시간으로 남았다.


서현과 '시간'의 만남은 전작인 MBC 드라마 '도둑놈 도둑님'을 통해 이뤄졌다. 당시 함께 작업했던 장준호 PD가 자신의 입봉작 주연으로 서현을 점찍었다. "나를 믿고 불러준 PD님의 연락에 책임감과 고마움을 느꼈다"며 출연을 결심한 이유를 밝힌 서현은 "시놉시스를 처음 봤을 때부터 정말 어렵겠다는 생각부터 들었지만 곧 작품의 매력에 끌렸다"고 설명했다.

극 중 서현이 연기하는 설지현 캐릭터는 기구한 운명을 지닌 여인이다. 백화점 안내원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렵게 꿈을 키우던 도중 동생이 의문사하고, 동생의 사망 이유를 밝혀내던 와중에 어머니마저 사고로 위장해 죽임을 당하는 인물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매 장면마다 어떻게 애통한 감정을 표현해야 할지가 가장 고민이었다는 서현이다.

이에 서현은 촬영에 앞서 본격적으로 캐릭터 연구를 시작했다. 매일 일에 치여 바쁘게 살아가는 설지현을 표현하기 위해 과감히 메이크업을 포기했고, 캐릭터와 자신의 일상에 경계를 두지 않고 매 순간 설지현으로서의 감정상태를 유지하려 했다. 전작들에서는 배우 서현으로서 눈물을 흘리며 살다가도 다음 스케줄에서는 걸그룹 멤버 소녀시대 서현이 돼 환하게 웃어야 했던 것과는 달리, '시간'을 촬영하는 동안에는 외부 활동을 대폭 줄였다. 사람들도 잘 안 만나게 되고, TV를 보거나 인터넷을 하는 일도 줄인 채 슬픔의 감정을 유지하려 했다. 장장 5개월의 여정이었다.

"예전에는 어디에서건 '스위치'를 잘 켜고 꺼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드라마 촬영장에서는 배우 스위치를 켜고, 소녀시대로 카메라 앞에 서면 소녀시대 막내로서의 스위치를 '온(on)' 하려 했죠. 캐릭터의 감정과 일상에서의 제 모습에도 경계를 잘 두려고 했었고요.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하나의 감정에 오롯이 집중해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래야만 설지현이 느꼈을 슬픔의 깊이가 고스란히 표현될 거라고 믿었죠."


음악을 들으면 저절로 눈물이 나고, 촬영이 끝나고 혼자가 되면 또다시 눈물이 날 정도로 매 순간 온몸에 슬픔을 축적한 시간이 이어졌다. 그 결과 대본을 받으면 즉각적으로 설지현으로서의 생각과 감정을 떠올릴 수 있게 됐다는 서현이다. 그간 제삼자의 입장에서 대본을 표현할 방법을 고민했다면, 이번에는 캐릭터가 돼 대본을 체화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이 모든 경험이 어우러져 한층 자연스러운 연기가 나올 수 있는 자양분이 됐다.

그 결과 서현은 이번 작품을 통해 '인생 캐릭터'를 만났다는 시청자들의 극찬을 받았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여인이 슬퍼하고, 좌절하고, 분노하고, 결국은 세상과 맞서 싸우는 모습을 입체적으로 그려낸 덕이다. 감정의 진폭이 큰 오열 연기부터 극 후반 재벌가와 투쟁하며 '흑화'하는 모습까지 자연스레 소화해 내며 연기력이 한층 성장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서현은 "대중의 후한 평가가 정말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내가 아무리 드라마에 나와도, 11년 간 소녀시대로 살아온 시간이 있기에 이미지를 깬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비단 아이돌뿐만 아니라 연기에 새롭게 도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을 문제다. 그럼에도 좋은 평가를 해주시는 것이 정말 감사하고 마음의 짐을 다 내려놓게 되는 것 같다"며 조심스레 기쁨을 드러냈다.


드라마가 끝난 지 2주가 흘렀지만 서현은 이제야 천천히 일상으로 돌아오는 중이다. 감정 소모가 많다 보니 촬영 막바지에는 체중도 3kg 감소하고, 촬영이 끝난 후에는 앓아눕는 등 고생도 많았다. 하지만 배우로서 더욱 단단히 뿌리를 내렸다는 생각에 힘들다는 감정보다는 뿌듯함과 만족스러움이 더 많이 느껴진다는 서현이다.

서현은 두 편의 드라마로 꽉 채운 2018년을 자신이 한층 성장한 해라고 정의했다. "지난 해가 홀로서기를 시작해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했던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면, 올해는 연기를 좀 더 경험함으로써 성장을 했고, 자신감도 많이 붙은 시간이었다"며 "앞으로 내가 무너지거나, 시련이 닥쳐왔을 때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겠다는 확신을 느낀 한 해"라고 말했다. 단단히 뿌리를 내린 서현의 나무가 더욱 크고 아름답게 가지를 뻗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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